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못 박는 트럼프, 선 긋는 韓… 안보 후속 협의 불똥 우려 [트럼프 ‘대미투자 압박’ 본격화]

일방 발표에 간극 커지는 한·미

알래스카 LNG 사업 압박 이어
원유회수증진 84억弗 투자 발표

팩트시트에 없는 EOR 투자계획
정부, 美에 발언 의미·배경 등 질의

핵잠·조선·전작권 전환 등 현안
투자 압박 해결 안 되면 제동 전망

한국의 대미투자 프로젝트가 최근 한국과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를 계기로 닻을 올리게 됐지만 미국 측의 과도한 투자 압박이 거세지면서 출발부터 암초를 만난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한국의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더니 공동보도문(팩트시트)에도 없던 84억 달러 규모의 원유회수증진(EOR) 투자 계획까지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급기야 한국이 투자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투자금이나 관세를 두 배로 올릴 수도 있다는 으름장을 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버틀러밴데일리아 학생활동센터에서 공화당 중간선거 지원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업 투자 유치와 관세 정책, 북한과의 좋은 관계 유지 등 자신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 제공, AFP연합뉴스

대미투자 프로젝트 발표를 반겼던 국내 산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에다 고관세를 무기로 한 미국 내 공장 증설 압박에 다시 긴장 모드로 돌아섰다. 알래스카 LNG 등 미국 측의 대미투자 압박은 핵추진잠수함 도입 등 추후 한·미 간 안보 분야 후속 협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정부는 알래스카 LNG 사업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고강도 압박 발언에 대해 합의 사안 외의 다른 선택지는 없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4일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투자 관련 언급에 “한·미 간 전략투자 합의사항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어 있다”고 했다. 지난 1일 발표된 한·미 양국의 팩트시트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해 상업적 합리성 및 모든 관련 국내법적 요건의 충족을 조건으로 검토에 착수하도록 되어 있다.

 

EOR 계획도 팩트시트에 없는 만큼 정부는 통상 채널을 통해 미국 측에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의미와 배경 등이 뭔지 질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다만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 측 태도가 과하다고 해도 대립각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애초 대미투자의 성격이 미국이 부과한 관세 25%를 15%로 낮추기 위한 대가이기 때문이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와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관세를 다시 돌릴 수 있다는 점으로 해석될 경우 한국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산업계는 관세 불확실성이 다시 커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해온 자동차·배터리업계는 추가 투자 요구와 관세 변동에 따른 부담을, 철강업계는 높은 관세가 수출과 수익성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환경이 자꾸 흔들리면 기업들은 장기적인 투자·생산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원전·발전설비업계와 가스관을 생산하는 철강업체들은 미국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따른 수주 기회를 기대하면서도 실제 참여 범위와 계약 조건을 주시하고 있다. 사업 규모가 커도 국내 기업의 수주로 이어질지는 별개인 만큼 사업성 등을 하나하나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대미투자 압박은 양국의 주요 안보 현안 논의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외교·안보 당국은 대미투자 프로젝트 공식 발표를 계기로 안보 협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핵추진잠수함과 원자력 협력 등 안보 분야 후속 협의는 지난 6월 서울에서 첫 회의가 열린 이후 뚜렷한 진전이 없었다.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난 조현 외교부 장관은 “(대미투자 프로젝트 발표는) 한·미동맹을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강화해 간다는 비전을 실현하는 데 있어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핵추진잠수함, 평화적 이용을 위한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조선 협력,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내도록 협의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대미투자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의가 지지부진할 경우 안보 협의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호 대미투자 프로젝트인 1200억달러 규모의 대형원전 8기 건설만 해도 각 원전이 들어설 미국 내 부지와 사업구조, 건설 일정 등이 합의되지 않았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투자 공식 발표 후 안보 분야 실무 접촉을 이어왔지만 “우리 마음만큼, 기대만큼 진척을 이루지는 못했다. 가급적 빨리 협상을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안창용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통상과 안보까지 연결되는 이슈라서 불가피한 협상 측면이 있다”면서 “협상은 최선이었지 않나 싶은데 ‘디테일’을 잘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