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뭐시여?”…줄 잘못 선 완도 고교생, 한국인 최초 PGA 우승자가 됐다

PGA 8승·상금 450억원…완도 어른들이 키운 ‘KJ 초이’
39년 뒤 자신의 대회 밥상에 고향 전복 올린 이유

1987년 봄, 전남 완도. 완도수산고 입학식이 끝나자 체육 교사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역도 해본 사람?”

 

최경주의 고교 시절 모습을 인공지능(AI)으로 재현한 이미지.

까까머리 신입생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 뛰어나갔다. 중학교 때 역도부에서 바벨을 들었던 학생이었다.

 

교사는 아이들을 오른쪽, 왼쪽 두 줄로 세웠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이쪽은 역도부, 저쪽은 골프부.

 

그가 선 줄은 골프부였다.

 

기관장이 돼 배를 타겠다며 기계과에 들어온 학생은 골프라는 말을 그날 처음 들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골프가 뭐시여?”

 

골프부 막내의 일은 공 줍기였다. 벗어날 방법은 하나. 그물망을 넘기는 것이었다. 그는 7번 아이언을 야구 방망이처럼 쥐고 휘둘렀다. 공은 망을 넘어 날아갔다. 

 

2007년 고향 전남 완도를 찾은 최경주가 아들과 함께 차량을 타고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15년 뒤,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그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최경주. 줄 한 번 잘 선 신입생은 한국 남자 골프의 ‘최초’가 됐다.

 

캐디백에 새긴 태극기

 

1999년 말 그는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PGA 투어 카드를 땄다. 아내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태평양을 건넜다.

 

미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훗날 신문 연재에 털어놓은 투어 첫해 풍경은 이랬다. 대회장에서 용기를 내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하이, 아임 KJ 초이.”

 

“후(Who)?”

 

“프롬 차이나(From China)?”

 

영어도 서툴렀다. 그는 영어책을 펴는 대신 골프채를 한 번 더 휘둘렀다. 

 

첫 시즌 상금 순위는 134위. 투어 카드를 잃었다. 자격시험을 다시 치러 겨우 미국 무대에 남았다. 

 

“그때 통과하지 못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어요.”

 

최경주의 PGA 투어 첫 우승이 확정되자 고향 완도에서 TV를 지켜보던 부모가 만세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2002년 5월 6일 새벽. 한국의 아파트 창마다 불이 하나둘 켜졌다. 지구 반대편 뉴올리언스에서 그가 PGA 투어 첫 우승을 앞두고 있었다.

 

마지막 날 그는 2위 그룹을 멀찍이 따돌렸다. 4타 차 우승이었다. 상금은 81만 달러. 한 해 전 29개 대회를 뛰며 번 돈보다 많았다.

 

최경주 캐디백에 새겨진 태극기. 연합뉴스

 

캐디백엔 태극기가 새겨져 있었다. PGA 투어에도 한국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이 우승이 한국 골프에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그는 고국의 꿈나무들을 떠올렸다.

 

“한국의 꿈나무들이 자신감을 갖고 미국 진출을 위해 더 노력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은 현실이 됐다. 양용은부터 임성재, 김시우, 김주형까지 그가 낸 길을 따라 PGA 투어 우승자가 나왔다.

 

그 뒤로도 그가 걷는 길마다 ‘한국인 최초’가 붙었다. 2011년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제패하며 PGA 투어 통산 8승을 채웠다.

 

50세를 넘긴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2021년 PGA 투어 챔피언스, 2024년 시니어 메이저 더 시니어 오픈에서도 한국 선수 최초 우승자가 됐다.

 

20년 넘게 PGA 투어를 뛰며 번 상금은 450억원이 넘는다.

 

완도 어른들과의 약속

 

수백억원을 번 골퍼의 시작은 빈손이었다.

 

부모는 미역 양식과 농사를 지었다. 골프 장비와 훈련비까지 댈 형편은 못 됐다. 빈자리는 고향 어른들이 채웠다.

 

골프부 연습은 읍내 골프연습장에서 했다. 연습장 사장은 동네 병원장과 함께 그를 차에 태워 광주 골프장까지 데려갔다. 진짜 잔디 위에서 공을 쳐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밥을 사 주는 어른도, 잘한다며 용돈을 쥐여 주는 어른도 있었다.

 

어른들은 그에게 늘 같은 말을 했다. 잘되거든 너처럼 골프에 미친 아이들을 공짜로 가르쳐 주라고. 혼자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2008년 최경주는 재단을 세웠다. 형편이 어려운 골프 꿈나무들에게 훈련비와 장비를 지원하고 미국 동계훈련과 주니어 대회 출전 기회를 준다.

 

재단을 거쳐 간 선수는 130명이 넘는다. 박민지, 이가영, 김민규, 이재경, 정찬민 등도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최경주(가운데)가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연습 그린에서 인사하러 온 후배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리원 기자

 

완도에서 온 전복 두 마리

 

지난 2일 경기 여주 페럼클럽. 최경주의 이름을 건 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연습 그린. 인사 온 후배를 그가 위아래로 훑어봤다.

 

“몸이 좋아졌더라. 또 열심히 해야제.”

 

다음 후배가 오고, 또 다음 후배가 왔다. 그는 한 명도 그냥 보내지 않았다.

 

티샷을 하러 가던 길에는 앳된 진행요원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예상치 못한 악수에 진행요원의 얼굴에 얼떨떨한 표정이 스쳤다.

 

대회 내내 그는 골프공에 하나씩 사인해 스태프들에게 나눠 줬다. 누가 부탁한 일이 아니었다.

 

최경주가 고향 완도에서 가져온 전복. 김리원 기자

 

점심시간이 되자 선수와 가족, 스태프, 취재진이 식당에 한데 섞여 앉았다. 식판에는 다른 골프대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반찬이 올라 있었다.

 

전복 두 마리였다. 최경주가 고향 완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선수의 식판에도 스태프와 취재진의 식판에도 똑같이 놓였다.

 

대회장에 온 사람은 모두 그의 손님이었다.

 

고교 시절 고향 어른들은 그를 차에 태워 골프장에 데려가고 밥을 사 줬다. 39년 뒤 그는 자기 이름을 건 대회의 식탁에 고향 전복을 내놓았다.

 

골프부 줄에 섰던 신입생이 차린 밥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