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를 여행하는 것은 거대한 자연을 만나는 일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현재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36년간 직업외교관으로 세계 각국에서 근무한 저자는 퇴직 후 세 차례에 걸쳐 미국 서부 약 9000㎞를 달렸다. 이 책은 그 길에서 만난 자연과 도시, 사람을 통해 미국 사회의 형성과 변화, 그리고 그 저변에 흐르는 개척정신을 살펴본 여행기다.
저자는 2023년 가을부터 2026년 봄까지 렌터카와 암트랙을 타고 미국 서부 곳곳을 누볐다. 정해진 관광코스를 따라가기보다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과 사람, 예상치 못한 사건에 주목했다. 그랜드 캐니언과 모뉴먼트 밸리에서는 수억 년의 시간이 빚은 대자연을 마주하고, 요세미티에서는 자연과 역사를 보존하고 기록하는 미국 사회의 태도를 살핀다. 한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관리하는지가 현재의 사회적 자산과도 연결된다는 생각이다.
암트랙을 타고 새크라멘토와 샌프란시스코, 산타바버라를 거치는 여정에서는 골드러시와 철도의 역사를 되짚는다.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에서는 도시의 성장과 인구 구성의 변화, 캘리포니아에서 주민과 기업이 빠져나가는 현상 등 미국 사회의 현재를 들여다본다. 데스밸리에서는 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태계와 원주민의 역사를 돌아보고, 미국 서부에 남아 있는 한국 독립운동의 흔적도 찾아간다.
이 책의 특징은 여행자의 감상에 외교관 출신 저자의 시선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맥락을 함께 살핀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 자전거를 타고 금문교를 건넌 경험, 손자들과 함께한 여행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곳곳에 녹아 있다.
저자가 여행의 끝에서 주목하는 것은 미국 서부의 ‘프런티어 정신’이다.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는 개척시대의 정신이 황무지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바꾸고 미국의 역사를 만들어온 힘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다.
책은 그랜드 캐니언과 요세미티, 데스밸리의 아름다움을 담은 여행기이면서 미국의 역사와 사회 변화를 읽어내는 기록이다. 저자에게 길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다. 자연과 사람, 과거와 현재를 만나며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