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계의 경쟁 무대가 제품 판매에서 수리와 관리로 넓어지고 있다. 냉장고나 세탁기를 한 번 팔고 고객과 관계가 끝나는 방식에서 벗어나 수리·세척·소모품 교체까지 책임지며 고객을 다시 불러들이려는 움직임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하이마트는 이 경쟁에 브랜드와 구매처의 경계를 허문 서비스를 들고 나왔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자사 가전을 중심으로 케어와 구독 서비스를 강화하고, 쿠팡이 자사에서 구매한 제품의 보증 영역을 넓히는 가운데 롯데하이마트는 이미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른 유통채널 구매 제품과 중고 가전까지 한꺼번에 묶었다.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1일부터 가전 34종의 고장 수리비를 지원하는 ‘가전수리올케어’를 시작했다. 회사 측은 서비스 한 건으로 집 안의 여러 가전을 함께 관리하는 방식은 유통업계에서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서비스 이용료는 2년간 5만원이다. 냉장고·김치냉장고·에어컨·TV·세탁기·건조기 등 대형가전 8종과 청소기·공기청정기·안마의자·식기세척기·정수기·커피머신 등 생활·주방가전 21종, 노트북·데스크톱·태블릿PC 등 IT기기 5종이 대상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어디서 샀느냐를 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롯데하이마트에서 사지 않은 제품과 이미 사용하고 있는 중고 가전도 등록할 수 있다. 삼성전자 냉장고와 LG전자 세탁기, 다른 브랜드의 TV처럼 제조사가 서로 달라도 조건을 충족하면 하나의 서비스 안에서 관리할 수 있다.
가입 60일 뒤부터 연간 100만원 한도 안에서 횟수 제한 없이 수리비를 지원한다. 부품비와 인건비 등 실제 수리비가 기준이며 1회 수리 때 고객이 부담하는 금액은 5000원이다. 제조일로부터 10년이 지난 제품은 5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물리적 파손이나 임의 개조, 소모품 교체, 해외 직구 제품 등은 대상에서 빠진다.
삼성전자도 ‘삼성케어플러스’를 통해 가전 사후관리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전문 엔지니어가 방문해 제품을 점검하거나 수리·세척하는 방식이다. 에어컨·세탁기·건조기·냉장고·공기청정기·에어드레서·식기세척기·TV 등 제품별로 전문세척과 이전설치, 필터 관리 서비스를 운영한다.
기존에 사용하던 삼성 가전도 제품별 케어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삼성전자 홈페이지에는 기존 제품 기준 세탁기와 냉장고, 김치냉장고, 건조기, 에어드레서, 식기세척기 등의 3년·5년형 월 이용료가 제품별로 제시돼 있다. 예를 들어 3년형 기준 일반 세탁기는 월 7040원, 드럼세탁기는 8580원, 양문형·4도어 냉장고는 8800원이다.
LG전자는 아예 제품 이용과 관리를 결합한 ‘가전 구독’을 키우고 있다. 매월 구독료를 내면 제품 사용과 함께 전문 관리, 정품 소모품 교체, 무상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다. 일반 구매와 달리 제품에 따라 무상 애프터서비스 기간도 최대 6년까지 늘어난다.
여러 제품을 함께 이용하도록 묶는 장치도 있다. LG전자는 기존 구독 고객이 다른 제품군을 추가하거나 2개 이상 제품군을 동시에 신규 구독하면 제품에 따라 결합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최대 7개 계약까지 관리할 수 있다.
롯데하이마트와 차이는 분명하다. 삼성과 LG의 서비스가 기본적으로 자사 제품을 중심으로 설계됐다면, 롯데하이마트는 제조사와 구매처가 뒤섞인 가정 내 가전을 하나의 수리비 지원 서비스에 넣는 방식이다.
온라인 유통업체도 판매 이후 서비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쿠팡은 가전·전자제품에 ‘쿠팡 안심케어’를 운영하고 있다. 일부 가전에는 최대 5년까지 추가 보장을 제공하고, 앱을 통해 애프터서비스를 접수해 방문 수리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케어 범위를 가전에서 가구로까지 넓혔다. 쿠팡은 지난 9월 가구 전용 안심케어 보험을 내놓고 외부 충격에 따른 파손이나 제조사 기본 보증기간이 끝난 뒤 발생한 고장에 대해 최대 3년간 수리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일룸·까사미아·한샘·데스커·시디즈 등 사후 수리가 가능한 브랜드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가전과 가구 유통업체들이 앞다퉈 사후관리에 뛰어드는 이유는 제품 판매만으로 고객을 붙잡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냉장고나 세탁기는 한 번 구매하면 수년간 다시 살 일이 없다. 반면 수리와 세척, 이전설치, 소모품 교체는 제품을 쓰는 동안 반복해서 발생한다.
롯데하이마트도 가전 청소와 연장보증뿐 아니라 층간소음매트, 입주청소, 가전 맞춤 수납장 등으로 서비스 범위를 넓혀 왔다. 지난 9월에는 이들 서비스를 묶은 ‘안심케어 세일’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 가전수리올케어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고객이 과거 어느 업체에서 어떤 브랜드를 샀는지보다 현재 집 안에 어떤 가전을 갖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고객을 묶는 방식이다.
가전을 싸게 파는 경쟁에서 배송과 설치 경쟁으로, 다시 수리와 관리 경쟁으로 전선이 옮겨가는 셈이다. 한 번 판매한 고객을 몇 년 뒤 다시 찾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사용하는 동안 계속 접점을 만드는 것이 가전 유통업계의 새 경쟁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