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궁 인근 국립고궁박물관 앞 은행나무 아래에서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한국에서 만난 에스토니아 출신 신부와 한국인 신랑이 가족과 관람객들의 축복 속에서 부부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2일 오후 국립고궁박물관 앞 은행나무 쉼터. 턱시도를 입은 신랑이 신부에게 말을 건네자 금발과 푸른 눈의 신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신부는 “당신을 만난 날은 특별한 날”이라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 있었지만 동시에 가장 큰 축복도 찾아왔다”고 말했다.
매년 가을 노란빛으로 물드는 이곳이 이날만큼은 결혼식장으로 변했다. 약 7000㎞ 떨어진 한국과 에스토니아에서 자란 두 사람이 문화와 국경을 넘어 부부가 되는 순간, 은행나무가 결혼식의 ‘증인’이 됐다.
이날 결혼식의 첫 주인공은 에스토니아 출신 유튜버 마이다. 약 22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마이는 3년째 한국에 거주하며 유튜브 ‘김치귀신 마이(Kimchi Ghost Mai)’를 통해 한복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해왔다.
지난해에는 외국인 최초로 미스 춘향에 선발되며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이번 야외 결혼식에는 293쌍이 신청했으며, 마이는 이 가운데 최종 선정된 28쌍 중 첫 번째 주인공이 됐다.
예식은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가 은행나무 아래로 함께 걸어오는 것으로 시작됐다. 붉은색과 푸른색 치마를 입은 두 어머니는 손을 꼭 잡은 채 웃으며 아들과 딸의 결혼을 축복했다.
양가 어머니가 촛불을 밝히는 일반적인 화촉점화는 특별한 예식으로 바뀌었다. 궁궐 권역에서는 촛불을 직접 켜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두 가족이 함께 난에 물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두 집안이 하나의 뿌리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두 가족의 화합을 상징하는 축하 난은 이재명 대통령 배우자 김혜경 여사가 부부에게 선물했다. 김 여사는 과거 한복 관련 행사에서 마이를 만난 인연을 언급하며 “아름다운 문화유산 공간에서 두 분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축하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축사에서 “사람의 마음에는 국경이 없다”며 “두 사람이 가족이 되어 세상에 하나뿐인 두 사람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축하했다.
타넬 셉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는 “두 사람의 결혼으로 에스토니아에는 한국 팬이, 한국에는 에스토니아 팬이 생겼다”며 “모두 윈윈윈(win-win-win)”이라고 말했다.
경복궁과 국립고궁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도 이들의 결혼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냈다.
마이는 “그동안 이방인인 제가 다른 사람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진짜 가족이 됐다고 느껴진다”며 “제 가족을 소개하는 마음으로 한국 문화를 더 아끼겠다”고 말했다.
이번 결혼식을 시작으로 11월 8일까지 총 28쌍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야외 결혼식을 올린다. 영국·프랑스·베트남·카자흐스탄 출신 외국인과 한국인의 국제결혼을 비롯해 군인·경찰·소방공무원 등 다양한 배경의 커플들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내년에는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80쌍의 야외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단청으로 새롭게 단장한 별관을 하객 피로연장으로 무료 제공하고 일반 관람객의 불편을 최소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