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고성군(高城郡)의 옛 이름은 ‘달홀(達忽)’이었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강릉과 함께 동예(東濊)의 영토였다가 고구려 세력이 왕성해지면서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면서 ‘달홀’(현재 북한에 속하는 고성읍과 장전읍·외금강면·서면과 현내면 일부 지역)과 ‘수성군(?城郡)’(현재 고성군 대부분 지역)의 두 지역으로 나뉘었다.
달홀은 568년(신라 진흥왕 29)에 주(州)로 승격되었다가 경덕왕 때 고성군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때 수성군도 수성군(守城郡)으로 한자가 바뀌어 고려로 이어졌다. 고려 6대 현종 때 전국을 5도 양계로 개편하면서 고성군과 수성군은 각각 ‘고성현(高城縣)’과 ‘간성현(杆城縣)’으로 바뀌었다. 그 뒤 간성현이 군으로 승격되면서 고성현을 아래에 두기도 하고 간성군과 고성군으로 분리되기도 하고 다시 고성군이 간성군에 흡수되어 간성군 고성면이 되었다가 일제시대에는 간성군이 고성군으로 바뀌면서 고성군 간성면이 되었는데 그 뒤로 이런저런 면 단위 행정 개편을 거치다가 1979년 5월1일에 간성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지금의 고성군 간성읍 체제가 되었다. 달홀과 수성이 지역의 중심으로 엎치락뒤치락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처음 고구려의 영토로 포함되면서 얻게 된 ‘달홀’이라는 지명은 ‘높다, 산’을 뜻하는 고구려어 ‘달’과 ‘성’을 뜻하는 ‘홀’이 결합한 단어이므로 이 단어가 통일신라 경덕왕 이래 한자식 지명 ‘고성군’이 된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지만, 수성군(?城郡)의 지명사는 간단하지 않다.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권12 선덕왕(宣德王) 4년(783)조에는 ‘邊城郡(변성군)’으로 되어 있고 ‘?城’이 “一云 加阿忽”(‘삼국사기’ 권37 지리지 고구려조), “一云 加羅忽(가라홀)”(‘고려사’ 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로도 되어 있으며 ‘守城(수성)’(경덕왕 때), ‘杆城(간성)’(고려 현종 이래 최근까지)으로 표기되기도 한 것이다.
한편 간성 지역은 예로부터 국방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나라를 지키는 방패와 성곽”이라는 뜻의 관용어인 ‘국지간성(國之干城)’ 이미지와 맞물려 일부 사찬 읍지, 민간 족보(간성 최씨 등), 일제강점기(1914년 부군면 통폐합 등)의 일부 표기에서 ‘干城(간성)’으로 혼용되었다가 해방 이후 ‘干城’으로 표기가 고정된 것이니 한 지명에 ‘?城, 守城, 邊城, 加阿忽, 加羅忽, 杆城, 干城’ 등 7개 이상의 이표기 혹은 이칭이 공존하고 있다. 이는 변화가 무쌍한 우리네 지명의 역사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