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상품을 찾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포털이나 쇼핑몰 검색창에 제품명을 입력하는 대신 생성형 인공지능(AI)에 필요한 조건을 설명하고 추천을 받는 방식이다.
기업들의 대응도 빨라졌다. 과거 검색엔진에서 자사 상품을 상단에 노출하기 위해 검색엔진최적화(SEO)에 공을 들였다면 이제는 챗GPT와 제미나이 같은 AI가 자사 상품을 정확히 읽고 추천하도록 만드는 생성형 엔진 최적화(GEO)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풀무원이 공식몰 구조를 AI 중심으로 뜯어고쳤다.
풀무원은 올해 초부터 공식몰 '#풀무원'에 GEO를 적용했다. AI가 상품과 카테고리, 콘텐츠 페이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사이트 구조를 손보고 상품명과 브랜드, 가격, 카테고리, 판매 상태 등을 담은 AI 전용 상품 카탈로그도 별도로 구축했다. 상품 상세페이지에는 가격과 리뷰, 영양정보 등을 항목별로 구조화했다.
결국 사람이 보기 좋은 쇼핑몰뿐 아니라 AI가 읽기 좋은 쇼핑몰을 따로 만든 셈이다.
성과도 나타났다. 풀무원에 따르면 2026년 4월 1일을 기준으로 GEO 적용 전후 각각 4개월을 비교한 결과 공식몰 방문자는 2.3배, 구매 건수는 7.4배 늘었다. 다만 전후 기간을 단순 비교한 수치인 만큼 증가분 전체를 GEO 효과로 보기는 어렵다. 가격이나 행사, 계절적 수요 등 다른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해외에서는 한발 더 나갔다.
월마트는 지난해 10월 오픈AI와 손잡고 챗GPT 안에서 상품을 고르고 구매까지 할 수 있는 쇼핑 경험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소비자가 식단을 짜거나 생활용품을 다시 사려 할 때 챗GPT와 대화하면 월마트 상품을 탐색하고 결제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월마트는 기존 검색창과 상품 목록 중심의 전자상거래가 개인화된 대화형 쇼핑으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구글도 AI를 새로운 쇼핑 입구로 만들고 있다.
올해 1월 공개한 '비즈니스 에이전트(Business Agent)'는 소비자가 구글 검색 화면에서 브랜드와 직접 대화하는 형태의 AI 판매 상담원이다. 리복과 로우스, 마이클스, 포시마크 등이 초기 참여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소비자가 상품에 관해 묻으면 해당 브랜드의 제품 정보를 바탕으로 AI가 답하는 방식이다.
상품을 잘 노출하기 위해 기업이 입력해야 할 정보도 달라졌다. 기존 쇼핑 검색에서는 상품명과 가격, 색상 정도가 중요했다면 AI 쇼핑에서는 사용 목적이나 호환 제품,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처럼 문맥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해졌다.
구글은 이를 위해 머천트센터에 대화형 상거래용 데이터 항목을 추가했다. 룰루레몬이 시험 과정에서 제출한 이런 '대화형 상품 속성'은 관련 AI 모드 상품 추천 가운데 50%에서 실제 답변에 반영됐다.
경쟁은 노출에서 끝나지 않는다.
구글은 검색의 AI 모드와 제미나이에서 상품을 확인한 뒤 바로 결제할 수 있는 UCP(Universal Commerce Protocol) 기반 구매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에츠시와 웨이페어 상품은 이미 미국에서 AI 검색 도중 바로 구매할 수 있고 타깃과 월마트 등도 참여를 추진해 왔다. 올해 9월에는 코치와 케이트 스페이드 등을 보유한 태피스트리가 UCP 기반 결제를 연동해 검색 AI 모드와 제미나이에서 상품 판매에 나섰다.
나이키와 세포라, 타깃, 울타뷰티, 월마트, 웨이페어 등도 구글의 AI 쇼핑·통합 장바구니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다. 검색 결과를 보여준 뒤 쇼핑몰로 이용자를 보내는 기존 방식에서 AI가 상품을 고르고 결제 단계까지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챗GPT 역시 쇼핑 질문에 상품 이미지와 가격, 판매처를 제시하고 일부 판매자는 대화 화면에서 바로 결제할 수 있도록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판매자가 상품 데이터를 직접 제공하면 상품명과 설명, 가격, 재고 등 최신 정보를 AI에 전달할 수도 있다.
결국 AI가 어떤 상품을 알고 있느냐뿐 아니라 가격과 재고, 배송 정보까지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느냐가 판매 기회를 좌우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실제 쇼핑몰 유입 경로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쇼피파이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AI를 통해 쇼피파이 입점 쇼핑몰로 유입된 트래픽은 전년 동기보다 8배 늘었다. AI 기반 검색을 거쳐 발생한 주문은 약 13배 증가했다. AI 채널을 통해 처음 구매한 신규 고객의 주문 비율도 다른 경로보다 약 2배 높았다.
AI 쇼핑이 단순히 상품을 알아보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실제 구매 경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기업 입장에서는 광고비를 많이 쓰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AI가 상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품명과 가격뿐 아니라 용도와 특징, 성분, 호환성, 재고 같은 데이터가 일관된 형태로 제공돼야 한다. 소비자가 "저당 제품 중 아이 간식으로 먹을 만한 것"처럼 자연어로 질문했을 때 AI가 조건에 맞는 상품을 골라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풀무원이 상품 페이지와 별도로 AI 전용 카탈로그까지 구축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동안 온라인 쇼핑 경쟁이 소비자가 검색창에 무엇을 입력하느냐에서 시작됐다면 앞으로는 AI가 어떤 브랜드와 상품을 답변에 넣느냐가 첫 번째 관문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SEO에서 GEO로, 다시 AI가 추천부터 결제까지 대신하는 '에이전틱 커머스'로 경쟁 영역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상품을 진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 AI가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상품 정보를 갖춰 놓는 작업 자체가 새로운 유통 경쟁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