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한차례 들썩였던 국제 곡물가가 최근 다시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하며 내년부터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애그플레이션’의 충격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곡물 가격 상승은 국내 시장으로 전이돼 가공식품과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9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이달 초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9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136.0으로 전월(134.0) 대비 1.5% 상승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8% 오른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최고치를 찍었던 2022년 3월(160.2)보다 낮지만, 2022년 11월(136.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11월 인도분 대두 선물 가격은 7일 종가 기준 부셸(약 28.123㎏)당 1297.50센트로 장을 마감했다. 올해 초 1000센트대 초반에서 거래되던 대두 선물은 중동전쟁이 발발한 2월 말부터 급격히 오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에 합의한 지난 6월 1100센트 초반까지 내리며 안정화되는 듯 보였으나, MOU과 성과 없이 만료되면서 지난달 중순 1300센트 선을 넘기도 했다. 소맥과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선물 가격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며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곡물 가격이 출렁이는 주된 원인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핵심 비료 원료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은 질소와 요소 등 핵심 비료 원료의 주 생산지로, 중동전쟁 전까지 전 세계 해상에서 운송되는 비료 원료의 약 3분의 1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났다. 우크라이나가 최근 러시아 정유 시설을 타격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주요 곡물 수출항과 흑해를 지나는 곡물운반선을 공격한 점도 국제유가와 곡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올해보다 내년의 가격 불안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의 경우 동태평양 적도 해수 온도가 평년보다 1.5도 이상 높은 슈퍼 엘리뇨 현상으로 곡물 가격 상단이 제한적이었다. 엘리뇨는 이상고온과 홍수, 병충해 등을 초래하지만, 미국 중부와 브라질 서남부 등지의 곡창지대에선 강수량과 수확량을 늘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에는 엘리뇨와 반대로 동태평양 적도 해수온이 낮아지는 라니냐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라니냐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전 세계적 이상저온과 흉작이 나타난다.
국내 시장에도 가격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 곡물가격 상승은 가공식품과 사료 등의 원가 부담을 키워 국내 먹거리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재정경제부는 최근 소비자물가에서 곡물가격이 상승 흐름을 보인 것과 관련해 “곡물가격 상승은 농축수산물뿐 아니라 서비스와 내구재 등의 원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