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만 보셨나요?’…간송미술관, 작품의 이력 담은 ‘상서’ 조명

간송 전형필 탄생 120주년 기념전…유물 45점·상서 61점 등 106점 전시
김홍도 ‘낭원투도’·안중식 ‘한산충무’·추사 김정희 글씨 등 선보여
보화각 앞 새 석호상도 공개…간송의 문화유산 수집 역사 조명
6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전시 된 오동나무 상자들. 연합뉴스

그림과 글씨뿐 아니라 작품을 담았던 상자와 그 안에 남겨진 기록까지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작품의 제작 시기와 감식 기록, 소장 경위 등을 담은 ‘상서(箱書)’를 통해 문화유산에 얽힌 역사와 인물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자리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7일부터 12월 6일까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기획전 ‘상서(箱書), 컬렉션을 읽다’를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2024년 재개관 이후 이어온 3개년 기획전의 마지막 전시로, 유물 45점과 상서 61점 등 모두 106점을 선보인다.

김홍도 작 '낭원투도'(왼쪽)와 안중식 작 '한산충무'. 간송미술관

상서는 작품을 보관하는 상자에 적은 글을 뜻한다. 작품의 이름과 작가, 제작 시기, 재료와 형식은 물론 감상자의 평가와 소장 경위까지 기록해 작품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정보를 후대에 전하는 역할을 한다.

 

전시에서는 단원 김홍도의 인물화 ‘낭원투도’를 통해 작품과 상서가 함께 전하는 감식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그림은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전설 속 인물 동방삭이 불로불사의 복숭아를 얻는 장면을 담았다. 김홍도는 동방삭을 과장된 중국풍 신선의 모습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볼 법한 인물처럼 표현했다.

 

간송 전형필은 1934년 이 작품을 서화가이자 감식가인 오세창에게 보여줬다. 오세창은 작품을 감상한 뒤 뛰어난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는 글을 상자 뚜껑 안쪽에 남겼다. 작품뿐 아니라 당대 감식가의 평가까지 함께 전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근대 화단의 거장 안중식이 1918년에 그린 ‘한산충무’도 전시된다.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을 그린 작품으로, 전립을 쓰고 군복을 입은 이순신이 옆을 바라보는 모습이 담겼다.

 

이순신 초상화가 드문 가운데 초상화에 능했던 안중식이 그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둥글고 풍성한 얼굴과 치켜 올라간 눈매 등 안중식 특유의 인물 표현도 확인할 수 있다.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했던 안중식이 나라를 지킨 이순신을 그렸다는 점에서 민족의식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에는 오세창의 찬문과 안중식에게 그림을 배운 이한복의 상서가 함께 남아 있다. 화가의 표현과 감식가의 평가, 제자의 기록을 한데 살펴볼 수 있어 작품의 제작과 전승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김정희 작 '차호호공'. 간송미술관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서는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필치와 서체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30대에 쓴 ‘직성수구’에서는 역동적인 필치가, 50대의 ‘신취미태사잠유시첩’에서는 유려한 흐름이 두드러진다. 60대의 ‘차호호공’에서는 개성이 무르익은 추사체를, 70대의 ‘호고연경’에서는 원숙한 예서의 경지를 살펴볼 수 있다. 작품을 담은 상자에는 오세창의 상서가 남아 있어 글씨와 함께 작품을 둘러싼 기록도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김시의 ‘선록완월’, 금가루를 사용한 그림임을 상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이징의 ‘고사한거’, 간송의 첫돌 사진 뒤편에 걸려 있던 조석진의 ‘인물고실지도’ 등이 관람객을 만난다.

 

전시장 밖 보화각 정문 앞에서는 새롭게 자리 잡은 조선시대 석호상 한 쌍도 볼 수 있다. 기존에 정문을 지키던 석사자상은 청나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로, 간송미술관이 지난 1월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에 기증하면서 자리를 비웠다.

 

새 석호상은 공처럼 둥근 얼굴과 몸을 곧추세운 모습이 특징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호랑이 캐릭터 ‘더피’를 떠올리게 하는 친근한 인상도 눈길을 끈다.

 

이 석호상은 간송 전형필이 1935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일본인 수집가 와타나베 가문으로부터 당시 1200원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화유산이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에서 이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간송의 수집 활동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이번 전시는 작품 자체를 넘어 상자에 남겨진 기록까지 함께 살펴보며 간송 컬렉션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다. 짧은 글로 남겨진 상서가 작품의 이력과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흔적을 되살리는 셈이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보화각 정문에 놓인 석호상 한 쌍의 모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