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캉이는 기후위기를 이야기하기에 꽤 좋은 시작점이다. 지금의 부캉이 열풍을 기후위기와 굳이 반대편에 세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북항에 모여 상어 한 마리를 기다리는 그 호들갑. 기후위기 이야기도 거기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언론도 사안을 바라보는 눈이 지나치게 가십성이거나 지나치게 진중한 것 같다. 대중에게 소구될 만한 스토리텔링과 포장이 필요한 시점이다.’(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의 ‘미디어 오늘’ 칼럼)
한발 늦었다. 추석 연휴 덕에 마감이 미뤄졌다고 좋아했더니만, 그새 좋은 칼럼이 나왔고, 부캉이는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평소 남의 잘 쓴 글은 배가 아파서 어쩐지 설렁설렁 읽게 되지만, 저 글은 메시지도 훌륭하고, 글맛도 좋아 자꾸 곱씹게 만들었다. 특히 저 마지막 문장. ‘대중에게 소구될 만한 스토리텔링과 포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 부캉이를 계기로 진지하거나 훈계조 이야기 대신 유쾌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말해보자는 제안에 어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아…. 그런데 도무지 유쾌한, 대중에게 소구하는 스토리텔링이 뭔지 떠오르지 않는다. 기후위기를 어떻게 ‘먹히는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지를 연구한 논문을 찾아봤다. 나만 답답함을 느낀 건 아니었던지 제법 많은 논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무려 63개국 5만944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실험을 소개하면 이렇다(사이언스 어드밴시스, 2024). 저자만 250여명에 달하는 이 연구는 약 6만명의 실험자를 11개 집단으로 나눠 기후위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하거나 생각하게 했다. 누군가에겐 참가자 거주지 주변에서 벌어진 기후재난을 보여주고, 누군가에겐 애국심을 자극하는 글과 사진을, 누군가에겐 기후행동이 대세라는 추세 데이터를 보여주는 식이다. 11가지 전략 중 가장 탁월한 건 무엇이었을까. 결과는 ‘정답 없음’이었다. 누구에게 어떤 행동이나 신념 변화를 기대하느냐에 따라 효과적인 전략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기후 소식을 널리 공유하게 만드는 데는 공포를 자극하는 방식이 가장 잘 통했지만, 기후위기를 믿지 않거나 어중간하게 동의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탄소세 같은 정책을 지지하게 만드는 데는 공포 메시지보단 미래 세대에 편지를 쓰게 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었다.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