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리더십 위기의 유엔, 그럼에도 지속가능성 의제는 여전히 유엔의 몫 [더 나은 경제, SDGs]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개막한 81차 총회 전경. 출처=유엔 포토

 

지난달 2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 총회장에서 제81차 유엔 총회 고위급 일반토의가 개막했다. 약 130명의 정상급 지도자가 참석한 이번 일반토의는 지난달 28일 마무리됐다. 의장국인 방글라데시의 칼릴루르 라흐만 의장은 이번 회기의 주제를 ‘신뢰 회복과 전환의 관리, 모두를 위한 유엔’으로 내걸었다. 2017년 취임해 오는 12월31일 두 번째 임기를 마치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에게는 사실상 마지막 유엔 총회였다. 이번 총회는 그 주제가 무색하게 유엔이 처한 재정난과 리더십 공백, 다자주의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재정 위기다. 올해 유엔의 정규 예산은 전년보다 약 7% 줄어든 34억 5000만달러 규모다. 최대 분담국인 미국은 지난 9월 7억2500만달러를 납부했지만, 현재까지 정규 예산에서만 약 13억달러를 미납한 상태다. 전체 분담금의 약 22%를 맡은 미국의 비협조는 유엔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평화유지 예산까지 포함하면 미납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

 

미국은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 인권이사회 및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서 잇달아 탈퇴했다. 그 여파로 유엔 사무국은 지난해 예산의 20%가량을 삭감했고 직원 약 6900명을 감축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었다. 유엔은 현재 예산과 인력을 줄이고 중복 조직을 통폐합하는 ‘UN80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총회가 재정규칙을 개정해 당장의 붕괴 가능성은 낮췄지만, 분담금 미납이라는 근본 문제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재정난의 배경에는 미국과 더불어 중국의 이탈도 한몫한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분담 비중이 큰 중국 역시 미납을 반복적으로 해 오고 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올해 초부터 ‘유엔이 임박한 재정 붕괴 위험에 직면했다’고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리더십 공백도 뚜렷하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번 총회 연설에서 산하 국제기구들과 관련해 “대체로 지나간 시대의 권력 현실과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며 유엔 체제의 자체 개혁을 촉구했다. 차기 사무총장 선출도 순탄치 않다. 지난 4월 21일과 22일 유엔 본부에서 열린 공개 청문회에 나선 후보는 미셸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레베카 그린스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무총장, 마키 살 전 세네갈 대통령 등 4명에 그쳤다. 10년 전 구테흐스 총장을 뽑을 때 13명이 경쟁했던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새 사무총장은 내년 1월1일부터 5년 임기를 시작하며, 조직 개혁과 재정 정상화, 회원국 신뢰 회복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넘겨받는다.

 

‘다자주의 상징’이던 유엔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24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지만, 같은 기간 뉴욕에서 열린 이번 총회에는 불참했다. 세계 양대 강국의 회담이 각국 정상이 모인 유엔을 비껴가면서 약해진 영향력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총회 연단에 선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지난 23일 유엔을 ‘쓸모없는 조직’이라고 비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적 인공지능(AI) 규제 시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AI 규제안은 이번 총회의 주된 화두이다. 지난 24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연설에 나서자 각국 대표 수십명이 회의장을 떠나기도 했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 미국과 이란 등의 전쟁 국면에서 상임이사국 간 거부권을 둘러싼 대립에 막혀 실질적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이번에 약 130명의 각국 지도자가 뉴욕에 모였지만, 이들 전쟁에서 벗어날 돌파구는 마련되지 못했다. 외신들은 이번 총회를 두고 적대국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거의 유일한 세계적 외교 무대이지만, 동시에 강대국의 행동을 통제할 실질적 힘은 부족하다는 현실도 함께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이번 총회에서 확인된 또 다른 분명한 사실은 유엔을 대체할 국제 조직은 없다는 점이다. 라흐만 총회 의장은 이 자리에서 유엔이 존속해온 이유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세계가 던지는 질문도 ‘유엔이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유엔이 작동하는가’라고 강조했다. 유엔은 여전히 193개 회원국이 1표씩 동등한 투표권을 갖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외교 무대이자 적대국 사이에서도 대화 채널로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상설 기구다. 평화·안보 분야에서는 안보리의 구조적 한계가 분명히 나타났지만, 개발과 보건, 식량, 난민, 기후, 국제규범 분야에서는 각국 정부와 유엔 전문기구가 참여하는 체계가 계속 작동하고 있다.

