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인공지능(AI) 인재 확보전이 개별 연구자 영입을 넘어 창업자와 핵심 연구진을 함께 영입하고, 이들이 개발한 기술의 사용권까지 확보하는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7월11일 AI 코딩업체 윈드서프의 바룬 모한 최고경영자(CEO)와 공동창업자 더글러스 첸, 핵심 연구개발 인력이 구글 딥마인드로 옮겼다. 구글은 윈드서프 지분을 한 주도 사지 않았고 경영권도 확보하지 않았다. 대신 일부 기술을 사용할 권리를 얻고 모한과 핵심 연구진을 채용하는 데 약 24억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를 사는 대신 사람과 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한 것이다.
윈드서프는 직전까지 오픈AI와 30억달러 규모의 회사 매각을 협의하고 있었다. 매각 협상이 무산된 직후 구글이 창업자와 핵심 연구진을 데려갔다. 이들은 딥마인드에서 AI가 사람 대신 코드를 작성하고 수정하는 ‘에이전트형 코딩’ 기술을 개발해 제미나이에 적용하는 업무를 맡았다.
사흘 뒤 윈드서프의 나머지 자산도 새 주인을 찾았다. 7월14일 경쟁 AI 코딩업체 코그니션은 윈드서프의 코딩 제품과 지식재산권(IP), 상표, 고객 사업을 인수하기로 했다. 구글로 가지 않은 영업·제품·엔지니어링 조직도 코그니션에 합류했다. 당시 윈드서프의 연간 매출은 8200만달러, 기업고객은 350곳이 넘었다. 창업자와 핵심 연구진, 기술사용권 일부는 구글이 가져가고 제품과 IP, 고객, 남은 조직은 코그니션으로 넘어가면서 한 스타트업의 핵심 자산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회사 대신 사람·기술만 가져간다
업계에서는 기술사용권 계약과 핵심 인력 채용을 결합한 거래를 ‘리버스 애크하이어(reverse acqui-hire)’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애크하이어는 인재 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회사 자체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리버스 애크하이어는 지분이나 경영권을 넘겨받지 않고 창업자와 핵심팀을 채용하면서 회사 기술을 사용할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법인 자체를 사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인수합병(M&A)과 다르다.
이 같은 거래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2024년 3월 인플렉션AI와 맺은 계약부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약 6억5000만달러를 지급하고 인플렉션AI의 모델 사용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공동창업자 무스타파 술레이만과 카렌 시모니언을 비롯한 직원 대부분을 영입했다. 술레이만은 곧바로 마이크로소프트AI CEO가 돼 코파일럿과 빙, 엣지를 총괄했다. 핵심 인력이 빠진 인플렉션AI는 기업용 AI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마존도 같은 해 6월 AI 에이전트 스타트업 어뎁트의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루안과 일부 연구진을 영입했다. 동시에 어뎁트가 개발한 에이전트 기술과 다중모달 모델, 일부 데이터의 사용권을 확보했다. 어뎁트는 독립 회사로 남아 기업용 AI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두 달 뒤인 8월 구글은 캐릭터AI에 대해 같은 방식을 택했다. 공동창업자 노엄 셰이저와 대니얼 드 프레이타스, 일부 연구진을 구글 딥마인드로 다시 불러들이고 캐릭터AI의 대규모언어모델 기술에 대한 비독점 사용권을 확보했다. 구글은 캐릭터AI의 지분이나 경영권은 인수하지 않았다.
◆완성된 팀·기술 묶어 개발시간까지 산다
빅테크가 이런 방식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속도다. 개별 연구자를 한 명씩 영입해 새 조직을 꾸리면 역할을 나누고 개발 방식과 협업 체계를 맞추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이미 함께 제품을 만들어 본 창업자와 핵심 연구진을 팀 단위로 영입하면 기존 협업체계를 상당 부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 여기에 그 팀이 개발해온 기술의 사용권까지 확보하면 연구진이 쌓아온 개발 경험과 기술을 자사 제품에 보다 빠르게 연결할 수 있다.
윈드서프가 대표적이다. 구글이 핵심 연구진을 데려갈 당시 윈드서프는 이미 기업고객 350곳 이상을 확보하고 연간 매출 8200만달러를 올리던 AI 코딩업체였다. 새로 사람을 모아 코딩 에이전트 기술을 처음부터 개발하는 것과 달리 이미 제품을 만들고 고객에게 서비스해본 팀과 기술사용권을 동시에 확보한 셈이다.
이 구조는 기존 M&A와 다른 문제도 낳는다. 회사 전체를 인수하지 않아 법인은 그대로 남을 수 있지만 경쟁력의 핵심인 창업자와 연구진, 이들이 쌓은 노하우 상당 부분은 빅테크로 이동한다. 투자자에게는 자금을 회수할 길이 열리지만 남은 회사는 핵심팀을 잃은 채 사업 방향을 다시 짜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사람을 채용하는 계약과 기술사용권 계약을 별도로 맺으면 형식상 회사 인수는 아니다. 하지만 창업자와 주력 연구진, 기술에 대한 접근권이 한꺼번에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 실제 효과가 기업 인수와 얼마나 다른지를 따져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규제당국이 리버스 애크하이어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이유다.
◆채용인가 인수인가…규제당국도 실질 거래 본다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플렉션AI 거래에서 계약 형식보다 실제로 무엇이 넘어갔는지를 봤다. 인플렉션 직원 대부분과 이들이 보유한 노하우, IP 사용권이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전된 만큼 영국법상 기업결합 심사 대상이 되는 거래라고 판단했다. 다만 인플렉션AI가 시장에서 행사하던 경쟁 압력이 크지 않아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거래를 승인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거래가 정식 기업결합 심사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미 법무부는 구글이 캐릭터AI와 맺은 계약을 기업결합 심사를 피하도록 설계했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구글은 캐릭터AI의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회사도 별도로 존속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도 지난 1월 빅테크의 이 같은 인재 확보 거래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앤드루 퍼거슨 FTC 위원장은 스타트업을 직접 사지 않고 인재와 기술을 확보하는 거래가 기업결합 심사를 피하기 위한 것인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의 캐럴라인 시걸 싱 AI·신흥기술 프로그램 매니저는 “리버스 애크하이어가 확산하면서 핵심 인재와 지식이 지배적 기업의 ‘폐쇄된 울타리’ 안으로 집중되고 산업 내부의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의 창업자와 일부 핵심 인력만 거액의 보상을 받고 나머지 직원들이 거래에서 배제될 경우 인재들이 스타트업에서 위험을 감수할 유인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