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대통령 후보 중 선거에 지는 쪽은 감옥에 간다’
검투사의 경기를 방불케 하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이긴 쪽이 진 상대의 생사여탈권을 쥔 검투사 경기처럼, 대통령 선거에 낙선하면 자칫 ‘평생’ 감옥에 썩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요. 바로 지구 반대편 브라질의 이야기 입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강성 우파 성향의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자유당(PL) 후보가 47%가 넘는 득표율로 예상을 뒤엎고 1위를 기록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자 강성 좌파 노동자당(PT) 소속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후보(45.16%)보다 1.87%포인트 앞섰죠.
다만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에 성공한 후보가 없어 이달 25일 결선투표에서 다시 맞붙게 됐습니다. 상위 두 명, 보우소나루 후보와 룰라 대통령의 일 대 일 ‘단두대 매치’죠.
◆룰라와 보우소나루의 ‘단두대 매치’…진 쪽은 ‘감옥행’
이번 브라질 대선은 ‘단두대 매치’ 또는 ‘검투 경기’라고 말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듯 합니다. 국내외 대부분이 이번 대선에서 진 쪽은 감옥에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데요. 룰라 대통령이 대선에 질 경우 80세의 고령으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특히 룰라 대통령과 보우소나루 가문 간 뿌리깊은 악연을 비춰 봤을 때 정치보복은 불가피해 보이죠.
양측 진영 간 뿌리깊은 악연은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룰라 대통령은 2003년 처음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금속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군사정권에 저항하면서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죠. 특히 ‘룰라주의’로 불리는 그의 정책은 사회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강성 좌파 성향으로 유명합니다.
첫번째 임기가 끝난 2010년까지만 해도 룰라 대통령은 신화에 가까웠습니다. 브라질 국가 부채를 해결하고 세계 7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가게 하는 등의 업적으로 퇴임 당시 83.4%의 높은 국정 지지율을 기록했죠.
하지만 그의 신화는 2010년대 들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자당(PT)은 ‘포스트 룰라’인 지우마 호세프를 내세워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집권당인 PT당의 부패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2014년 국영석유기업과 PT당 정치인 사이에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이 오간 사실이 드러나면서 PT당에 대한 지지도는 급락했죠.
◆부패한 좌파에 분노…‘극우의 아이콘’ 보우소나루 등장
이 때 등장한 인물이 군인 출신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입니다. 이번 대선 후보인 플라비우 보우소나루의 아버지죠.
그는 기존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을 강하게 비판하며 등장했습니다. 또한 당시 브라질은 포퓰리즘 성향이 강해지면서 경제 성장 동력에도 제동이 걸려있었는데요. 보우소나르는 이 점도 파고들어서 지지를 받아 결국 2018년 말에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 때 룰라는 이미 구속된 상태였습니다. 일각에선 아버지 보우소나루가 룰라를 감옥에 보내 정치 보복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룰라는 아버지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인 2016년 3월에 370만 헤얼(약 8억1000만원)을 세탁해 빼돌렸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2018년 4월 수감됐습니다. 한 때 룰라의 오른팔이었던 호세프 전 대통령과 PT당과 협력 관계였던 좌파 성향의 브라질민주운동당 소속 미셰우 테메르 정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다만 대법원 판결 전에 석방된 룰라 대통령을 다시 기소한 시기는 보우소나루 정권이긴 합니다. 룰라 대통령은 석방 후에도 반(反) 보우소나루 연대의 수장 역할을 했는데요, 이 시점부터 룰라와 보우소나루 가문 간 끝이 없는 전쟁에 들어가게 되죠.
아버지 보우소나루는 강성 우파 성향으로 룰라 대통령과 반대의 행보를 보였습니다. 강력범죄 척결, 강력한 군사력과 공권력, 경제 자유주의, 친기업, 인종주의, 호모포비아 등의 성향을 보였죠. 게다가 가톨릭이 대부분인 브라질에서 ‘복음주의’라는 원리주의 개신교를 믿으면서 오늘날 트럼프주의와 크게 닮았죠.
