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전력회사 이베르드롤라 “비용·수익 확정돼야 투자”…한국은 ‘계산 가능한 시장’인가 [기에사]

“당시 해상풍력은 아직 시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였고 규제 체계도 불안정했습니다.”

 

베고냐 디아스 곤살레스 이베르드롤라 재생에너지 해외사업개발 총괄은 5∼6년 전 국내 기업인 GS에너지와 협력해 한국 풍력 시장 진출을 검토하던 때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이베르드롤라는 2021년 GS에너지와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풍력 등 사업을 공동 추진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지만 이후 진척이 없었고 사실상 철수했다. 스페인 바스크 중심 도시인 빌바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에너지·전력 기반시설 기업인 이베르드롤라는 유럽 최대 규모 전력회사이자 세계 최대 규모 풍력발전 기업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베고냐 디아스 곤살레스 이베르드롤라 재생에너지 해외사업개발 총괄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빌바오 현지 바스크무역투자청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풍력산업협회 제공

디아스 곤살레스 총괄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빌바오 현지 바스크무역투자청 사무실에서 한국 취재진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한국 시장 철수와 관련해 금리 상승·코로나19·우크라이나 전쟁 등 당시 국제 정세가 영향을 미쳤다면서 “한국에서는 정권이 교체될 경우 대규모 투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불확실성도 우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세계적으로 해상풍력 투자의 문턱이 매우 높아졌다며 “특히 수익성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평했다. 금리 상승으로 공급망 가격이 계속 변하고 전력 가격도 크게 출렁이고 있기 때문에 건설비와 수익 모두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디아스 곤살레스 총괄은 현시점 가장 큰 문제로 “규제 체계와 사회·경제적 상황의 불안정성”을 꼽았다. 

 

그는 이베르드롤라가 입찰 참여나 최종 투자 결정 전 비용과 수익을 함께 확정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발사로서 진출하고자 하는 시장에 계통연계 계획, 향후 몇 년간의 입찰 일정이 미리 제시돼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베르드롤라의 원칙은 재생에너지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내년 1월 개정법 시행으로 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를 경쟁 입찰 기반 장기고정가격 계약시장으로 일원화할 예정이다. 장기고정가격은 디아스 곤살레스 총괄이 말한 ‘수익 확정’과 맞닿아 있다. 다만 계통연계, 입찰 일정 등 요소는 아직까지 불확실성이 짙다. 디아스 곤살레스 총괄은 스페인 초기 풍력 시장도 장기 수익을 예측할 수 있었기에 은행 자금조달이 가능했다고 했다. 결국 보급 확대와 발전단가 인하 등 정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개발사가 비용과 수익을 미리 계산할 수 있는 시장부터 만들 필요가 있단 얘기다. 

이베르드롤라 본사 사옥. 

1901년 빌바오에서 창립한 이베르드롤라는 시가총액 기준 유럽 1위, 세계 2위 전력회사다. 보유한 풍력 설비는 2025년 기준 23.6GW(기가와트)고, 이 중 해상풍력은 올 상반기 기준 2.6GW다. 2025년 기준 우리나라 풍력 보급량이 2.5GW(육상 2.1GW·해상 0.4GW)다. 이베르드롤라 본사가 있는 바스크는 산이 많아 풍력단지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베르드롤라는 2000년 전후 다른 에너지 기업보다 앞서 재생에너지에 뛰어들어 몸집을 키웠다. 다음은 디아스 곤살레스 총괄과의 일문일답.

 

—이베르드롤라는 2020년쯤 한국 시장 진출을 시도했다. 당시 한국 시장을 어떻게 봤나.

 

“저희는 2020년쯤 한국의 재생에너지 시장에 진출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당시 저희에게는 GS에너지라는 훌륭한 파트너가 있었고, 함께 육상풍력과 해상풍력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해상풍력은 아직 시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였고 규제 체계도 불안정했습니다. 육상풍력의 경우에는 풍력발전단지 개발이 실제로 언제 가능해질지, 즉 사업 추진 일정과 소요 기간을 명확하게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인허가와 관련된 규제 체계가 명확하지 않았고, 특히 정부와 체결하게 되는 PPA(전력구매계약)와 관련해서도 명확성이 부족했습니다. 또 저희는 한국에서 정권이 교체될 경우 그와 같은 대규모 투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정부가 바뀐 뒤 정부와 의무적으로 체결해야 하는 PPA가 갑자기 중단되거나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디아스 곤살레스 총괄이 말하는 ‘정부와 체결하는 PPA’는 일반적인 기업 PPA가 아니라 정부 입찰을 통한 장기 고정가격 계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국에서 철수했다.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결정적이었나.

