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을 코끝으로 가져가자 달콤한 오크향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묵직한 향이었다. 시나몬과 건포도, 초콜릿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나무 냄새가 목어울대를 진하게 괴롭혔다. ‘피트 위스키’라고 하면 떠올리는 강한 훈연향이 아니었다. 마치 스코틀랜드 증류소에 있는 것 같았다. 참나무 하나가 응축되어 위스키 한 모금에 담긴 듯 했다. 향은 그렇게 목울대를 치고 넘어가 오랫동안 식도에 머물렀다. 알코올의 자극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자극이었다. 모든 향이 집중하여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지난 2일 서울 압구정 고든앤맥페일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열린 ‘벤로막 12년’ 미디어 시음 행사. 이날 행사는 고든앤맥페일이 한국에 새로 선보인 벤로막 12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벤로막 12년을 한 모금 마실 때, 스코틀랜드에서 날아온 위스키는 그렇게 코를 괴롭혔다. 이날 행사는 이미 한국에서 판매중인 벤로막 10년과 12년 언피티드, 12년 캐스크 스트렝스를 차례로 비교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898년 스코틀랜드 포레스에서 설립된 벤로막은 자동화와 대량생산보다는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강조한다. 맥아를 건조할 때 소량의 피트를 사용하고, 두 종류의 효모를 이용해 3~5일간 비교적 길게 발효한다. 목표는 연기 맛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실 풍미와 몰트의 단맛 속에 스모크를 자연스럽게 섞어 넣는 것이다.
발표를 진행한 스티브 노트먼 고든앤멕페일 아시아퍼시픽 세일즈 총괄 디렉터를 따라 숙성 전 원액인 ‘뉴메이크 스피릿’을 한 두방울 손목에 떨어 뜨린 뒤 비벼 알코올을 날린 뒤 향을 맡아보았다. 풋풋한 과실 향 뒤에서 아주 옅은 연기 냄새가 남았다. 오크통에 들어가기 전부터 벤로막 특유의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어 등장한 주인공은 벤로막 12년이었다. 기존 10년이 퍼스트필 셰리 캐스크와 아메리칸 오크 캐스크를 함께 사용하는 것과 달리, 12년은 숙성 전 기간을 퍼스트필 유러피언 셰리 캐스크에서 보낸다. 알코올 도수도 기존 시그니처 라인의 43%보다 높은 46%다. 벤로막 12년 시음행사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46도라는 숫자와 실제 체감의 차이였다. 도수만 보면 부담스러울 수 있어 보였지만 한 모금 입에 머금었을 때 알코올의 느낌 보다는 다양하게 흩날리는 향과 톡톡 터지는 맛들이 더 진하게 맴돌았다. 냉각 여과를 하지 않는 논칠필터드 방식도 적용했다. 노트먼 디렉터는 “삼겹살도 비계와 살코기를 함께 먹어야 맛있듯, 지방 성분을 걸러내지 않아야 질감이 풍부해진다”고 비유했다. 얼음을 넣으면 살짝 뿌옇게 변할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음미했던 10년보다 입안을 채우는 무게감이 확연히 달랐다.
마지막은 벤로막 12면 캐스크 스트렝스였다. 70% 퍼스트필 셰리 오크와 30% 퍼스트필 아메리칸 오크 캐스크를 사용하고, 숙성 후 물을 더해 도수를 낮추지 않은 제품이다. 바닐라와 초콜릿, 스모크가 훨씬 진하게 응축돼 있었다. 단순히 알코올의 자극이 강한 느낌 보다 과실과 스파이스, 오크의 느낌이 응축되는 인상이 더욱 강했다. 아영FNC는 “일반 12년이 셰리 캐스크와 스모크의 균형을 정교하게 보여준다면 캐스크 스트렝스는 같은 벤로막의 스타일을 보다 강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위스키 시장에서는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낮은 도수와 하이볼 같은 음용 방식이 주목받고 있지만 벤로막은 반대로 도수를 46%로 높였다. 대신 ‘독함’이 아니라 질감과 풍미의 밀도를 택했다. 회사 측은 부드러운 위스키 선호를 알지만 자신들이 믿는 스타일을 지키겠다고 답했다. 도수가 높은 만큼 하이볼이나 칵테일 등으로 폭넓게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12년은 온더록스를 권했다. 얼음이 녹으며 스모크가 물러나고 초콜릿 풍미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페어링으로는 바비큐나 소·양고기처럼 기름진 고기를 추천했다. 마크 기어리 고든앤맥페일 대표는 “가능하면 사람들에게 좀 다양한 기회를 주고 싶다. 가능하면 저희가 가지고 있는 포트폴리오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영국·독일과 함께 핵심 시장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꼽혔다. 싱글몰트 시장이 빠르게 크고 있고 배우려는 소비자가 많다는 이유다. 고든맥페일이 벤로막 12년의 아시아 첫 시음회를 한국에서 가진 이유다. 고든앤맥페일은 아영FBC와 함께 소비자 대상 프로모션과 바텐더 교육 등을 진행하며 국내에서 벤로막을 알릴 계획이다. 아영FBC 관계자는 “벤로막 12년은 기존 10년보다 숙성 기간만 늘린 제품이 아니라, 풍부한 풍미와 벤로막 특유의 섬세한 스모키함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제품”이라며 “국내 소비자들이 직접 시음하며 벤로막의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