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효율의 시대, 누가 ‘장애’를 정의하나

산업화 시대 미국 장애 노동사 추적
‘비생산적’ 낙인 찍히면 일터서 퇴출
‘표준’ 세운 잣대가 노동자 밀어내
업무 세분화 도입한 포드 사례 들며
‘장애 판단할 권리’ 문제의식 제시
AI 시대 ‘차별 재현’ 위험 경고도

장애의 발명/ 세라 F 로즈/ 김승섭 옮김/ 동아시아/ 3만원

 

손가락 하나를 잃은 노동자는 산업재해 이전에는 숙련된 노동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산재보상제도가 자리 잡은 뒤에는 달라졌다. 고용주에게 보상 책임을 안길 수 있는 ‘위험한 노동자’로 여겨질 수 있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장애 노동자의 고용을 가로막는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포드자동차에서 내장재 장식 작업을 하 는남성 장애인 노동자(1917년) 모습. 동아시아 제공
톱니바퀴 안 사진은 포드자동차 리버루지 공장에서 볼트·너트를 분류하는 시각장애 남성들(1934년). 동아시아제공
시러큐스주립정신박약아동수용소 내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수용자들(1910∼1920년). 동아시아제공

미국 역사학자이자 장애학 연구자인 세라 F 로즈의 ‘장애의 발명’은 이처럼 장애가 단순히 개인의 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역사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추적해 보여준다. 184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미국의 장애인 노동사를 따라가며 산업화와 도시화, 노동시장 변화, 가족구조와 공공정책이 ‘장애’라는 범주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살핀다.

농업사회에서는 오늘날 장애로 분류될 만한 특성을 가진 사람도 가족경제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농사나 가사노동을 능력에 따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노동의 기준이 달라졌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업무를 일정한 속도로 수행하는 ‘표준적인 노동자’가 필요해졌다. 이 기준에 맞지 않는 몸은 점차 ‘비생산적인 몸’으로 분류됐다.

세라 F 로즈/ 김승섭 옮김/ 동아시아/ 3만원

발달장애인의 역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1851년 설립된 뉴욕주립백치수용소는 교육과 재활을 통해 장애인을 가정과 사회로 돌려보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가족경제가 변하고 임금노동이 확대됐다. 돌아갈 가정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수용시설은 교육과 재활의 공간에서 장기 보호시설로 성격이 바뀌었다.



보호작업장도 비슷한 한계를 드러냈다. 장애인에게 ‘자선이 아니라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였지만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산업사회의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장애인만 받아들이는 또 다른 선별 장치가 되기도 했다.

반면 포드자동차의 사례는 달랐다. 당시 많은 기업이 신체검사를 통해 장애가 있는 노동자를 공장에서 배제했다. 하지만 포드는 노동자의 신체적 제약만을 보는 대신 공장 업무를 세분화해 각각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를 살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작업마다 필요한 능력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장애 노동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업무를 찾아 배치했다.

신체검사가 노동자를 걸러내는 ‘여과기’가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일을 찾아주는 ‘분류기’ 역할을 한 셈이다. 이 사례는 장애가 곧 노동능력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터가 사람의 다양한 능력을 얼마나 받아들이도록 설계돼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은 후반에 장애 퇴역군인의 직업재활 문제를 통해 ‘장애를 누가 정의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의학에서는 신체적 손상이 중요하지만, 노동시장에서는 노동능력의 상실 정도가 중요하다. 당사자에게 장애는 신체의 상태만이 아니라 일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경험이기도 하다.

결국 장애의 정의에는 누가 그 기준을 만들고 판단할 권한을 갖느냐는 문제가 따라붙는다.

책은 과거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새로운 위험을 제기한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에는 지난 200년 동안 축적된 사회적 편견과 배제의 역사도 담겨 있다. 과거에는 ‘비생산적 노동자’라는 낙인이 과학과 합리성, 효율성의 이름으로 정당화됐다면, 앞으로는 알고리즘이 이를 ‘객관적인 판단’처럼 재생산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 사회 역시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5년 상반기 기준 한국의 15세 이상 등록 장애인 고용률은 34%로 전체 인구 고용률 64%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장애인의 노동시장 참여가 여전히 낮은 현실은 장애를 개인의 능력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책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를 주로 다루는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번역과 해제를 맡았다. 김 교수는 해제에서 장애인이 일터에서 밀려난 과정을 짚으며, 특정한 몸을 장애로 규정하고 ‘비생산적인 시민’이라는 낙인을 씌운 뒤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낮춰온 역사를 보여준다. 특히 이런 배제가 단순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과학과 합리성,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오늘의 현실로 이어진다. 장애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기준과 환경의 문제라는 것이다.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비생산적인 사람’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밀려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사람을 기준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몸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기준과 환경을 바꾸는 일이다. 이 책은 그 작은 변화가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