 

“한국에서 철수한 이유는 한국만의 문제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한국에 진출했을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모든 기업들이 해외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국제화하려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희는 한국뿐만 아니라 베트남, 필리핀, 일본, 호주, 아르헨티나에도 진출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 시장 철수의 배경이 된 요인을 ‘정치적 불확실성’이라고 표현하지는 않겠습니다. ‘전 세계적인 불확실성’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금리가 상승하고 있었고, 코로나19 시기를 지나온 직후였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매우 커진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저희가 철수를 결정한 곳은 한국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베트남에서도 철수했고,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도 철수했습니다. 그러므로 특정 국가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철수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전반적인 세계 시장 상황을 고려해 사업 역량을 재정비하고, 그 시점에서 저희에게 더 많은 사업 기회와 가능성이 있었던 국가들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한국 시장에 다시 들어올 가능성은 있나.

 

“향후 거시경제 상황이 달라진다면 당시 철수했던 국가들에 재진출을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한국과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개발사업자로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관계라기보다는 공급업체들과의 관계입니다. 한국에는 매우 경쟁력 있는 공급업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하부구조물과 전기설비 분야에 강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한국 시장의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은 전력 수요가 매우 높은 국가이기 때문에 앞으로 탈탄소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한국이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저희가 한국 시장에 다시 진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베르드롤라가 세계에서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금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해상풍력은 가장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사업 구조도 가장 복잡한 분야 중 하나인데, 현재 특히 수익성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업에 필요한 투자 규모에 비해 경제성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재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안정적인 사업 환경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거시경제 여건과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공급망도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그 결과 공급망 관련 가격이 계속 변동하고 있고, 이는 사업계획의 안정성을 떨어뜨립니다. 결국 발전단지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안정적이지 않고, 동시에 전력가격이 크게 변동하기 때문에 수익 역시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면,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한 프로젝트에 대해 최종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 외에도 인허가 문제, 지역사회의 반대, 공급망 내 경쟁력 부족, 공급업체 부족 등이 있습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 저희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규제 체계의 불안정성과 사회·경제적 상황의 불안정성, 이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고냐 디아스 곤살레스 이베르드롤라 재생에너지 해외사업개발 총괄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빌바오 현지 바스크무역투자청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풍력산업협회 제공

—그렇다면 투자 여부는 어떤 원칙으로 판단하나.

 

“이베르드롤라의 기본적인 철학은 사업 비용을 확정하는 것과 동시에 수익도 그에 맞춰 확정하고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는 입찰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거나 최종 투자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업 비용을 확정하는 동시에 수익까지 확보하려면 재생에너지 입찰제도가 제대로 설계되고 계획돼 있어야 합니다. 또 생산된 전력을 전력망으로 송전·연계할 수 있는 방안이 제대로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입찰 전에 관련 사업자들과 계약을 협상하고 가격을 확정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입찰이 이루어진 시점부터 실제 상업운전이 시작되는 시점까지의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서도 안 됩니다. 실제로는 입찰 조건과 구조가 어떻게 정의되고 설계돼 있는지가 투자 의사결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중장기 입찰 물량이 마련돼 있는 것도 중요합니다. 즉, 향후 몇 년 동안 언제 어떤 입찰이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일정과 계획이 미리 제시돼 있어야 합니다.”

 

—한국처럼 해상풍력 시장이 막 형성되는 나라에선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나. 스페인은 초기 풍력 시장을 어떻게 키웠나.

