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뒤 재판행’ 공익제보자 수난사 [사사건건]

김용철·김태우·박정훈, 제보 이후 엇갈린 운명
‘공익신고냐 비밀누설이냐’ 경계
공익신고자 보호법 시행 15년에도
“10명 중 7명 2건 이상 보복 소송 당해”

조직 내부의 잘못을 외부에 알린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15년이 지났다. 사회를 뒤흔든 공익제보는 이어졌지만 제보자가 오히려 피의자석에 서거나 정치적 공방의 한복판에 내몰리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공익제보자가 정치적 공방의 한복판에 내몰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뉴스1·게티이미지뱅크

◆‘삼성 비리’ 내부고발의 대가

 

2007년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삼성 일가가 차명계좌를 이용해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세상에 알린 김용철 변호사는 폭로 이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국내 최대 기업의 법무팀장이었던 그는 한동안 가족이 운영하는 경기 부천의 제과점에서 저녁마다 일을 거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로는 특별검사 수사로 이어져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등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제보자 개인에게는 ‘조직의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됐다.

 

김 변호사 사례는 법적 보호장치가 없던 시절 내부고발자가 치르는 사회적 비용을 보여준다. 그는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출신으로, 그룹 차원의 비자금 관리와 로비 정황을 직접 증언했다. 당시 이 전 회장이 관리한 차명계좌는 1200여개였고, 규모는 4조5000억원이었다. 사건은 특검 수사와 총수 기소로 이어졌다. 반면 김 변호사는 법조계와 재계 양쪽에서 사실상 외면받았다. 그는 2011년부터 9년간 광주시교육청 감사관으로 일하다 2020년 퇴임했다.

국민권익위원회. 뉴시스

◆권익위 ‘공익신고자’ 인정에도 유죄

 

공익신고와 공무상 비밀누설의 경계를 둘러싼 논쟁은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사건에서도 일었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그는 2018년 12월 청와대 특감반의 감찰 무마와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을 폭로했다. 국민권익위는 그의 신고가 법상 공익신고에 해당한다고 보고 그를 공익신고자로 지칭했다. 다만 신고 내용 자체를 사실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법원 판단은 세 차례 모두 같았다. 대법원은 김씨에 대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사건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검찰이 기소한 5건 가운데 4건이 공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하급심 재판부는 폭로의 동기와 목적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 강서구청장이던 그는 직을 잃었다. 판결 석 달 만인 같은 해 8월 특별사면·복권된 뒤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 사건은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책임감면’ 조항이 실제로 얼마나 작동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남겼다. 법은 공익신고 과정에서 신고자의 범죄 행위가 드러나면 형을 줄이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권익위의 신고자 인정과 법원의 형사 판단은 별개였다. 

채모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2025년 1월 9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앞서 지지자와 포옹을 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군 검찰이 박정훈 대령에게 적용했던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렸다. 뉴스1

◆‘항명’ 기소-무죄 확정까지 1년9개월

 

명령 불복종과 정당한 직무 수행의 경계가 다퉈진 사례도 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2023년 7월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의 초동 조사를 지휘했다. 그는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로 특정했다. 군 수뇌부가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하자 박 대령은 이를 수사 외압으로 판단하고 이첩을 강행했다. 그는 보직해임 됐고, 같은 해 10월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군사법원은 지난해 1월 사전에 명확한 이첩 보류 명령은 없었고, 이후 내려진 이첩 중단 명령도 정당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군검찰이 항소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순직 해병 특별검사팀은 같은 해 7월 항소를 취하했다. 특검은 박 대령의 기록 이첩이 법령에 따른 적법한 행위였고, 항명 기소 자체가 공소권 남용이라고 밝혔다. 기소 1년9개월 만에 무죄가 확정됐고, 박 대령은 보직해임 1년11개월 만에 수사단장으로 복귀했다.

 

◆참여연대 “10명 중 7명은 2건 이상 보복 소송 경험”

 

제보 이후 피신고자가 제기하는 보복성 민·형사 소송도 과제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나눔의집 후원금 유용 의혹 제보자 등이 피신고자로부터 반복적으로 고소·고발을 당한 사례가 공유됐다.

 

참여연대는 2일 공익제보자 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94.7%가 제보 이후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불이익조치의 유형으로는 집단 따돌림, 폭언·폭행이 66.7%(36명), 파면·해임·해고 등이 61.1%(33명)를 차지했다. 불이익조치를 경험한 제보자의 81.5%(44명)는 2가지 이상의 조치를 경험했다고 참여연대는 밝혔다. 

 

피신고인·피신고기관으로부터 민·형사 소송을 경험한 공익제보자의 69.4%(36명 중 25명)가 2건 이상의 소송을 경험했다. 소송을 경험한 공익제보자(36명) 중 27명은 소송 결과가 확정되기까지 2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소송 결과가 확정되기까지 5년 이상이 소요되었다고 응답한 제보자도 7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참여연대는 피소된 공익제보자 중 61.1%(36명 중 22명)는 변호사 선임 비용 등을 포함한 소송비용을 전적으로 사비로 부담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