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오전 9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 평화광장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땅!’ 하는 출발 신호가 울리자 검은색 기념 티셔츠를 맞춰 입은 수천 명 러너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한국지역난방공사가 후원하고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굿피플이 주최하는 ‘에너지 히어로 레이스’의 한 장면이다. 올 행사에는 총 3686명이 참가했다.
참가비 전액을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나 LED(발광다이오드) 기기 교체 등 취약계층의 에너지 효율 개선에 쓰는 등 기부 축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대회 코스를 직접 뛰어봤다.
5·10㎞ 코스로 구성된 에너지 히어로 레이스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온 남녀노소 참가자가 한데 어우러졌다. 어린 딸을 태운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젊은 부부와 지친 아이를 목마 태운 아버지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달리기 초보자를 비롯해 참가자 대부분 순위와 기록을 떠나 좋은 취지의 행사를 즐겼다. 출발 전부터 대회장은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인기 치어리더 박기량과 함께 참가자들이 음악에 맞춰 몸을 푸는 댄스 타임으로 흥을 돋웠고, 세계 7대 메이저 마라톤을 1년 만에 모두 완주하며 주목받은 가수 션의 힙합 공연도 펼쳐졌다. 레이스 종료 후에는 가수 KCM의 발라드 공연과 경품 추첨 행사가 이어졌다. 지역난방공사가 진행한 에너지 절약 관련 퀴즈 이벤트에도 많은 사람이 몰려 소정의 상품을 나눠 가졌다.
10㎞ 마라톤에 참가한 강신우(41)씨는 “처음 뛰어본 거라 마라톤용 러닝화를 준비하지 못해 발이 다 까졌다”면서도 “첫 경기여서 좋은 기록을 내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뛴 만큼 에너지 취약계층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니 뿌듯하다. 내년에는 이 기록을 꼭 뛰어넘을 수 있도록 틈틈이 달릴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에너지 히어로 레이스가 지금과 같은 기부 축제로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 4일 한국지역난방공사에 따르면 당초 이 행사는 참가비를 받아 중증 장애 환우 치료비 등으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화하면서 오프라인 행사를 제대로 개최하기 어려워졌다. 지역난방공사는 고심 끝에 ‘비대면(언택트) 마라톤’ 카드를 꺼냈다. 공사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시기에 단체로 모일 수 없다 보니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다”며 “참가자들이 각자 달린 뒤 그 모습을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대회를 열어 어떻게든 행사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일상이 회복되자 지역난방공사는 2023년부터 대회를 개편했다. 마침 그해 3월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에너지 효율혁신 및 절약 강화 방안’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대회 주제를 ‘에너지 효율 향상’으로 바꿨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조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대응한다는 취지도 담겼다. 에너지 공기업으로서 국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에너지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공사는 본업인 에너지와 사회공헌을 접목해 취약계층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덜어주고, 참가자들은 에너지 절약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하동근 지역난방공사 사장은 “에너지 히어로 레이스는 참가자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에너지 취약계층에 따뜻한 일상을 전하는 동시에 에너지 절약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행사”라며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