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 기장이 연 조종실 문… 1만 미터 상공 174명의 생환 드라마

30초 만에 4300m 급강하한 보잉 737, 헤드폰 줄로 테러범 묶은 승객들의 20분 사투
플라이두바이 FZ1073편 기내에서 부기장의 테러 시도를 맨몸으로 막아낸 승객 야니브 하윤(가운데 흰 티셔츠)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 입국장을 통해 귀환하며 가족 및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하윤의 셔츠 곳곳에는 사투 당시 튄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AP연합뉴스

 

고도 3만 4000피트.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창공은 평온해 보였지만, 보잉 737 기체 안의 공기는 단 1초 만에 지옥으로 뒤바뀌었다.

 

1일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출발해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향하던 플라이두바이 FZ1073편(보잉 737 MAX 기종) 조종실에서 흉기 난동이 벌어졌다.

 

두바이를 떠나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순항하던 플라이두바이 FZ1073편. 기내가 미세하게 덜컹거리던 그 순간, 굳게 잠겨 있어야 할 조종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문틈으로 쏟아져 나온 것은 붉은 피로 온몸이 물든 기장 스밋 마츠하르였다. 난도질당한 상처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는 기장의 모습에 객실은 순식간에 비명과 공포로 뒤덮였다.

 

비행 중 부기장의 흉기 난동으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조종실 문을 열어 174명의 참사를 막아낸 플라이두바이 소속 인도 국적 기장 스밋 마츠하르. 인도 NDTV 홈페이지 캡처

 

비행 중 조종실 문은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철저히 안에서 잠기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부기장의 흉기에 찔려 의식을 잃어가던 기장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문을 닫아둔 채 자신이 쓰러지면 174명의 승객 모두가 허공에서 산화한다는 것을. 기장은 꺼져가는 숨을 쥐어짜 문을 열어젖혔고, 그것이 이 절망적인 비행에 허락된 첫 번째 생명의 틈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기체는 바닥 모를 심연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30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4300미터가 허공으로 증발했다. 중력을 거스르는 급강하의 공포 속에서, 승객 야니브 하윤은 망설임 없이 조종실로 몸을 던졌다.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기괴했다. 기장을 공격한 오만 국적의 부기장이 조종석 사이에 선 채, 비행기를 지상으로 처박기 위해 미친 듯이 조종간을 붙들고 있었다. 하윤은 “조종실로 들어갔을 때 테러범이 두 조종석 사이에서 조종 장치를 붙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윤은 부기장을 향해 달려들어 그를 조종석에서 뜯어내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하지만 더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앞의 계기판은 붉은 경고등을 번쩍이며 추락을 알리고 있었고, 조종석엔 아무도 없었다. 일반 승객에 불과했던 하윤은 오직 머릿속에 남아 있던 기억,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항공 사고 다큐멘터리 ‘메이데이’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뒤로 잡아당겼다. 곤두박질치던 기수가 기적처럼 서서히 수평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 시각, 좁은 기내 복도는 피비린내 나는 격투장이었다. 밖으로 끌려 나온 부기장은 맹수처럼 날뛰었고, 아사프 라즈완과 츠비카 마네스를 비롯한 승객들은 그를 제압하기 위해 맨몸으로 맞섰다. “죽고 싶지 않아요!” 아이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승객들은 좌석에 놓인 헤드폰 줄까지 뽑아내 부기장의 손발을 꽁꽁 묶었다. 20분이 넘는 사투 끝에 마침내 광기의 폭주를 멈춰 세웠다.

 

기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기장 곁으로 승객이자 치과의사였던 쇼타 무사예프가 달려와 지혈과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혼돈의 기내에서 두 남자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연히 휴가를 떠나며 같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뉴질랜드 국적의 비번 조종사들이었다.

 

두 사람은 조종실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흔들리던 조종간을 넘겨받아 차분히 기체를 안정 궤도에 올려놓았다. 한 승객의 말처럼, 용기를 낸 승객들이 조종실을 탈환한 것이 첫 번째 기적이었다면, 비행기를 무사히 착륙시킬 진짜 조종사들이 그 자리에 타고 있었던 것은 하늘이 내린 두 번째 기적이었다.

 

비행 중 조종실 난동과 급강하 위기를 극복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귀환한 플라이두바이 여객기 탑승객들이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 입국장에 들어서자, 이스라엘 국기를 든 환영 인파와 취재진이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행기는 비상 선회 끝에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타부크 공항 활주로에 부드럽게 바퀴를 내렸다. 3만 4000피트 상공에서 시작된 끔찍한 악몽은 174명의 심장이 온전히 뛰는 채로 끝이 났다.

 

마지막 순간까지 문을 열어젖힌 기장의 사명감, 공포를 딛고 조종실로 뛰어든 평범한 승객들의 용기,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 함께했던 조종사들까지. 30초 만에 끝날 뻔했던 추락의 비극은 그들이 엮어낸 찰나의 기적들 덕분에 마침내 위대한 생환의 드라마로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