타협을 모르는 민주주의의 끝은 극단주의입니다. 보우소나루의 강한 ‘우경화’ 정책은 아직 정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룰라의 PT당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죠. 아버지 보우소나루 정권 당시 브라질 정계는 자유당(PL)과 노동자당(PT)의 싸움으로 극심한 혼란을 맞이합니다.
◆대선 패배 인정 못한 보우소나루…쿠데타 모의 끝에 감옥행
2022년 치러진 브라질 대선에서 아버지 보우소나루는 패배하게 됩니다. 보우소나루를 누르고 당선된 인물은 바로 룰라 전 대통령이었죠. PT당에서 룰라를 대신할 인물이 없자, 고령의 룰라 전 대통령을 다시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것입니다.
브라질에선 세 번 연속 대통령 연임을 금지하고 있지만, ‘끊어서’ 3번 대통령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룰라를 부패 혐의로 형이 확정돼 피선거권 박탈을 당했지만, 2021년 3월 연방고등법원이 해당 부패 혐의 선고에 대해 무효 결정을 하면서 기사회생했죠.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자신이 감옥으로 보내려고 했던 룰라라는 거물과 맞붙게 됐고, 결국 낙선했습니다. 브라질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역시 브라질의 인플레이션과 경제 양극화, 치안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 주된 이유였죠.
하지만 군인 출신의 의지의 보우소나루는 가만 있을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보우소나루가 낙선한 직후인 2023년 1월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룰라 행정부에 반발하며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면서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게다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측근 집에서 계엄령 시나리오 문건이 발견됐죠.
2023년부터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강하게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보우소나루는 2022년 브라질 대선이 조작됐다며 맞섰죠. 결국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2025년 구데타 모의와 폭동 선동 혐의로 징역 27년3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형량대로라면 그의 나이 97세에 출소하게 되죠. 사실상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의미입니다.
◆권력은 되찾았지만 신뢰는 잃었다…흔들리는 ‘룰라 신화’
자신의 정적을 내란 혐의로 감옥에 보낸 룰라 정권은 승승장구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것 처럼 타협을 모르는 문주주의 끝은 극단주의로 가게 됩니다. 이는 좌파 우파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은 부패합니다. 특히 노동자당(PT)과 룰라 대통령의 아들인 파비우 루이스 룰라 다시우바가 2025년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룰라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또한 룰라 대통령 역시 신자유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자국중심주의가 도래하는 혼란한 국제정세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죠. 브라질의 고질병인 높은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경제양극화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포퓰리즘을 통한 버블도 붕괴됐죠. 룰라 대통령 역시 신격화 된 ‘철인’이 아닌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죠.
게다가 이미 브라질의 사회는 물론 사법부도 ‘룰라파’와 ‘보우소나루파’로 나뉘어 끝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법부가 정파성을 띄니 어떠한 판결이 나와도 신뢰를 받기 어렵죠. 설령 법원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도 신뢰가 무너진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제도 역시 불신하게 됩니다. 진 쪽은 끊임없이 부정선거를 주장하게 되는 구조죠.
◆승자만 있고 타협은 없는 브라질 민주주의 위기
강하게 누를 수록 더 강하게 튀어나가는게 이치라고 합니다. 룰라 대통령이 보우소나루 진영을 누를수록 오히려 강성 우파 진영은 더욱 강해졌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아들인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후보입니다. 쉽게 말해 ‘보우소나루 주니어’ 또는 ‘보우소나루 어게인’이죠.
아들 보우소나루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룰라 대통령을 반드시 감옥에 다시 보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되면 감옥에 있는 아버지의 상황도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쯤되면 눈치 채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번 브라질 대선에서 ‘옳은’ 진영은 없어보입니다. 룰라의 노동자당(PT) 역시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지난 4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 결과죠. 타협을 모르는 정치가 1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는 물론 사회 전체가 양극화됐죠. 누가 먼저 시작했냐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현존하는 제도 중 이상적인 이유는 ‘타협’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만 옳고, 상대는 틀리는 ‘이분법적 사고’, 우리 편은 착하고 상대는 악마인 ‘선악구도’는 타협을 전제로 해야하는 민주주의의 커다란 리스크라고 볼 수 있죠. 정치 양극화가 가져오는 파국을 우리는 어쩌면 이달 말에 브라질 대선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