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권준영 기자] 한국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 대표팀이 대만을 꺾고 아시안게임 2회 연속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은 2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LoL 결승전에서 중화 타이베이(대만)를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파했다. 조별리그부터 준결승, 결승까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무실 세트 전승이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LoL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두 대회 연속 정상에 오른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도 아시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이날 한국은 ‘페이커’ 이상혁과 ‘제카’ 김건우 가운데 제카를 선발 미드 라이너로 내세웠다.
3-0이라는 스코어와 달리 초반 흐름은 대만이 앞섰다.
1세트에서 대만의 ‘Doggo’ 추쯔취안이 연속 킬을 따내며 바텀 라인 주도권을 가져갔고, 한국은 집단 교전에서도 밀리며 세 번째 드래곤까지 내줬다.
한국은 23분께 드래곤 앞 한타에서 반격의 계기를 만들었다. ‘제우스’ 최우제가 추쯔취안을 묶으며 싸움을 시작했고, 제카와 함께 교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흐름을 되찾았다.
26분께에는 탑 라인에 고립된 ‘캐니언’ 김건부를 대만이 기습했지만 제우스와 제카가 합류해 오히려 상대를 잡아냈다. 골드 격차까지 뒤집은 한국은 34분께 대만 본진을 무너뜨렸다.
2세트 역시 대만의 공세가 먼저였다.
추쯔취안이 경기 초반 더블킬을 기록한 데 이어 정글러 ‘JunJia’ 쥔지아까지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대만은 한때 4000 골드 이상 앞서갔다.
한국은 20분 이후 한타에서 반격했다. 제카가 연이어 킬을 올리며 대만 핵심 선수들의 성장을 억제했고, 33분께 승부를 가른 장면이 나왔다.
대만이 장로 드래곤을 두고 싸움을 걸어온 상황에서 캐니언이 극적인 스틸에 성공했다. 한국은 곧바로 교전에서 상대 선수들을 모두 잡아낸 뒤 빈 본진으로 진격해 34분 만에 2세트까지 가져왔다.
3세트에서는 한국이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았다. 대만의 바텀 압박을 받아내면서 드래곤을 차례로 확보했고, 13분께 바텀과 탑에서 잇따라 킬을 따내며 격차를 벌렸다.
22분께 제우스가 상대 진영에 파고들어 발을 묶자 제카와 캐니언이 연속 킬을 올리며 승기를 굳혔다. 네 번째 드래곤과 바론까지 확보한 한국은 25분께 대만 본진에 진입했고, 이후 장로 드래곤을 앞두고 쥔지아까지 잡아내며 마지막 변수도 차단했다.
한국은 그대로 대만 본진 깊숙이 진격해 30분 만에 넥서스를 파괴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 선 페이커는 대표팀의 2연패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한국 e스포츠 국가대표팀이 2연패를 하게 돼 너무 기쁘고 뿌듯하다”며 “각자의 자리에서 연습과 컨디션 관리에 최선을 다해준 동료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결승에 출전하지 않고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본 페이커는 개인적인 출전 아쉬움보다 팀의 금메달에 의미를 뒀다.
그는 “결승전에 직접 출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있을 수 있지만, 이번 대회의 더 큰 목표는 팀의 금메달이었다”며 “그 과정에서 내가 맡은 바에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나 미련은 없다”고 말했다.
페이커는 동료들이 어려운 흐름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며 스포츠의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선수들이 놀라운 집념으로 극복해내는 모습을 뒤에서 보며 감동했다”며 “그런 극적인 집념과 승부가 스포츠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팬분들도 이를 통해 영감과 긍정적인 메시지를 얻으셨다면 그것만으로도 매우 뜻깊다”고 덧붙였다.
한국 e스포츠를 대표하는 선수인 페이커는 게임을 즐기는 어린 팬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어린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정을 가지고 재밌게 도전했으면 좋겠다”면서도 “게임에는 분명 몰입성과 중독성이 있는 만큼 과도하게 빠져들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어릴 때는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부모님과 잘 상의하면서 건강하고 적당하게 즐기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결승에서 선발로 나서 우승을 이끈 제카는 첫 아시안게임의 부담감을 털어냈다.
제카는 “처음 출전하는 아시안게임이라 부담감과 책임감이 컸지만, 옆에서 페이커 선수가 챔피언 구도와 아이템 선택 등 많은 조언을 해줘 편안하게 임할 수 있었다”며 “뛰어난 동료들을 믿고 플레이한 덕분에 2연패에 기여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처음 태극마크를 단 캐니언은 “다른 팀 선수들과 짧은 시간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 새롭고 재미있었다”며 “한국 LoL은 워낙 강하기 때문에 다음 대회에서도 누가 나오든 지지 않고 우승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항저우에 이어 다시 금메달을 목에 건 제우스는 “기회가 된다면 3연패까지 도전하고 싶다”고 했고, 케리아 류민석은 “오랜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며 “롤이 망할 때까지 무패 행진으로 한국이 e스포츠 초강국임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동훈 감독은 대만의 초반 전략에 흔들린 순간에도 선수들의 위기 대처 능력을 믿었다고 밝혔다.
강 감독은 “대만 정글러 쥔지아를 앞세운 상대 초반 전략에 다소 흔들리기도 했지만, 우리 선수들의 위기 대처 능력이 워낙 뛰어나 끝내 이길 것이라 믿었다”며 “다 가진 기분이고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단은 이제 소속팀으로 돌아가 북미에서 열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을 준비한다.
대회 기간 도핑 관리와 컨디션 조절을 위해 편의점 음식과 햇반,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해결했던 선수들은 이날 모처럼 자유롭게 식사를 즐길 예정이다.
제우스는 “끝나자마자 다들 야키니쿠 같은 고기 메뉴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고, 페이커도 “일주일 동안 편의점 음식만 먹었는데 오늘은 맛있는 것을 먹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날 LoL 금메달을 마지막으로 한국은 이번 아시안게임 e스포츠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기록했다.
페이커는 “아시안게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열정도 더 커졌다”며 “결과보다 준비하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