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업계가 완전히 새로운 메뉴보다 이미 소비자에게 익숙한 대표 제품을 다시 손보는 데 힘을 싣고 있다.
오랫동안 판매된 버거와 치킨을 기본으로 두고 패티를 두껍게 만들거나 매운맛과 새로운 소스를 더하는 방식이다. 낯선 신제품을 처음부터 알리는 부담은 줄이고 기존 대표 메뉴의 인지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식업계의 주요 제품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롯데리아다. 롯데GRS가 운영하는 롯데리아는 대표 메뉴 '리아 새우'와 '리아 불고기'를 변형한 '리아 두툼새우'와 '리아 불고기 레드'를 내놨다.
리아 두툼새우는 기존 새우버거의 강점인 새우 식감을 살리면서 패티의 볼륨을 키웠다. 리아 불고기 레드는 기존 불고기버거의 단맛에 청양고추를 활용한 매운맛을 더했다.
판매량도 빠르게 늘었다.
출시 후 2주 동안 리아 두툼새우는 100만여개, 리아 불고기 레드는 약 50만개가 팔렸다. 리아 두툼새우 판매량은 당초 목표의 242%에 달했다.
매장별 판매량에서도 이전 제품을 넘어섰다. 리아 불고기 레드 2종의 점포당 하루 평균 판매량은 지난해 내놓은 김치불고기버거 2종보다 2배 많았다. 리아 두툼새우도 지난해 청양 바삭 통새우 버거보다 40% 증가했다.
롯데리아는 최근 몇 년간 이 같은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불고기버거를 활용한 '불고기 익스트림 오징어 버거'와 '불고기포텐버거', 새우버거를 변형한 '새우 익스트림 레몬크림 버거'와 '청양 바삭 통새우버거'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한국맥도날드도 대표 치킨버거를 한국식 매운맛으로 변형했다.
맥도날드는 지난 9월 '고추장 버터 소스'를 넣은 '맥스파이시 고추장 버터'와 '맥크리스피 고추장 버터'를 출시했다. 맥스파이시는 국내에서 꾸준히 판매해 온 대표 치킨버거 가운데 하나다.
새 제품은 기존 닭가슴살 패티에 고추장의 매운맛과 버터의 고소함을 더했다. 맥크리스피 제품에도 같은 소스를 적용해 한 가지 소스를 두 개의 기존 제품군으로 확장했다.
맥도날드가 현재 판매하는 버거 가운데서도 빅맥, 1955 버거, 불고기버거, 맥스파이시 상하이버거 등 장기간 판매해온 제품이 주요 라인업을 차지하고 있다. 신제품을 내면서도 기존 대표 메뉴를 함께 가져가는 구조다.
버거킹은 '와퍼'를 중심으로 변주 폭을 넓히고 있다.
올가을에는 '트러플 머쉬룸 와퍼'를 4년 연속 시즌 메뉴로 다시 내놨다. 이 제품은 2017년 한정 메뉴로 처음 출시됐다가 소비자 요청을 반영해 2023년 재출시된 뒤 가을마다 판매되고 있다.
올해는 여기에 매운 소스를 넣은 '핫 트러플 머쉬룸 와퍼'를 추가하고 트러플 치즈 버거와 감자튀김, 파이까지 제품군을 넓혔다. 하나의 인기 버거에서 출발해 사이드 메뉴까지 같은 맛으로 확장한 셈이다.
대표 메뉴를 재해석하는 방식은 매장까지 확대됐다.
버거킹은 지난 9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첫 플래그십 매장 '플레임그라운드'에서 와퍼를 구성하는 패티와 채소 등을 해체해 코스 요리 형태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대표 메뉴를 단순히 신제품으로 변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 체험으로 연결한 사례다.
치킨 브랜드도 비슷하다.
KFC는 지난 5월 대표 메뉴인 '오리지널 치킨'을 재해석한 '오리지널 통다리'를 선보였다. KFC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오리지널 치킨의 맛을 가져가면서 소비자가 선호하는 닭다리 부위를 전면에 내세운 제품이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미 인지도가 높은 메뉴의 이름과 맛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 대신 패티 두께나 부위, 매운맛, 소스, 토핑을 바꿔 새 제품처럼 보이게 만든다.
햄버거 업계에서 이런 전략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신제품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도 있다. 메뉴 하나를 새로 만들어 시장에 정착시키려면 제품 개발뿐 아니라 광고와 소비자 인지도를 확보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기존 대표 제품을 활용하면 소비자가 메뉴의 기본 맛을 이미 알고 있어 신제품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
실제 올해 버거 프랜차이즈들은 원재료와 물류비 부담으로 잇따라 가격을 조정했다. 롯데리아는 지난 5월 버거 단품 22종 가격을 평균 2.9% 올렸고, 맥도날드와 버거킹·KFC·맘스터치도 올해 일부 품목의 가격을 인상했다.
가격을 계속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제품의 만족도를 높이거나 새로운 구매 이유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롯데리아 리아 두툼새우의 판매량이 이를 보여준다. 완전히 새로운 버거를 내놓는 대신 소비자가 수십 년간 알고 있던 새우버거를 더 두껍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고, 2주 만에 100만개를 넘겼다.
올가을 햄버거 시장의 신제품 경쟁은 결국 새로운 메뉴를 누가 더 많이 내놓느냐보다, 익숙한 대표 메뉴를 얼마나 새롭게 보이게 만드느냐에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