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도 ‘발칵’ 뒤집혔다…군필들 염장 지른 AG 전역모 ‘병역 특례’ 후폭풍

금메달 직후 “군대 안 갑니다”…‘면제만 보고 뛰었다’ 발언까지
박성훈 “태극마크는 병역 피하는 프리패스 아냐”…제도 전면 재점검 요구
정연욱 “그 무렵 누군가는 발목 잃었다”…나경원은 대상·기준 손질 제안
염태영 “갈라치기 정치” 반박도…안철수 “군대가 혐오시설인가”

한국 남자축구가 아시안게임 4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새 역사를 썼지만, 우승 직후 일부 선수들의 병역 관련 발언과 ‘전역모’ 사진이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해야 할 순간에 나온 말과 행동이 병역의무를 둘러싼 공정성 문제로 번졌고, 정치권에서는 현행 예술·체육요원 제도 자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맨 왼쪽부터)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나경원·정연국 국민의힘 의원. 각 의원실 제공. 위 사진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 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이번 논란은 지난 3일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한국이 1대 0으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확정한 직후 시작됐다. 대표팀 주장 이기혁은 인터뷰에서 “군대 안 갑니다”라고 말했고, 양민혁은 “군 면제라는 보상이 있으니 그거 하나만 보고 경기를 했던 것 같다”고 했다. 박승수는 라커룸에서 ‘전역모’를 쓴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삭제했다.

 

선수들의 발언과 행동이 이어지면서 병역 혜택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도 엇갈렸다. 특히 병역의무를 이미 마쳤거나 현재 복무 중인 또래 청년들 사이에서는 국가대표로서 얻은 영광과 병역 혜택을 가볍게 연결한 듯한 언행이 적절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선수들은 잇따라 고개를 숙였다. 이기혁은 귀국 후 “주장인 만큼 제가 말의 무게를 생각하고 얘기했어야 했다”며 국방의 의무를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양민혁과 박승수 역시 병역의무를 조롱하거나 가볍게 생각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대한축구협회(KFA)도 선수들의 경솔한 언행에 사과하고 국가대표 소양·윤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과 이후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치권이 병역특례 제도의 존폐와 기준을 놓고 맞붙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5일 현행 예술·체육요원 제도가 시대와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지 다시 따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일부 국가대표 선수들의 언행을 겨냥해 “대한민국을 대표해 얻은 영광을 개인의 ‘병역 탈출 성공담’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태극마크는 병역을 피하기 위한 ‘프리패스’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종목별 경쟁 수준과 국제적 위상 등을 종합해 특례 기준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복무와 공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축구·야구 등 정상급 선수들의 대표팀 선발과 국제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선수 선발이 어렵다는 이유가 병역의무의 예외를 당연한 권리로 만드는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은 논란을 군 복무 현장의 희생과 맞물려 바라봤다. 정 의원은 4일 페이스북에 “금메달을 들고 ‘저 군대 안 갑니다’라고 했다. 라커룸에선 전역모를 쓴 사진이 올라왔다”며 “병역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 국민이 의심하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지난달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도 언급했다. 그는 “쓰러진 부하를 구하러 달려간 수색대대장은 2차 폭발에 발목을 잃었다”며 “마취에서 깨어나 처음 던진 말은 ‘다른 부대원들은 괜찮습니까’였다”고 적었다.

 

다만 선수 개인에 대한 비판이 제도 논의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취지도 밝혔다. 정 의원은 “의심을 살 만한 장난이었다면 지탄은 감수해야 한다”면서도 “선수들이 사과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제도를 손볼 책임은 정치에 있다. 무겁게 보겠다”고 강조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논란의 책임을 선수 개인보다 제도에 돌렸다. 나 의원은 “선수를 탓할 일이 아니다. 그 솔직함은 제도가 만든 것”이라며 “국가가 병역을 보상으로 걸었으니 선수가 그것을 보고 뛰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선수가 아니라 낡은 제도”라고 지적했다.

 

나 의원은 체육·예술 병역특례가 도입된 1973년과 현재의 한국이 처한 국제적 위상이 달라졌다는 점도 짚었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알릴 수단이 제한적이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K팝과 드라마, 반도체와 스마트폰, 자동차 등으로 한국의 존재감이 커진 만큼 ‘국위선양’만으로 제도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취지다. 특히 방탄소년단(BTS)도 병역을 이행했다며 예체능 병역특례의 근본적 개편을 촉구했다.

 

구체적인 개편 방향도 제시했다. 특례 대상 대회와 종목을 현재의 국가 위상에 맞게 다시 정하고, 단 한 차례의 입상이 아니라 국제대회 누적 성적을 반영하는 방식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론도 나왔다.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노고에 대한 격려가 먼저라며 병역특례 논쟁을 정치적 공방으로 끌고 가는 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염 의원은 일부 선수들의 미숙한 행동을 문제 삼는 것과 별개로 이를 정치적 논쟁으로 확대하는 것은 “‘갈라치기 정치’”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박승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자신의 SNS를 통해 “군대가 혐오시설인가”라며 “매년 입대하는 수많은 청년들은 모두 호구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아시안게임 군 면제, 이제 재고해야 한다”며 국가를 욕보이고 군대를 혐오하는 국가대표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서부전선에서 군 장병이 지뢰 폭발로 다친 사실도 거론하며 병역의무의 의미를 강조했다.

 

논쟁의 핵심은 결국 ‘국위선양에 대한 보상’과 ‘병역의무의 형평성’ 사이에서 어디에 기준을 둘 것인가다.

 

예술·체육요원 제도는 1973년 도입됐다. 국제대회에서 일정 성적을 거둔 선수와 예술인이 현역병 입영 대신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며 국가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취지다. 근거 법률인 병역법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관이지만, 예술·체육요원 편입 추천과 복무 지휘·감독 권한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있어 국방과 체육 분야가 함께 들여다봐야 하는 제도다.

 

제도 폐지 또는 축소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병역의무가 개인의 경기력이나 직업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시안게임 금메달처럼 특정 국제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혜택이 주어지는 현행 방식이 국민이 체감하는 공정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제도를 없애거나 대폭 축소할 경우 국제대회에서 국가대표로 뛰는 정상급 선수들의 선수 생활이 중단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축구·야구처럼 병역 문제가 대표팀 구성과 맞물리는 종목에서는 국제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