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공의 손길 AI로 데이터화… 명장의 ‘감(感)’ 다 살렸어 [지방기획]

프레스 명장기술 데이터화 AI모델 개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경험·노하우 데이터화
부품·금형·공정·불량 유형 지식그래프로
작업현장 질문까지 접목해 추론체계 구축

AI분석→명장검수→데이터교정→AI활용
‘휴먼 인더 루프’ 체계 구조화… 불량 잡아
사람의 지식 후대에 전하는 AI로 활용

제조 현장에는 수십 년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숙련공들의 땀과 경험이 응축된 무형의 자산이 존재한다. 프레스 제품 표면에 미세한 찍힘 하나가 발생했을 때 명장들은 바로 불량으로 단정하지 않고 금형의 마모 상태와 소재 안착 여부, 설비의 미세한 진동음까지 종합적으로 짚어내며 문제의 진원지를 찾아낸다. 말이나 문서로 온전히 설명하기 힘들어 현장에서는 흔히 ‘감’이나 ‘노하우’로 치부되어 온 이러한 ‘암묵지(暗默知)’는 대한민국 제조 경쟁력을 떠받쳐온 핵심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고령화와 급격한 인력 이동 속에서 이 소중한 지식이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채 현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산업계와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본격적인 해법 마련에 나섰다. 최근 인공지능(AI)과 멀티모달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숙련자의 직관과 판단 과정을 정교한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후배 작업자들의 성장을 돕는 ‘지식 계승형 AI’ 프로젝트가 가동돼 비상한 이목을 모으고 있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명장의 판단 과정을 AI 활용 데이터로



8일 학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페르소나AI를 주관기관으로 디케이(DK), ㈜카라멜라,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프레스 공정 명장 암묵지 데이터화를 통한 의사결정 AI 모델 개발’에 나섰다. 이번 과제는 산업통상부의 ‘2026년도 제조 암묵지 기반 AI 모델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6월부터 2027년 2월까지 9개월간 DK 프레스 양산라인에서 암묵지 수집과 AI 모델 개발, 현장 실증을 진행한다. 핵심은 숙련자의 지식을 인터뷰나 매뉴얼로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숙련자가 현장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근거로 불량 원인을 좁혀 조치를 결정하는지 그 판단 과정 자체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업 영상과 숙련자의 음성, 설비 상태 데이터에 부품·금형 정보, 도면, 검사 기록, 개선대책서, 공정 매뉴얼 등을 시간과 사례를 기준으로 연결한다.

예를 들어 찍힘 불량이 발생하면 검사 이미지와 작업 영상, 당시 설비 상태, 사용 금형, 숙련자의 원인 판단과 조치 결과를 하나의 ‘불량 사례 ID’로 묶어 데이터화한다. 카라멜라의 멀티모달 AI 기술(ASR, VLM, LLM, Document Parsing)을 활용해 서로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제조 데이터를 정형화하고, 부품·금형·공정 조건·설비 상태·불량 유형·원인·대책·판단 근거 간 관계를 지식그래프로 구성한다. 여기에 하이브리드랙(Hybrid RAG)을 적용해 현장에서 질문이 들어오면 관련 문서뿐 아니라 유사 불량 사례와 원인, 조치 이력, 숙련자의 판단 근거까지 함께 찾아낼 수 있는 추론 체계를 구축한다.

정창용 카라멜라 대표는 “제조 데이터를 동일한 불량 사례를 중심으로 연결하고 지식그래프와 하이브리드랙을 적용해 AI가 유사 사례와 판단 근거를 함께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서로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제조 데이터를 하나의 지식 체계로 연결해 불량의 원인과 조치 이력, 숙련자의 판단 근거까지 추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불량 검출 넘어 원인 추정과 조치 판단까지

구조화된 제조 데이터는 불량 검출을 넘어 원인 추정과 조치 판단에도 활용된다. 특정 불량 사례가 입력되면 AI가 과거 유사 사례와 금형 상태, 공정 조건, 설비 이상 여부, 숙련자의 판단 근거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가능한 원인과 조치 사례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다만 AI가 모든 판단을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는 아니다. AI가 추출한 불량 유형과 원인, 대책, 판단 근거를 숙련자가 검수·교정하고, 명장이 수정·승인한 데이터는 ‘골든 데이터셋’으로 축적한다. 이를 통해 ‘AI 분석→명장 검수→데이터 교정→다시 AI 활용’으로 이어지는 휴먼인더루프(Human-in-the-loop) 체계를 구축한다.

컨소시엄은 주요 불량 유형을 중심으로 명장 검수를 거친 골든 데이터셋 1500건 이상을 확보할 계획이다. 축적된 데이터는 AI의 판단 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실제 제조 현장에서 AI가 숙련자의 판단을 얼마나 구현하는지를 검증하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GIST는 프레스 공정 암묵지 표준 데이터 모델을 정의하고 명장과 AI의 판단을 비교해 성능과 재현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체계를 마련한다. 이 같은 연구개발은 AI·제조·데이터·검증 분야의 전문성을 결합한 4개 기관의 역할 분담을 통해 진행된다.

