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첫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에페'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한미약품은 초기 용량의 가격을 합리적으로 책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환자가 장기간 사용하게 될 유지 용량의 가격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에페는 처음부터 같은 용량을 맞는 약이 아니다. 12주 동안 주사 용량을 단계적으로 높인 뒤 13주차부터 유지 용량을 투여한다.
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7일 한미약품이 개발한 '에페오토인젝터주(성분명 에페글레나타이드)'를 국내 45번째 신약으로 허가했다.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GLP-1 계열 비만치료제가 품목허가를 받은 첫 사례다.
허가받은 용량은 2㎎, 4㎎, 6㎎, 8㎎, 10㎎ 등 5종이다. 주 1회 피하주사로 투여한다.
당뇨병을 동반하지 않은 성인 가운데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인 비만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다. BMI가 27 이상 30 미만인 과체중 환자도 고혈압이나 이상지질혈증 등 체중 관련 동반질환이 있다면 처방 대상에 포함된다. 식사 조절과 운동을 병행하는 조건이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11월 식약처의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대상에 지정된 뒤 12월 17일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약 10개월 만에 허가를 받은 셈이다.
회사는 이달 중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인 공급 개시일과 판매가격은 확정되지 않았다.
체중 감량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10월 한미약품이 공개한 국내 임상 3상 중간 결과에서는 40주 투여 후 평균 체중 감소율이 9.75%로 나타났다. 위약군은 0.95%였다.
실제 식약처 허가사항에 반영된 수치는 이보다 낮다.
당뇨병이 없는 한국인 성인 비만·과체중 환자 448명이 참여한 임상에서 유효성 분석 대상은 446명이었다. 40주차 체중 변화율을 분석한 결과 에페 투여군은 평균 9.02%, 위약군은 0.89% 감소했다.
두 군의 체중 감소율 차이는 통계적으로 보정한 값으로 8.13%포인트였다. 에페를 투여한 환자 가운데 체중을 5% 이상 줄인 비율은 75.05%로 집계됐다.
회사 발표 수치와 허가자료의 분석값은 같은 임상에서 나왔지만 산출 방식이 다르다. 허가자료에는 결측치 등을 반영한 통계분석 결과가 제시됐다.
에페의 효과를 위고비나 마운자로와 단순 비교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위고비의 대표적인 STEP 1 임상은 68주, 마운자로의 SURMOUNT-1 임상은 72주 동안 진행됐다. 에페의 40주 결과와는 시험 기간부터 차이가 난다.
연구 대상과 투여 용량, 분석 방법도 다르다. 직접 비교 임상 없이 감량률 숫자만으로 어느 약이 더 우수하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에페의 가격 경쟁력을 판단하려면 투여 방식부터 확인해야 한다.
허가된 용법에 따르면 첫 2주는 주 1회 2㎎을 맞고, 3~4주차에는 4㎎으로 늘린다. 5~8주차에는 6㎎, 9~12주차에는 8㎎을 투여한다. 이후 13주차부터 10㎎을 유지 용량으로 사용한다.
처음 12주간 용량을 서서히 높이는 것은 약물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구역과 구토 등 위장관 부작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증량을 늦추거나 이전 용량으로 조절할 수도 있다.
문제는 용량마다 약값이 얼마나 달라지느냐다.
한미약품은 초회 용량에 합리적인 가격을 적용해 치료 진입 장벽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제약업계에서는 초기 2㎎ 용량의 4주분 공급가격이 10만원대 후반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아직 회사가 확정한 가격은 아니다. 더구나 공급가격은 환자가 병원이나 약국에서 실제 내는 금액과 다르다.
초기 2㎎ 용량은 허가된 증량 일정상 첫 2주 동안 사용한다. 따라서 2㎎ 제품의 4주분 공급가격이 알려지더라도 이를 실제 첫 4주 치료비와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제품의 포장 단위와 용량별 가격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특히 13주차부터 투여하는 10㎎의 가격이 관건이다. 이 용량이 초기 용량보다 얼마나 비싼지, 장기 처방에서 부담이 어느 정도 커지는지 아직 알 수 없다. 시작 단계의 가격만 저렴하다면 환자가 체감하는 치료비 인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국내 자체 생산은 에페가 내세우는 또 다른 경쟁력이다.
한미약품은 에페의 원료 제조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경기 평택 바이오플랜트에서 진행한다. 해외 생산 물량을 들여오는 수입 치료제와는 공급 구조가 다르다.
국내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만큼 수입 의약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실제 공급 안정성은 생산량과 원료 수급, 출시 이후 주문 물량을 얼마나 충족하는지에 따라 확인될 전망이다.
국내 생산이 곧 저렴한 판매가격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연구개발비와 제조원가, 유통비용 등이 최종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은 가격 부담으로 치료를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환자를 줄이는 방향에서 가격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비만치료제는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약이다. 처방 가격이 비급여인 만큼 환자는 약값과 진료비 등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
에페가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위고비와 마운자로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한미약품이 공개할 용량별 가격, 특히 13주차 이후 유지 용량의 실제 처방비가 첫 번째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국산 비만치료제가 나왔다는 사실만큼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치료를 얼마나 오래 감당할 수 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