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고를 둘러싸고 남북이 정면으로 맞서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공존’ 구상이 현실적 시험대에 올랐다.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대화의 통로를 복원해 ‘싸울 필요 없는 평화’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직후 접경지역에서 실제 장병들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데다 남북이 사고 책임을 놓고 맞서는 상황이 됐다. 최근 기자회견과 순방 등을 계기로 국정 수행 지지율이 반등했지만 여전히 국정 동력 확보가 필요한 이 대통령으로서는 대북정책의 추진력을 잃지 않으면서 군사적 긴장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우리 군은 지난 21일 DMZ 폭발 사고의 원인을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했고 유엔군사령부도 북한 지뢰가 군사분계선(MDL) 남쪽에서 발견됐다며 정전협정 위반으로 봤다. 북한은 30일 우리 측 조사 결과를 부인했다. 다만 국가정보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의 관련 담화에 대해 “로키(low-key)로 담화했다고 분석 중”이라고 평가했다. 국정원은 북한이 사고를 남측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면서 북한과의 연관성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기존에는 군부가 내던 관련 담화를 김 부장이 직접 낸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정부는 군의 원칙적 대응을 유지하면서도 기존의 대화·긴장완화 기조를 함께 끌고 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북한과 직접 설명·확인할 통로가 사실상 없는 점도 부담이다.
하지만 취임 이후 남북 간 직접 대화 통로는 사실상 막혀 있다. 이 대통령도 여러 차례 답답함을 드러내며 북·미 대화를 남북관계 복원의 계기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남북관계에도 해빙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지만, DMZ 지뢰 사고로 긴장 관리가 다시 대북정책의 선결 과제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 메이커(Peace maker)’가 돼 달라고 요청하고 자신은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를 자처한 이 대통령의 역할도 시험받게 됐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태가 이어질 경우 북·미 대화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다시 남북관계 개선으로 연결하는 역할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2일 한·미 정상회담 뒤 “한·미 양국은 피스 메이커와 페이스 메이커로서 멈춰진 대화의 물꼬를 트고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더욱 긴밀히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 간 군사·외교 협력이 한층 깊어진 점도 과거와 달라진 변수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협력이라는 별도의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서둘러야 할 유인이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미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남북관계가 별도로 경색된 상태가 이어지면 이 대통령이 구상한 ‘평화공존’을 실제 남북관계 변화로 연결하는 과정은 한층 복잡해질 수 있다.
국내의 대북·통일 문제에 대한 관심도 약해지는 모습이다. 통일연구원이 이날 공개한 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48.2%로 2년 연속 절반을 밑돌았다. ‘북한에 관심이 없다’는 응답은 70.3%로 2015년 조사 시작 이후 가장 높았다. 조사는 지난 4월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면 면접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