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통일 36주년을 맞았지만 옛 동독과 서독 지역의 경제적 격차는 오히려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뿐 아니라 상속·증여 등 자산 이전에서도 격차가 이어지면서 경제적 불균형이 옛 동독 지역에서 극우 정당의 약진과 맞물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동·서독 소득 격차, 해마다 벌어져
3일(현지시간) 독일 일간 베를리너모르겐포스트가 연방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옛 동독 5개주와 동베를린을 포함한 지역의 가구당 연평균 가처분소득은 지난해 4만2259유로(약 6415만원)로 집계됐다.
옛 서독 지역의 4만9506유로(약 7516만원)보다 7247유로(약 1100만원) 적은 수준이다.
동서 지역의 소득 격차는 최근 들어 확대되는 추세다. 2023년 6979유로였던 차이는 2024년 7080유로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7247유로까지 벌어졌다.
지역별 격차도 뚜렷했다. 옛 서독 지역인 바이에른의 가구당 가처분소득은 5만3067유로(약 8056만원)로 가장 많았지만, 옛 동독 지역인 작센안할트는 3만8284유로(약 5812만원)로 가장 적었다. 두 지역의 소득 격차는 1만4783유로(약 2244만원)에 달했다.
◆ 임금뿐 아니라 자산도 격차…상속·증여 95%가 서독
경제적 격차는 임금이나 근로소득에만 그치지 않는다.
베를리너모르겐포스트는 임대소득과 자본소득 등 비근로소득에서도 동서독 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자산을 물려받는 과정에서도 격차가 컸다.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과 증여를 통한 자산 이전의 95%가 옛 서독 지역에서 이뤄졌다.
인구 규모를 고려한 1인당 자산 이전 규모도 옛 서독 지역이 2100유로(약 319만원)를 넘어 옛 동독 지역보다 4배 이상 많았다.
통일 이후 30년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소득뿐 아니라 자산 형성의 기반에서도 동서 지역 간 격차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소득 낮은 작센안할트서 AfD 43.8%…정치 지형에도 영향
경제적 격차는 정치 지형과도 맞물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뒤처진 옛 동독 지역에서 독일대안당(AfD) 등 포퓰리즘 정당이 강세를 보이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6일 치러진 작센안할트주 의회 선거에서는 AfD가 43.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창당 이후 해당 지역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냈다. 중도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CDU)은 17.2%에 그치면서 AfD에 뒤졌다.
작센안할트는 옛 동독 지역 가운데서도 가구당 가처분소득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좌파 포퓰리즘 정당인 ‘사회적 정의와 경제적 합리성을 위한 동맹’(BSW)의 작센안할트주 원내대표 토마스 슐체는 CDU가 장기간 주정부를 이끈 결과 작센안할트가 “빈민 지역”이 됐다고 주장했다.
◆ 통일 기념일 맞은 대통령 “극단주의가 통합 위협”
동서 지역의 경제적 격차가 정치적 갈등과 맞물리는 가운데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통일 기념일을 맞아 민주주의와 사회 통합에 대한 경고를 내놨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이날 브레멘에서 열린 통일 기념 행사에서 좌우 극단주의 세력의 성장과 사회 분열이 과거 바이마르 공화국의 상황을 연상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독일이 바이마르 공화국과 닮아갈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며 민주적 절차에 대한 폄훼, 대중의 급진화, 타협에 대한 비난 등을 경고 신호로 꼽았다.
이어 극단주의 세력이 다른 사람을 조롱하고 위협하는 정치적 선동을 벌이고 있다며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뿐 아니라 우리의 통합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동서 지역 간 갈등을 정치적 동력으로 이용하는 극단주의 세력을 겨냥했다.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옛 동독 5개주와 동베를린이 연방공화국에 편입된 날을 통일 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16개 연방주는 해마다 돌아가며 이날 통일 기념 행사를 개최한다.
통일 이후 36년이 지났지만 지역 간 소득과 자산 격차가 여전히 이어지는 가운데 경제적 불균형이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 통합에 미치는 영향은 독일 사회의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