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꼭꼭 씹으면 소화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오래 씹는 습관은 구강 건강에, 식사 속도는 한 끼 섭취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천천히 씹어 먹으면 우리 몸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 씹기는 소화의 첫 단계…침 분비 늘어 구강 건강에도 도움
입안에 들어온 음식물은 침과 섞인다. 침 속 아밀레이스는 전분을 분해해 소화를 시작한다. 음식을 씹어 잘게 만들면 음식물의 표면적이 넓어져 소화효소가 작용하기 쉬워지고, 위와 장에서 소화가 한결 수월해진다.
침은 음식물을 부드럽게 해 삼키기 쉽게 하고 입안의 찌꺼기를 씻어낸다. 또 구강 점막이 마르지 않도록 돕는다. 침이 부족해 입안이 마르면 구강 세균이 단백질에 든 황 성분을 분해하면서 황화수소와 메틸메르캅탄 같은 휘발성 황화합물을 만들어 입 냄새를 유발할 수 있다.
천천히 먹을수록 한 끼 섭취 열량이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4년 ‘The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 발표된 메타분석에 따르면 음식을 빠르게 먹을 때보다 천천히 먹을 때 섭취 열량이 적었다. 연구진은 식사 속도를 달리한 사람 대상 실험 22편을 종합해 섭취량과 식후 배고픔을 비교했다. 천천히 먹은 조건에서 섭취 열량은 적었지만 식사 뒤 배고픔은 뚜렷하게 줄지 않았다.
◆ 씹기와 뇌 기능·스트레스의 관계
2013년 영국 카디프대 연구진은 성인 38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쪽은 껌을 씹고, 다른 쪽은 씹지 않은 채 숫자 배열을 찾게 했다. 껌을 씹은 참가자들은 과제 후반부에 배열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냈다.
2019년 국제학술지 ‘Physiology & Behavior’에 발표된 메타분석에 따르면, 껌 씹기와 주의력의 관계를 살핀 연구 21편을 종합했을 때 껌을 씹은 집단의 지속적 주의력이 소폭 높았다. 씹는 행동이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껌 씹기가 스트레스·불안·우울감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국제학술지 ‘Stress and Health’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간호학과 학생 100명 가운데 껌을 7일 또는 19일간 씹은 집단은 연구 시작 때보다 종료 뒤 스트레스·불안·우울 점수가 낮았다. 19일간 껌을 씹은 집단은 평균 시험 성적도 다른 집단보다 높았다.
씹는 능력이 떨어질수록 기억력과 언어 능력 등 인지 기능 점수도 낮은 경향을 보였다. 2014년 국제학술지 ‘BMC Oral Health’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유럽 14개국 50세 이상 성인 2만8693명을 대상으로 씹는 능력과 인지 기능을 비교했을 때 음식을 잘 씹는 사람일수록 단어 회상과 언어 유창성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수리 능력 검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확인됐다. 틀니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착용한 사람보다 여러 인지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 ‘30번’ 세기보다 음식에 맞춰 천천히
‘한입에 30번씩 씹으라’는 말도 있지만, 죽처럼 부드러운 음식과 마른오징어처럼 질긴 음식은 씹는 횟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씹는 횟수를 일일이 세기보다 한입을 작게 먹고 음식이 충분히 부드러워질 때까지 씹으면 된다. 입안의 음식물을 다 삼킨 뒤 다음 한입을 먹으면 식사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씹을 때 턱이 아프거나 입이 잘 벌어지지 않으면 음식을 억지로 오래 씹지 말고 치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 식사 중 자주 사레가 들거나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증상도 그냥 넘기지 말고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