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호의미술여행] 상품 문화에 물든 동일성의 삶

코카콜라병 이미지들이 반복해서 나열되었다. 아래에 빨간색 코카콜라 상품 로고까지 덧붙여서인지 도무지 미술작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실크스크린 판화 방법도 엉망이다. 콜라병 이미지들의 선명도나 명확성이 서로 달라서 거칠고 어설픈 아마추어 작품처럼 보인다. 이 모든 평범함과 지루한 반복 그리고 조악함을 특징으로 하는 이것은 미국 팝아트를 대표하는 앤디 워홀의 작품이다.

1960년대 미술계의 대세였던 미니멀 아트는 극단적인 추상 작품들을 쏟아냈다. 이런 작품들이 대중들을 당혹감에 빠뜨렸고, 상업 미술로 성공을 거둔 워홀이 그 사이를 영리하게 파고들었다. 워홀은 대중사회와 대중문화의 등장, 자본주의 생산과 소비라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작품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미술의 출발을 알렸다.

앤디 워홀 ‘녹색 콜라병들’(1962)

20세기 대중사회로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일부 엘리트들의 문화독점 현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중문화라는 새로운 문화형식이 출현하고 사회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워홀은 가장 평범한 소재인 코카콜라병을 선택해서 대중문화의 상징물로 만들고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미술작품을 제시했다.



또한 워홀은 미국 자본주의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물질문화와 연관되어 있음을 간파했다. 서적이나 잡지, 사진, 레코드 등의 대량생산처럼, 미술작품을 실크스크린 기법을 사용해서 대량으로 생산했다. 순수미술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그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콜라병 이미지들 사이의 선명도에 차이점을 만들어내서 자본주의 상품 마케팅도 흉내 냈다. 똑같은 상품이지만 포장만 약간 다르게 해서 내용물에도 차이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상업적 마케팅을 풍자하기 위해서였다.

콜라병 이미지들의 단조로운 반복이 상품문화가 지배하는 삶에 대한 한탄과 공허함을 시사한다. 똑같은 구조의 집에서 살면서 똑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반복해서 먹는 지루한 동일성의 사회 속 삶의 이야기이다. 워홀의 이 메시지가 지금 우리에게도 울림을 주고 있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