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도 조문객도 없다. 영정 사진 앞에서 향을 피우거나 국화를 바치며 고인을 추모하는 일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고인은 안치실에 하루 동안 머물다 운구 차량에 실려 35㎞ 떨어진 공설 화장장으로 쓸쓸히 옮겨졌다.
경북 예천군의 원룸에서 홀로 숨진 지 보름 만에 발견된 고인의 마지막을 지킨 건 지자체가 고용한 장례지도사뿐이었다. 그는 유가족과의 연락은 끊어진 지 오래였고 법적 연고자는 서류 한 장으로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행정 처리에서 존엄한 추모로
6일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1인 가구 증가와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장례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하는 무빈소 장례가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맞춰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길을 예우하는 전국 지자체 차원의 공영장례 정책이 잇따르고 있다.
과거에는 고독사나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화장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존엄성을 보장하는 공영장례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명확한 중앙정부 지침 없이 각 지자체 조례와 예산 여건에만 의존하다 보니 고인이 숨진 지역에 따라 마지막 예우는 천차만별이다.
지자체들은 최근 앞다퉈 공영장례 지원 조례를 제정·개정하며 사후 복지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공영장례는 사망 후 24시간이 지나야 화장할 수 있다는 장사법 규정에 따라 대부분 2일장으로 치러지는데 최근 지원 건수가 전국에서 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 공영장례 지원 건수는 2024년 1407명, 지난해 1496명이다. 서울시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공영장례 지원 폭이 가장 두껍다. 2024년 공영장례를 처음 도입한 강원도는 첫해 153명에서 지난해 200명, 올해 8월까지 178명을 지원했다. 인천시 역시 2023년 329건, 2024년 415건, 지난해 488건으로 매년 지원 규모가 늘고 있다. 울산시는 2023년 121건, 2024년 115건, 지난해 149건이다.
현장 변화도 눈에 띈다. 서울시는 서울시립승화원 내 전용 빈소인 ‘그리다’를 운영하며 지인이나 자원봉사자가 상주가 되는 사회적 장례를 치르고 저소득층 유가족에게 장례비를 직접 지원해 마지막 이별의 기회를 제공한다. 경북 안동시에서는 은빛누리실버자원봉사단이 대리 상주를 자청해 고인의 마지막을 지킨다.
제주시는 연고자가 없거나 인수를 거부하면 전용 공간에서 추모 의식을 진행하며, 부산시는 종교단체와 연계해 월평균 15건 안팎의 의식을 진행 중이다. 충남 보령시에서는 시민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공영장례 부고를 공개해 제도를 보완했다.
◆지역 간 지원금 격차에 인프라 부족도
공영장례를 두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공영장례 평균 지원단가가 가장 높은 지역은 경북 성주군으로 495만원이었다. 뒤를 이어 경북 영양군 350만원, 전북 김제시 243만원, 서울시 234만원 순으로 집계됐다.
반면 지원단가가 가장 낮은 지역은 강원 영월군 25만원, 충남 천안시 30만원, 전북 익산시 40만원이었다. 전국 다수 지자체도 50만~80만원으로 지원금이 턱없이 적어 기본 화장과 운구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일부 지자체는 예산이 조기 소진되거나 지원액을 깎아야 하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공영장례 과정에서 추모식이나 종교의식 등 최소한의 추모 시간을 보장하는 장례의식도 과제다. 충북은 공영장례 장례의식이 2021년 34.1%(43건)에서 지난해 41.1%(95건)로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절반 이상이 별도의 추모 절차 없이 화장장으로 직행하는 무빈소 장례로 치러졌다.
전용 인프라도 부족하다. 민간 장례식장을 임대해 사용하는 구조가 대부분으로 업체의 협조 여부에 따라 사업 변동성이 크다. 일부 지자체는 별도 추모실이나 부고 게시판조차 갖추지 못해 화장장으로 직행하는 현실이 다반사다. 대구시는 빈소 운영 시간이 3~4시간에 불과해 ‘벼락치기 장례’라는 비판도 받았다. 시민단체 반빈곤네트워크 관계자는 “이웃이 부고를 접하고 찾아올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행정은 고인을 애도하는 장례가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식 시신 처리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전용 추모 시설을 짓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기존 민간 기반시설을 활용하는 방식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천안의료원은 장례식장을 추모관으로 개편하면서 ‘무빈소 장례전용 상품’을 도입해 공영장례와 연계하고 있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지자체가 민간 장례식장과 협력해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 일정 비율을 사회공헌 서비스로 제공하도록 유도하는 모델이 현실적”이라며 “당일 간소화 장례나 소규모 추모 공간이 가능하도록 지자체가 기존 장례식장의 리모델링을 지원하는 등 실효성 있는 민관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누구나 외롭게 태어나지 않았듯이 생의 마지막 순간 역시 최소한의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지자체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공영장례의 평등한 지원 기준을 법제화하고 국비 지원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