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순식간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대, 인간의 몸을 통과해 탄생한 회화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샘미술관 초대기획전 ‘몸, 호흡의 흔적, 그 결과 회화’는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인간의 몸과 삶의 시간이 빚어내는 예술의 가치를 되묻는다.
9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AI와 미디어 기술의 발전으로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가 빨라지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한 사람이 몸으로 살아낸 시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사랑과 상실, 기쁨과 고통, 기억과 욕망은 각자의 몸에 고유한 흔적으로 남는다. 인간은 몸으로 세계를 감각하고 타인과 만나며 변화한다.
전시는 이 같은 ‘몸의 경험’에 주목한다. 작가가 붓을 움직이고 선을 긋고 물감을 올리는 과정에는 살아온 시간과 호흡이 스며든다. 화면에 남은 흔적은 대상을 재현한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 한 존재가 세계를 느끼고 반응해온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전시가 내세운 문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압축한다. “몸은 기억하고, 호흡은 시간을 새긴다. 회화는 보이지 않는 생의 흔적을 드러내는 언어이다.”
김혜성·김한석·남궁호석·박지숙·이종철·이호영·정규리·정문경·정연현·홍희진 등 10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작가들은 회화와 영상 설치 등을 통해 몸과 기억, 감각과 시간이라는 주제를 각자의 조형언어로 풀어낸다.
김혜성은 홍익대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거울’과 ‘섬’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최근에는 ‘별-알로카시아’, ‘She’, ‘Pierro’, ‘꽃’ 등의 작업을 통해 개인의 기억과 감각을 화면과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
홍희진은 정물과 풍경 등 일상의 소재를 유화와 아크릴로 표현한다. 사적인 시간의 흐름과 과거·현재의 기억을 일상의 풍경에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남궁호석은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작가이자 타투이스트다. 회화와 문신을 넘나들며 몸과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해왔으며, 2015년 ‘한국의 문신’을 펴냈다. 최근에는 ‘관심색’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전시와 연계한 세미나도 마련된다. 13일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열리는 ‘AI 시대, 회화를 다시 묻다’에서는 이호영이 발제하고 이종철이 질의한다.
기획진은 이번 전시가 AI와 회화를 대립시키거나 기술 발전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미지가 빠르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시대에 인간의 몸을 통과한 경험과 그 흔적이 예술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려는 취지다. 기술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대에도 한 사람의 몸과 호흡이 남긴 흔적은 회화만의 질문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