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권준영 기자] 한국 요트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잇달아 수확했다. ‘살아있는 전설’ 하지민(해운대구청)이 개인 통산 네 번째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건 데 이어 김창주-이경진 조가 혼성 딩기에서 은메달을 보탰다.
하지민은 2일 일본 아이치현 가마고리 가이요 요트 항구에서 열린 대회 남자 딩기 1인승 결승 레이스에서 최종 순벌점 9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10년 광저우 대회를 시작으로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까지 4회 연속 금메달이다. 한 종목에서만 아시안게임 금메달 4개를 수확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이번 우승 과정은 앞선 세 차례와 달랐다. 대회 첫 레이스부터 실격 판정을 받아 최하위권 벌점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요트는 여러 차례 레이스에서 얻은 벌점을 합산해 순위를 가리며, 성적이 가장 나쁜 한 차례의 벌점을 최종 점수에서 제외할 수 있다. 하지민은 첫 경기에서 이 기회를 사용한 만큼 이후 레이스에서는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하지민은 흔들리는 대신 경기 자체에 집중했다. 결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처음 요트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을 떠올렸다. 바람을 읽고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며 레이스를 이어갔고, 조금씩 순위를 끌어올린 끝에 종합 1위에 도달했다.
경기 후 하지민은 “이번 메달이 그동안의 메달보다 감정적으로 훨씬 벅차다”며 “이제 저는 출전 선수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편에 속하고, 제 능력에 항상 약간의 의심이 있었는데, 이번에 ‘아직 할 수 있다’는 걸 확인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선수 생활을 이어온 그에게 이번 대회는 요트에 대한 마음가짐을 되돌아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하지민은 “결과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오히려 집착하게 됐던 것 같다”며 “제가 처음 세일링을 시작했던 이유를 계속 떠올리며 경기 하나하나에 임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어릴 때는 바다 위에 있는 것 자체가 좋았고, 레이싱을 시작한 후로는 바람을 읽고 빠르게 대응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며 “그런데 어느 순간 상대를 이기는 데만 집중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다. 원래 제가 요트를 즐거워했던 이유를 다시 찾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두 아이의 아빠인 하지민은 지난해 11월부터 대회 준비를 위해 한 달가량 해외에서 훈련한 뒤 보름 정도 귀국하는 생활을 반복하며 1년의 절반 가까이를 타지에서 보냈다.
그는 “아내가 항상 제 가능성을 믿고 더 잘할 수 있다고 독려해 준다”며 “결과보다 제가 즐겁게 요트 타는 모습 자체를 좋아해 주는 늘 가장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고 투지 있게 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훗날 아이들도 직간접적으로 영감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우승으로 하지민은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본선 직행 티켓도 확보했다. 하지민은 같은 종목에서 경쟁하는 후배들이 장기적인 올림픽 준비를 할 수 있게 된 점도 의미 있게 봤다.
그는 “앞으로 2년 동안 후배들이 성장해 저를 능가해서 올림픽에 나가는 것도 좋은 그림이고, 제가 거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며 “만약 그때까지 저를 뛰어넘는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제가 다시 올림픽에 나서 이전보다 더 나은 성적으로 시상대까지 노려보겠다”고 밝혔다.
한국 요트의 두 번째 메달은 혼성 딩기에서 나왔다. 김창주-이경진(이상 여수시청) 조는 이날 총 10차례 레이스를 치른 끝에 순벌점 20점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2022 항저우 대회 김지아-조성민 조의 동메달에 이어 이 종목에서 2회 연속 시상대에 올랐다.
김창주-이경진 조는 1·2차 레이스에서 연속 3위를 기록한 뒤 3차 레이스에서는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4차 레이스에서 5위로 주춤했지만 최하위 성적 한 개를 제외하는 규정에 따라 해당 벌점을 지워내며 손실을 최소화했다.
이후에도 2위와 3위를 오가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이어갔다. 마지막 10차 레이스에서는 다시 1위를 차지하며 레이스를 마쳤다.
금메달은 순벌점 15점을 기록한 일본이 차지했다. 일본은 10차례 레이스 가운데 5차례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일본에 5점 뒤졌지만 순벌점 29점의 중국을 따돌리고 2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