유승재 페르소나AI 대표는 “이번 과제는 개별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조 현장의 데이터와 숙련자의 판단, AI 모델과 검증 결과를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각 기관의 전문성을 결합해 실제 제조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통합 AI 체계로 구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지식을 남기는 AI’

이번 사업의 목적은 AI로 숙련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명장이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축적한 판단 기준과 문제 해결 방식을 데이터로 남겨 생산·품질 업무와 신규 작업자 교육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DK 프레스 공정 송기대 명장은 “제품에 찍힘이 생겼다고 해서 찍힘만 보는 것은 아니다. 금형 상태와 소재가 제대로 안착됐는지, 설비의 소리나 진동에 평소와 다른 점은 없는지 여러 요소를 함께 확인하면서 원인을 좁혀간다”며 “오랜 경험을 통해 익힌 이런 판단 기준이 데이터로 남는다면 후배 작업자들이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참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컨소시엄은 사업 후반 페르소나AI가 개발하는 통합 운영 소프트웨어와 웹 시스템을 DK 양산라인에 적용해 실제 생산·품질 업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지를 검증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프레스 현장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숙련자의 경험과 판단을 개인의 노하우에 머물게 하지 않고 기업과 후배 작업자가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특정 기업이나 설비에 종속된 시스템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숙련자의 판단을 제조 데이터와 연결하고 AI의 분석 결과를 일정한 기준으로 검증할 수 있는 공통 구조를 마련해 다른 제조 공정으로 확산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다는 목표다.

김준하 GIST 교수는 “이번 사업은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거나 AI 모델의 성능만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암묵지 데이터를 어떤 기준으로 수집하고 구조화할 것인지부터 명장의 판단과 AI 결과를 어떻게 비교하고 검증할 것인지까지 일관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데이터 품질과 AI 성능, 재현성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프레스 공정에서 구축한 데이터 구조와 방법론이 다른 제조 공정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준하 GIST 교수 “4개기업 전문성 추출… 암묵지 기술 데이터화 총력”     

 

“컨소시엄은 AI(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기업과 데이터·지식화 전문기업, 실제 제조기업, 연구기관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했습니다.”

 

김준하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는 8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조 현장의 숙련자가 가진 ‘암묵지’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AI 기술뿐 아니라 실제 제조 현장과 데이터 구축, 지식화, 성능 검증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업에는 주관기관인 페르소나AI를 비롯해 제조기업 디케이(DK), 데이터·지식화 전문기업 카라멜라, GIST 등 4개 기관이 참여한다. AI 소프트웨어 개발부터 제조 현장 실증, 데이터 구축, 표준화와 검증까지 각 기관의 전문성을 결합하는 구조다.

김준하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 GIST 제공

페르소나AI는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 등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기반으로 전체 과제를 총괄한다. 각 기관에서 개발되는 데이터셋과 AI 모델, 지식그래프, 검증 결과를 하나의 운영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통합 소프트웨어와 웹 클라이언트를 구축하고 데이터와 모델, 검증 이력도 관리한다.

 

DK는 실제 제조 현장을 제공한다. 전남광주 평동산단의 프레스 양산라인에서 작업 영상과 공정 데이터, 검사기록, 부품·금형 정보 등을 확보하고 숙련자의 판단 과정을 데이터로 전환하는 작업에도 참여한다.

 

프레스 현장의 숙련자는 제품의 미세한 찍힘이나 긁힘, 변형뿐 아니라 불량 발생 위치와 금형 마모 상태, 소재 안착 상태, 설비의 작동음과 진동 변화 등을 종합해 원인과 조치 방향을 판단한다.

 

김 교수는 “숙련자에게 단순히 ‘왜 그렇게 판단했느냐’고 묻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제품과 공정 데이터를 함께 보면서 어떤 요소를 확인하고 어떤 순서로 원인을 좁혀갔는지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카라멜라는 이렇게 확보된 제조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지식으로 전환한다. 작업 장면은 영상으로, 숙련자의 설명은 음성으로, 설비 상태는 센서 데이터로 존재하는 등 제조 현장의 정보가 서로 다른 형태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GIST는 제조 암묵지를 정의하고 AI가 실제로 숙련자의 판단을 얼마나 구현했는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한다. 김 교수는 “암묵지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동일한 기준으로 데이터가 수집되는지, 명장의 판단과 AI 결과가 얼마나 일치하는지, 다른 데이터로 다시 시험해도 같은 성능을 내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 통합·운영은 페르소나AI, 제조 현장은 DK, 데이터·지식화는 카라멜라, 표준·검증은 GIST가 맡는 철저한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며 “프레스 공정 암묵지 표준 데이터 모델을 정의하고 명장과 AI의 판단 비교 방법론, 성능 검증과 재현성 관리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