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역의 무게, 금메달의 가벼움 [김세희의 역사ON]

과거는 현재를 관통합니다. 문명은 발전했지만 수천·수백 년 전 벌어진 사건과 문제는 오늘날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됩니다. 특히 사회·정치·경제 분야에서 빚어지는 고질적 병폐는 시대를 달리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김세희의 역사ON’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삼국사기’ 등 사료에 기록된 사건·인물·제도를 오늘의 현안과 연결해 살펴보고 논평하고자 합니다. 과거를 성찰의 거울로 삼아 오늘의 현실을 이해할 단서를 찾겠습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축구 국가대표 선수 박승수(왼쪽)와 주장 이기혁. SNS

1636년 대사간 윤황이 인조에게 군대의 기강에 관한 글을 올렸다. 윤황은 “양민들이 군역을 마치 구덩이 속에 파묻혀 죽는 것처럼 생각해 온갖 구실과 핑계를 대서 빠져나간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시대 양인 남자의 군 생활은 무척 길고 고됐다. 오늘날처럼 일정 기간을 내리 병영에서 보내는 방식은 아니지만 60세까지 군역 의무에 묶여 있었다. 평소에는 농사를 짓다가 정해진 순번이 돌아오면 서울이나 군영에 나가 복무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심지어 병장기와 군복, 군량도 본인이 마련했고 도시 시설 유지와 운영에 필요한 각종 역에도 동원됐다. 군인들 사이에 신고식 관행과 가혹 행위도 있었다. 백성들 입장에선 말 그대로 피하고 싶은 짐이었다. 

 

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에서 우승을 차지한 23세 이하(U-23) 축구 대표팀 이기혁이 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인터뷰하고 있다. 인천공항=뉴시스

군역을 피하려고 신분 상승까지 마다한 사람도 있었다. ‘이시애의 난’ 진압에 자원한 공로로 양인이 된 손장수다. 그는 1473년 병조에 다시 천민이 되게 해달라는 소장을 냈다. 너무 가난해 군역을 감당할 수 없으니 차라리 성균관 노비로 살게 해달라는 호소였다. 성종은 이를 윤허했다. 양인이 된 사람이 다시 노비가 되기를 자청했을 정도니 당시 군역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550여년이 흘렀다. 오늘날의 병역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아졌다. 육군·해병대는 18개월, 해군은 20개월, 공군은 21개월이다. 병영 환경도 과거보다 나아졌다. 그렇다고 군 복무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희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학생은 학업을 멈추고, 직장인은 경력을 내려놓는다. 자신의 20대 일부를 국가에 내놓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은 일부 축구대표 선수들의 언행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고작 16분을 뛰고 전역 모자 인증샷을 올린 박승수, 방송 인터뷰에서 ‘병역 혜택’을 자랑한 주장 이기혁, ‘군 면제만 보고 경기를 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양민혁은 거센 비판을 자초했다.

 

박승수 SNS 캡처

물론 군대에 가기 싫은 마음이 죄는 아니다. 조선 시대 백성들도 군역을 피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찾았다. 오늘날 청년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병역 의무를 실제로 감당하는 청년들이 보는 앞에서 국가가 특별히 부여한 혜택을 자신들이 따낸 전리품처럼 과시하는 것을 고운 시선으로 볼 수는 없다. 병역 특례는 다른 청년들에게 요구되는 의무를 국가가 특별한 이유로 덜어주는 ‘예외’기 때문이다. 의도가 어떻든 또래 청년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비칠 수 밖에 없다. 혜택을 받은 사람은 절제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역설적으로 제도의 명분부터 허물어진다. 

 

이제는 제도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체육 분야 병역특례는 과거 국제대회 성적을 ‘국위 선양’으로 보고 국가가 보상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달라진 지금, 아시안게임 금메달 하나를 병역특례와 연결하는 방식이 타당한지 따져봐야 한다. 올림픽과 비교해 대회의 위상과 참가 수준이 다른 종목도 적지 않다. 병역 특례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정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아시안게임 금메달=병역특례’라는 오래된 공식이 지금도 타당한지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