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안 갑니다”…금메달 환호 뒤 불붙은 병역특례 논쟁

축구·야구 선수 언행에 비판 확산
BTS 사례 재소환…정치권도 개편론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4일 막을 내린 가운데 예술·체육요원 병역특례의 공정성 논쟁이 재점화했다. 축구·야구 대표팀 일부 선수들이 우승 직후 병역 혜택을 강조하거나 전역모를 쓴 사진을 공개하면서 국방의 의무를 가볍게 여겼다는 비판이 일면서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국위 선양을 명분으로 도입한 제도를 시대 변화에 맞춰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군대 안 간다’ 발언에 전역모까지…잇단 사과

 

아시안게임 4연패를 달성한 남자 축구 대표팀은 우승 직후 발언으로 논란에 불을 붙였다. 대표팀은 지난 3일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엄지성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주장 이기혁은 경기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귀국 후 입대까지 9일이 남은 상황이었다고 설명한 뒤 메달을 들어 올리며 “군대 안 갑니다”라고 말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에서 우승한 23세 이하(U-23) 축구 대표팀 이기혁이 4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뉴시스

양민혁은 “메달이나 트로피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병역 혜택을 보고 경기에 임했다는 취지로 말해 비판을 받았다. 이번 대회에서 교체로 3경기에 출전해 총 16분을 뛴 박승수가 라커룸에서 전역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도 논란을 키웠다.

 

야구 대표팀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군 미필 프로 주전급 선수들이 중심인 한국은 사회인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 슈퍼라운드에서 0-5로 졌다.

 

결승에선 일본을 3-1로 꺾고 대회 5연패를 달성했지만, 주장 노시환이 “과정은 필요 없이 금메달이라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이번 우승으로 대표팀 24명 중 16명이 병역특례 대상이 됐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한국 야구 대표팀 노시환이 지난달 2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논란이 커지자 축구 선수들은 잇따라 사과했다. 이기혁은 4일 귀국 후 “주장인 만큼 제가 말의 무게를 생각하고 얘기했어야 한다”며 “국방의 의무를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양민혁도 “병역 혜택이 여러 동기 중 하나였다는 뜻이 잘못 전달됐다”며 사과했다.

 

박승수는 사진을 내리고 팬에게 받은 모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대한축구협회도 국민과 현역 장병들에게 사과하고 국가대표 소양·윤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축구 선수 박승수 소셜미디어(SNS) 캡처.

◆BTS는 입대, 콩쿠르 입상자는 특례…형평성 논란

 

예술·체육요원은 현역 복무 대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며 병역 의무를 이행한다. 체육 분야에선 올림픽 3위 이상이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야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해당 분야에서 34개월간 복무하며 특기를 활용한 봉사활동 544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어 현역 입영에 따른 경력 단절을 피할 수 있다.

 

병역특례의 형평성 논쟁은 2022년 방탄소년단(BTS)의 입대 문제를 계기로 예술계에서도 불거졌다. 당시 클래식 연주자 등은 지정된 콩쿠르 입상 성적으로 예술요원에 편입될 수 있지만, 세계적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을 높인 BTS는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왔다. 대중문화예술인에게도 특례를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과, 형평성을 맞추려면 기존 특례부터 축소하거나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육군 현역 복무를 마치고 만기 전역한 그룹 방탄소년단(BTS) 뷔와 RM이 2025년 6월 강원 춘천시 신북읍체육공원에서 전역 인사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룹 방탄소년단(BTS) 지민과 정국이 2025년 6월 경기 연천군 연천읍 연천공설운동장에서 육군 현역 복무를 마치고 전역 인사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면 병역자원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인기와 경제적 성과를 이유로 특례를 확대하면 일반 청년들과의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도 컸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병역 이행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들어 BTS의 군 복무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BTS는 결국 2022년 진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병역을 이행했다. 슈가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나머지 6명은 현역으로 복무를 마쳤다.

 

1973년 도입된 예술·체육요원 제도는 그동안 여러 차례 기준이 바뀌었다. 체육 분야는 도입 당시 세계선수권·유니버시아드·아시아선수권 등의 입상자까지 포함했지만, 1990년 올림픽 3위 이상과 아시안게임 1위로 축소됐다. 이후 월드컵 16강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성적이 특례 기준에 추가됐다가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 논란 속에 2008년 삭제됐다.

 

◆“낡은 제도” vs “갈라치기”…정치권 공방

 

병역특례 논란은 정치권 공방으로 이어졌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4일 페이스북에서 “세계 무대에서 국위선양을 누구보다 크게 한 BTS도 병역을 이행했다”며 “이제 ‘국위선양’이라는 명분만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가 병역을 보상으로 걸었으니 선수가 그것을 보고 뛰는 것은 당연하다”며 “문제는 선수가 아니라 낡은 제도”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선수들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군대가 혐오시설인가”라며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선수들의 의식이 이 정도라니, 너무나 참담하다”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금메달 딴 선수들의 노고에 대한 격려에 앞서, 이때다 싶어 일부 선수들의 어리숙한 행동을 정치적 논쟁으로 끌어들이는 모 의원의 ‘갈라치기 정치’ 참으로 낯뜨겁다”고 비판했다.

 

제도 개편의 핵심은 국제대회 성과에 대한 보상과 병역의 공정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있다. 체육계에선 선수가 전성기를 보낸 뒤 복무할 수 있도록 입영 연령을 늦추거나, 단일 대회 입상 대신 여러 국제대회의 누적 성적을 반영하는 마일리지 제도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나경원 의원도 특례 대상 대회·종목을 현재의 국가 위상에 맞게 재정립하고 국제대회 누적 성적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