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불바다’·‘괴뢰’·‘소대가리’…北 막말에 담긴 의미는

“서울의 자작 광대극이다.”

 

지난달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에 대한 우리 군 조사 결과에 대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내놓은 반응이다.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에 의한 폭발임을 특정한 것이 몹시도 언짢았는지 ‘한국무장깡패’, ‘한국족속들’ 등의 거친 표현까지 동원했다. 

 

못된 습관처럼 뱉어내는 북한의 막말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서울 불바다’, ‘리명박 역도’, ‘대결 악녀’, ‘삶은 소대가리’, ‘천치바보’ 등 악감정을 배설하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에만 관심을 둔 듯한 극단적인 언사가 반복됐다. 흥미로운 점은 막말의 대상과 목적이 달라졌다는 사실, 그것이 북한의 대남 인식, 정책 변화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픽=챗GPT 생성

◆‘서울 불바다’…공포를 협상수단으로

 

1990년대 북한의 극단적인 표현은 군사적 위협의 성격이 강했다. ‘서울 불바다’ 발언이 가장 유명하다. 1994년 3월 남북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박영수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은 전쟁이 벌어지면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제1차 북핵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던 시기였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등에 이어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상황에서 수도 서울을 직접 겨냥한 발언은 큰 충격을 줬다.

 

김정일 시대의 막말은 남한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데 사용됐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북한 매체에는 ‘리명박 역도’, ‘역적패당’, ‘괴뢰패당’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2011년 북한 국방위원회는 “리명박 역적패당과 더 이상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괴뢰’, ‘역적’ 등은 남한을 완전한 주권국가가 아니라 미국에 의해 움직이는 종속적 정권으로 보는 북한의 인식이 압축되어 있다. 이는 남북관계의 핵심은 북한과 미국의 대결이며 남한 정부는 미국의 하위 행위자라는 논리로 연결됐다.

 

다만 정권과 별개로 남한 주민은 ‘동족’으로 표현했다. 정권은 제거하거나 변화시켜야 할 ‘괴뢰’이지만 주민은 통일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이라는 담론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삶은 소대가리’…대통령을 겨누다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막말은 우리 대통령 개인을 직접 겨냥한 것이 두드러졌다. 남한 최고 지도자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남한 사회의 감정적인 반응과 갈등을 유발하려는 심리전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정부 시기 북한은 박 대통령을 ‘대결 악녀’ 등으로 불렀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 대응했고 북한은 공단 폐쇄와 남측 자산 동결로 맞섰다.

 

2018년 세 차례 정상회담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없이 결렬된 뒤 북한은 남한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조평통은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비난하며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했다.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고도 선언했다. 이런 막말에는 하노이 회담 전까지 문재인정부가 자임했던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20년부터 김여정이 남한을 향한 비난의 전면에 등장한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김여정은 청와대를 염두에 두고 ‘겁먹은 개’, ‘저능한 사고방식’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그해 6월 대북전단 문제를 둘러싼 김여정의 거친 담화가 잇따른 뒤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막말이 경고를 거쳐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런 행태는 계속 되어 김여정은 윤 대통령을 ‘천치바보’라고 지칭했다. 

 

◆‘괴뢰’→‘한국’, 그것에 담긴 의미

 

남한을 향한 언사에서 2023년 말 시작된 변화는 남북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을 담고 있다.    

 

김정은은 그해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다. 이듬해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남한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남한을 ‘괴뢰’가 아닌 ‘대한민국’, ‘한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전에 비해 형식상 나이스해졌다. 그러나 정치적 의미는 반대다. ‘남조선 괴뢰’라는 표현은 남한 정권의 독자적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의 대립이라는 틀에서 바라보는 북한의 기존 인식을 반영했다. 하지만 ‘한국’이란 호칭에서 남한은 같은 민족, 통일의 대상이 아닌 대립하는 별개의 국가일 뿐이다. 조평통 등 남북 대화·교류 담당 기관 폐지, 평양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철거, 남북 연결 도로·철도 단절,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남부 국경’ 요새화 작업 등은 이런 대남 인식에 따른 것이다. 

 

최근 DMZ 지뢰 폭발 사고에 대한 김여정의 담화도 이런 맥락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자작 광대극’이니 ‘한국족속’이니 하는 거친 표현과 함께 남북한이 마주할 일이 없도록 “영영 문을 닫아매자”고 한 것이다. ‘천치바보’나 ‘광대극’ 같은 표현보다 ‘한국’, ‘적대국’, ‘국경’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