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포천
가을 날씨는 나들이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포천 하면 생각나는 게 이동갈비다. 1990년대 어린 시절 부모님과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 외식으로 돼지갈비를 좋아하던 우리 가족은 포천의 한 갈빗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평소보다 더 달큰하고 부드러운 갈비 맛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계산하던 그때, 그게 실은 소갈비였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해하시던 어머니의 얼굴과 멋쩍게 웃던 사장님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고기는 비싸다. 돼지갈비와 소갈비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어렸던 우리와, 자식 앞에선 당당하고 싶었던 부모님의 마음이 합쳐진 것이 포천 이동갈비와의 첫 만남이었다. 오히려 그때의 그 일 덕분에 우리 가족의 외식 리스트에는 종종 양념 소갈비도 포함됐다. 평일 내내 원단, 재봉틀과 씨름하시던 부모님은 일요일마다 이처럼 ‘작은 미식회’를 열었다. 학교가 끝나면 일하는 어머니 옆에서 원단을 같이 뒤집고, 밥 먹기 전 실밥을 뜯고, 건넛방에서 돌아가던 미싱 소리를 자장가 삼던 그때는 내게 참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 개성 갈비곰탕
오늘 찾은 곳은 포천의 ‘개성 갈비곰탕’이다. 이른 저녁 시간, 가게 안에는 이미 삼삼오오 모여 작은 술자리가 펼쳐지고 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갈비곰탕이다. 세월이 묻어나는 공간. 주당들의 호탕한 웃음소리. 맛에 감탄하는 젊은 커플의 목소리.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 거기에 더해 타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질감과 설렘이 참 좋다. 가게는 문을 연 지 20년이 조금 안 됐다고 한다. 세월이 느껴지는 걸 보니 이곳에도 많은 추억이 스며들었구나 싶다.
먼저 반찬이 나왔다. 찬통에는 덜어 먹을 수 있는 김치와 섞박지가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고춧가루를 머금은 모양만 봐도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군침이 도는 색이다. 앞접시에 덜어 놓고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이 김치는 그냥 먹어도 분명 맛있겠지만, 곰탕을 한 입 먹고 난 뒤 먹어야만 그 진가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곧 갈비곰탕이 나왔다. 말 그대로 갈비가 들어간 곰탕이다. 국물은 맑지 않고 뽀얀 빛깔이다. 국물을 한 입 먹어본다. 입에 달라붙는 콜라겐을 느끼니 이곳은 국물을 직접 우리는구나 싶다. 소금을 넣어 천천히 간을 잡아본다. 곰탕 구성에 맞게끔 이곳은 소면 사리를 준다. 두 덩어리나 말아준 소면과 마음껏 덜어 먹으라는 듯 그릇 가득 담긴 어슷썬 대파를 보니 그 인심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사리를 넣고 훌훌 저어 부드럽게 풀린 면을 먹어본다. 잔뜩 기다려준 김치와 함께하니 그 맛이 절묘하다. 갈비는 또 어떠한가. 고기가 한가득하다. 내가 운이 좋은 걸까. 흔히 갈비탕집에서 한두 개씩 섞여 나오는 마구리 뼈가 하나도 없다. 갈비탕집에서 마구리 뼈는 품위 있게 먹기가 곤란하다. 고기를 꺼내 식혀 소스에 찍어 먹어본다. 부드러우면서도 갈비 특유의 진득한 식감이 기분 좋게 입안에서 춤을 춘다. 직접 끓인 육수에서는 그윽한 육향이 올라온다. 프랜차이즈 탕집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낭만이다. 정신없이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했다. 평소에는 먹지 않던 믹스커피를 한 잔 뽑았다. 해가 진 골목을 거닐며 믹스커피를 마시고 가게를 뒤돌아본다. 이 갈비곰탕집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곰탕
곰탕은 오랜 시간 고기와 뼈를 끓여 먹던 우리 음식문화에서 발전한 음식으로, 조선 시대의 여러 기록에서도 고기를 삶아 국물로 먹는 조리법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소를 귀하게 여기던 시대에 살코기뿐 아니라 뼈와 부산물까지 활용해 깊은 국물을 만들어 먹은 것은 우리 음식문화의 실용적인 지혜이기도 했다.
곰탕이라는 이름 역시 ‘고다’라는 조리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랜 시간 끓여 재료의 맛을 우려내는 것이 핵심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설렁탕과 함께 장터와 식당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한 끼 음식으로 자리 잡으며 서민들의 든든한 식사가 됐다. 갈비곰탕은 이러한 곰탕 문화에 소갈비를 더해 갈비의 진한 육향과 부드러운 살코기를 함께 즐기는 음식이다. 곰탕이 담백하고 깊은 육수 자체의 맛을 중심으로 한다면, 갈비곰탕은 갈비에서 나오는 풍미와 식감이 더욱 선명하다. 좋은 곰탕은 단순히 국물이 진한 것이 아니라, 고기와 육수의 맛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끝맛은 깔끔해야 한다. 파와 소금 정도로 간을 절제하는 이유도 육수와 고기의 본래 맛을 살리기 위해서다. 밥을 말아 한술 떠먹는 순간 국물과 밥, 고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 곰탕이 가진 가장 소박하면서도 강한 매력이다. 시대가 변해도 좋은 재료를 오랜 시간 정성껏 고아낸 한 그릇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곰탕은 그렇게 우리 식탁의 역사와 시간을 함께 끓여낸 음식이다.
■ 맑은 닭곰탕 만들기
<재료> 생통닭 1마리, 양파 1/2개, 마늘 5톨, 생강A 50g, 생강B 50g, 월계수잎 1장, 소금 30g, 대파 1줄기, 물 3ℓ, 통후추 10g
<만드는 법> ① 통닭은 생강A를 넣은 물에 8분간 삶아 누린내를 제거한다. ② 찬물에 삶은 닭을 넣고 양파와 마늘, 생강B, 월계수잎과 통후추를 넣어 뭉근히 끓인다. ③ 끓기 시작하면 약 50분간 거품을 걷어 가며 천천히 익힌다. ④ 닭은 건져 식힌 뒤 살을 바른다. ⑤ 국물을 체에 거른 뒤 소금으로 간을 하고, 대파는 썰어 준비한다. ⑥ 그릇에 닭고기를 찢어 넣고 국물을 부어 마무리한다.
김동기 청담 일판 총괄 셰프 paych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