 

“풍력발전단지 개발이 처음 시작됐을 당시에는 실제로 스페인 정부가 보조금을 제공하는 보상 체계, 즉 차액계약(CfD)과 같은 제도를 마련했습니다.(실제 스페인 정부는 2000년대 사업자에게 고정가격을 주거나 시장 가격에 프리미엄을 더해 정산하는 발전차액지원 제도를 운영했다.) 이를 통해 풍력발전단지가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장기적인 수익 예측 가능성은 개발사업자의 투자 결정을 촉진하거나 지원했습니다. 왜 그런 지원이 필요했냐면, 당시에는 풍력발전 기술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고, 공급망도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아 풍력발전단지의 성능과 수익성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인 보조금으로 확보된 수익의 예측 가능성 덕분에 사업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겁니다. 결국 안정적인 규제 체계를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어떤 국가에서 재생에너지 시장이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단계이고 아직 시장이 충분히 정착되지 않았다면, 개발사업자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조금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는 중국산 풍력터빈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이베르드롤라는 중국산 터빈 사용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굉장히 큰 딜레마입니다(웃음). 이베르드롤라는 지금까지 중국산 풍력터빈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발전단지에 중국산 부품이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특히 태양광발전의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사실 태양광 패널은 거의 대부분 중국산입니다. 그러나 풍력 분야에서는 현재까지 이베르드롤라가 중국산 풍력터빈을 사용한 발전단지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해상풍력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적어도 이베르드롤라에서는 중국산 풍력터빈을 선택지로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사이버보안 문제, 그리고 터빈이 실제로 상업운전에 들어간 이후 공급업체가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와 유지 지원 측면의 문제 때문입니다. 향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가격 경쟁력이 제1기준이라면 중국산 터빈도 선택지 중 하나가 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이베르드롤라의 목표는 발전 자산을 직접 운영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LCOE(균등화발전비용)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건설한 풍력발전단지를 25년 동안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초기 비용을 낮추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자산의 전체 생애주기를 고려해 판단합니다. 저희는 투자펀드가 아닙니다. 저희는 선택권을 확보해 두거나, 인허가권을 가지고 투기적인 거래를 한 뒤 나중에 그것을 매각하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리스크는 한국만의 문제인가.

 

“지금까지는 정책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고, 투자 환경 역시 항상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프랑스, 독일, 그리고 미국도 포함할 수 있는데, 이런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투자를 하면 정부가 바뀌더라도 기존 투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예를 들어 미국에서 재생에너지 투자가 영향을 받는 상황이 실제 목격되고 있습니다. 특히 해상풍력 투자가 큰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 개발사업자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이 발생했습니다. 원래는 누구도 그렇게 큰 폭의 규제 변화가 발생해서 개발사업자들에게 이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던 국가였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없습니다. 10년 전이었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베고냐 디아스 곤살레스 이베르드롤라 재생에너지 해외사업개발 총괄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빌바오 현지 바스크무역투자청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풍력산업협회 제공

—바스크에는 대형 풍력단지가 많지 않은데도 공급망이 성장했다. 이베르드롤라는 어떤 역할을 했나.

 

“이베르드롤라는 항상 매우 탄탄한 공급망을 구축해 왔으며, 특히 가능한 한 지역 공급망을 활용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베르드롤라가 처음 이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특히 1970~80년대에는 바스크 지역에 상당히 강한 제조업 기반이 있었습니다. 이후 재생에너지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바스크 지역에서 출발한 풍력발전 기업 가메사(Gamesa) 역시 이베르드롤라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결국 이런 산업은 산업 전반을 이끌어가는 견인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저희가 주로 대기업에 주목하기는 하지만, 결국 그 대기업들 역시 자체적인 공급업체들을 가지고 있고, 그 공급업체들은 중소기업이거나 규모가 더 작은 기업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하나의 연결된 공급망인 것입니다. 대규모 발주가 발생하거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면 전체 공급망이 함께 강화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바스크 정부 정책은 어떤 도움이 됐나.

 

“바스크 정부는 항상 이베르드롤라와 지역 산업·기업 간의 관계가 강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습니다. 또 저희가 해외시장에 진출하고자 할 때에도 항상 지원했고, 스페인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베르드롤라와 바스크 지역 간 관계의 가장 큰 강점은 발전단지 관련 규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발전단지 보급은 사실 정치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기술적인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공급망을 구축하고 정착시키기 위한 지원과 현지 기업에 대한 지원입니다. 이베르드롤라가 계속 이곳 바스크 지역에 기반을 두고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지원해 온 전반적인 조세정책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 사이 긴장과 갈등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