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청년들 울리는 부동산 ‘비정상’

최근 30대 후반의 지인에게 생긴 일이다.

서울 북부 3억원 초반의 전셋집에서 6년째 평화롭게 살던 그는 최근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에게 연락을 받았다. “자녀가 입주해야 해 이번 계약기간이 끝나면 집을 비워 달라”는 통보였다. “살고 싶은 만큼 편히 사시라”고 했던 앞선 말과는 분명 달라진 태도이지만 어쩌겠나. 부랴부랴 새 보금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매매도 생각해 봤지만 집값은 천정부지. ‘영끌’을 하더라도 살 수 있을지 장담 못 할 가격까지 올라 버렸다. ‘귀한 전세’는 어쩌다 매물이 있더라도 보증금은 이미 과거 수준이 아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같은 단지의 다른 매물을 겨우 찾아 계약에 성공했다.

이병훈 국제부 기자

보증금은 기존보다 20% 넘게 올라 거의 4억원에 육박했다. 6년간 20%가 올랐다면 얼핏 물가상승률 수준의 자연스러운 가격 인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대출금이 늘어난 데다 금리 인상기까지 도래하면서 새로 계약한 전세자금대출의 이자가 훨씬 불어난 것이다. 호수만 달라졌을 뿐, 이전과 똑같은 곳에서 사는데 주거비는 크게 늘어 버렸다. 남들은 구하지도 못한다는 전세 매물을 찾은 게 그나마 행운이라고 자위라도 해야 할까.



최근의 청년 세대가 어떻게 주거난에 몰리는지 압축해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부터 폭등한 서울 외곽 지역의 집값은 전고점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청년들의 사정권에 있었던 중저가 주택의 가격이 손에 닿지도 못하게 올라 버렸다. 순식간에 ‘첫 집 마련의 꿈’이 그렇게 좌절됐다.

어떻게든 단기간에 주택 공급을 늘리려는 정부가 다주택자를 향해 ‘집을 팔라’는 압박을 강화하자 전세 물량은 급감했다. 아마 앞선 사례의 집주인도 “마귀”라고까지 하는 힐난에 못 이겨 임대소득을 포기하고 자녀에게 증여를 선택했을 터다. 물량 부족에 가격은 당연히 오른다. 그마저도 못 구하면 훨씬 비싼 월세로 가야 한다.

중저가 주택은 폭등하고 전세는 씨가 말랐다. 이런 상황에서 무주택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서는 이미 ‘체념’의 단계로 접어든 기류가 감지된다. 최근 몇 차례 이들과 부동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모르겠다”였다. “이렇게까지 올랐으면 조정이 오지 않겠나”라며 희망 섞인 전망밖에는 할 말이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현시점에서는 대응할 능력을 아예 상실했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정상화가 국가 핵심 과제”라던 올 상반기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무색해졌다. 폐버스를 활용해 청년 주택을 만들자는 여당이나, 토양 정화도 마무리되지 않은 공원에다 집을 짓겠다며 야당 시장과 기싸움하는 정부를 보면 이들이 정말로 부동산 해법을 마련할 의지나 능력이 있는 건지 의심까지 든다. 이런 와중에 강남은 내리고 외곽이 ‘살짝’ 올랐다며 서울 집값이 “평탄화”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말은 덤이다.

정부가 말하는 ‘부동산 정상화’는 무엇일까. “전세 살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게 부동산 정상화”라는 한 기사의 댓글이 쉬이 잊히지 않는다.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을 죄악시하며 ‘내 집 마련’이 원천 봉쇄돼 버린 상황에서, 청년과 기성세대 간 벌어지는 경제적 격차로 인한 박탈감과 갈등은 우리 사회에 큰 비용으로 다가올 것이다. ‘정상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