 

특히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에서 유엔을 대신할 조직을 찾기는 어렵다. SDGs는 2015년 9월 유엔 총회에서 193개 회원국이 채택한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목표로 구성됐는데, 오는 2030년을 이행 시한으로 하고 있다. 유엔이 지난 7월 발표한 ‘지속가능발전목표 보고서 2026’에 따르면 추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139개 세부목표 가운데 순항하거나 중간 이상 진전을 보인 것은 36%에 그쳤다. 49%는 진전이 더뎠고, 15%는 2015년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다만 같은 기간 실질적인 개선도 있었다. 2015년 이후 약 10억명이 안전하게 관리되는 식수를 새로 이용하게 됐고, 인터넷 이용률은 40%에서 74%로 높아졌으며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관련 사망은 35% 감소했다. 이러한 개선 수치는 지속가능 분야에서 유엔이 여전히 할 일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빈곤과 기아, 기후변화처럼 국경을 넘어 전 인류가 함께 직면한 문제는 같은 기준으로 측정하고 관리할 공통의 틀이 없으면 대응 자체가 어렵다.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엔환경계획(UNEP), WHO 등 전문기구 간 네트워크, 해마다 SDGs 이행을 점검하는 고위급 정치포럼(HLPF)과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체계는 유엔이 아닌 어떤 국제기구도 갖추지 못한 자산이다.

 

한국은 유엔과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1950년 6·25전쟁 당시 안보리는 북한의 무력공격을 다룬 결의문을 채택했고, 덕분에 한국을 위한 회원국의 군사·의료 지원이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전쟁 후에도 오랜 기간 회원국이 아니었다가 1991년 9월17일 제46차 유엔 총회에서 북한과 함께 가입했다. 당시 가입 결의안(A/RES/46/1)은 표결 없이 채택됐다. 이후 유엔에서 한국의 역할은 빠르게 확대됐다. 2001년 당시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이 제56차 유엔 총회 의장을 맡았고, 해당 회기는 9·11 테러 다음날인 9월12일 개막했다. 2007∼2016년 반기문 전 외교부 장관이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그의 두 번째 임기였던 2015년에는 SDGs와 파리 기후변화 협정이 잇달아 채택됐다. 한국은 그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도 세 차례 맡았고, 가장 최근인 2024∼2025년 임기 중이던 지난해 9월에는 의장국으로서 AI와 국제안보를 주제로 한 공개 토의를 주재했었다.

 

지난 22일 이재명 대통령은 제81차 총회 기조연설에 나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응하는 ‘건설적 기여국 연대’ 구상을 제시했다. 더불어 북측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고, 중기적으로 축소를 거쳐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단계적 비핵화 방안도 다시 한번 천명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은 전쟁 후 국제 원조를 받던 수혜국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공여국으로 전환한 사실상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빈곤국과 개발도상국, 선진국을 모두 경험한 한국은 유엔 개혁과 SDGs 이행 논의에서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1945년 출범한 유엔은 올해로 81년째를 맞았다. 재정과 리더십, 다자주의 등에서 한계가 한꺼번에 드러난 이번 총회로 유엔이 선언보다 행동 결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음이 드러났다. 상임이사국 거부권 제도에 대한 재검토와 예산 투명성 강화, 회원국 간 책임 분담 개선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유엔 개혁 과제다. 다만 유엔을 대체할 조직이 없다는 현실, 그리고 SDGs로 대표되는 전 지구적 과제가 여전히 유엔의 틀 안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제81차 총회가 남긴 질문도 결국 유엔이 존재해야 하냐가 아니라 현재 국제사회가 필요로하는 기능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느냐에 가깝다.

 

민보영 UN SDGs 협회 수석 연구원unsdgs@gmail.com

 

*민 수석 연구원은 현재 서울시 기후위기대응위원, 경기도 환경보전기금운용심의위원, 수도권대기환경청 시흥녹색환경지원센터 자문위원,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ESG 위원, 글로벌 전략 컨설팅 펌 피어스베일(PierceVale)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