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구두 민폐(?)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10년 서울시교육청에서 벌어진 이른바 ‘하이힐 폭행’ 사건이 교육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커다란 화제가 됐다. 여성 장학사 A씨가 술자리에서 동료 남성 장학사 B씨와 말다툼을 하다가 하이힐을 벗어 B씨를 때린 것이 발단이었다. 단순 폭행인 줄 알았는데 경찰 조사 도중 추악한 사실이 드러났다. 2008년 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A씨가 B씨한테 “장학사 승진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해달라”며 2000만원을 건넨 혐의가 포착된 것이다. 이는 당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매관매직 혐의로 구속되는 단초가 되었다. 남자들은 ‘여자에겐 하이힐이 치명적 무기인 줄 미처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계일보 이미지

한때 여성 검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텔레비전(TV) 드라마가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극중 검사로 분장한 여배우의 패션이 실제 여성 검사들이 즐겨 입는 복장 스타일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시선이 쏠렸다. 짧은 치마 차림에는 “검찰청에선 희귀한 일”이라며 손사래를 친 여성 검사들이 많았다. 다만 하이힐 착용에는 관대한 태도를 보였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남성 위주의 권위적인 검찰 조직 안에서 남성들과의 ‘기 싸움’에 하이힐이 확실히 도움이 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낸시 펠로시(86) 전 미국 하원의장은 하이힐 애호가로 유명하다. 한국의 옛 검찰만큼은 아니겠으나 미 의회도 남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곳이다. 그런 공간에서 펠로시는 굽 높이가 10㎝에 이르는 하이힐, 이른바 ‘킬힐’을 신은 채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숱한 남성 거물 정치인들과 기 싸움을 벌여 이긴 끝에 2007년 1월 미 역사상 여성으로는 처음 하원의장에 올랐다. 그리고 2023년 1월까지 도합 8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다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처럼 그도 2024년 12월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겪은 뒤 더는 하이힐을 고집하지 않는다. 당시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누구나 하이힐을 포기하는 날이 오는데 펠로시에게도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고 논평했다.

 

지난 7일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최동석(69) 처장이 의원들과의 질의응답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지난 7일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한 국회 국정감사에선 인사처의 ‘국가 공무원 면접 시험 복장 안내 공고’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는 남녀 모두 면접 때 정장 착용을 지양하라면서 특히 “정장 구두 착용 땐 덧신을 씌울 예정”이라고 안내해 논란을 빚었다. “코미디 같은 발상”이란 의원들의 지적에 최동석 인사처장은 “여성 수험생들이 풀 메이크업을 하고 정장을 입고 뾰족구두를 신고 오는데, (시험장은) 소음 방지 대책이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공고에선 ‘남녀 모두’가 적용 대상이라고 했지만 실은 ‘여성의 화장과 하이힐’이 표적이란 속내가 드러난 셈이다.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최 처장은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사과했다. 인생이 걸린 면접 평가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청년 구직자들의 마음을 왜 헤아리지 못할까. 본인 말처럼 시험장에 ‘소음 방지 대책’을 시행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