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사람들을 웃기던 개그맨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을 내더니 이번에는 에세이까지 펴냈다. 40여년간 웃음을 선사해온 희극인 장용(62)이 이제는 글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사람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용은 “개그맨이 시도 쓰고 에세이집도 내니 의외의 변신 같지만,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웃기는 것도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웃고, 울고, 화를 내는지 알아야 웃길 수 있거든요. 사람들을 오래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펴낸 에세이 ‘손안에 삶이 있습니다’ 에는 그렇게 사람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의 생각이 담겼다. 한국가위바위보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 책에서 오랫동안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삶의 이치를 발견했다고 했다. “가위는 보를 이기지만 바위에는 지잖아요. 바위는 가위를 이기지만 보에는 지고요. 절대적인 승자는 없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죠.”
그가 책에서 강조하는 핵심은 ‘비김’이다. 비긴다는 것은 패배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늘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꼭 이겨야 합니까. 내가 가진 생각과 가치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고 상대의 패도 인정하는 게 비김입니다.”
장용에게 비김은 단순한 무승부가 아니다. 경쟁과 대립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서로 한발씩 물러서 관계를 이어가는 태도이자 삶의 지혜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면 결국 부딪힙니다. 내가 가진 패만 계속 내밀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떤 패를 내고 있는지도 봐야 합니다. 그게 관계 아닐까요.”
그는 에세이에 앞서 2024년 시집 ‘나도 썼어 너도 써 봐’를 내며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 짧고 유쾌한 시에는 개그맨 특유의 언어 감각과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함께 담겼다.
‘불현 듯’에서는 ‘불 켠 듯 네가 생각났어 / 잘 있지?’라고 썼고, ‘이별’에서는 ‘별이 두 개 / 하나씩 / 더 반짝일 거야’라고 했다. 아내의 잔소리를 소재로 한 ‘아내의 설교’에서는 ‘신부님의 설교와는 다르다 / 아내의 설교에는 / 대답을 해야 한다’고 써 웃음을 자아낸다.
짧은 언어 속에 웃음과 여운을 함께 담아내는 것이 그의 시다. “개그맨이 시를 쓴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의외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자연스러웠어요. 개그도 결국 언어를 가지고 하는 일이니까요. 개그는 짧은 순간에 웃음을 줘야 하지만 시는 그 뒤에 남는 생각까지 담을 수 있다는 차이가 있죠.”
인천 대건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했던 그는 이정하 시인의 시 창작 수업을 12주간 받기도 했다. 방송 활동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틈틈이 시를 썼고, 그렇게 쌓인 작품들이 한 권의 시집으로 묶였다. 그는 시를 어려운 문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시를 쓰고 싶다면 일단 써보면 됩니다. 저 같은 사람도 쓰는데 왜 못 쓰겠어요. 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집 제목 ‘나도 썼어 너도 써 봐’에도 이런 생각이 담겼다. 잘 쓰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짧은 언어로 표현해보라는 권유다.
1964년 인천에서 태어난 장용은 서울예술대학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했다. 1983년 제3회 MBC 개그맨콘테스트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방송계에 데뷔했다. 이후 MBC 코미디언 실장을 지냈으며,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예비역들의 군대 사연을 소개하며 오랫동안 청취자들과 호흡했다. 군대 사연을 모아 ‘장용의 단결, 필승, 충성’을 펴내기도 했다.
40여년 동안 사람들을 웃겨온 그는 이제 시와 에세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독자를 만나고 있다. 웃음 뒤에 남는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되는 게 있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몇 번 이겼느냐가 아닌 것 같아요. 누구와 함께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가 더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