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현직 시절인 2011년 10월 미식축구리그(NFL) 시카고 베어스 구단의 원로들(OB)을 백악관에 초청했다. 그가 열렬히 응원하는 베어스의 처음이자 지금까지 마지막인 슈퍼볼 우승(1985∼1986년 시즌) 주역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70대 노인이 된 마이크 디트카 전 베어스 감독이 오바마에게 팀의 우승 연도인 ‘85’가 적힌 유니폼을 선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아메리칸풋볼의 레전드이자 베어스 팬들 사이에선 영웅으로 통하는 디트카가 9일(현지시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오바마는 꼭 15년 전 백악관에서 디트카와 함께한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고인을 추모했다.
디트카는 1939년 펜실베이니아주(州)에서 태어났다. 22세이던 1961년 베어스에 선수로 입단한 그는 1963년 팀의 NFC 챔피언십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1973년 현역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한 뒤로는 몇몇 구단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디트카의 ‘친정’인 베어스는 1982년 그를 감독으로 영입했다. 취임 3년 만인 1985년 팀을 정규 시즌 1위로 이끈 디트카는 이듬해인 1986년 슈퍼볼 승리까지 일궈냈다. 베어스가 슈퍼볼 우승의 영예를 안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지금까지도 유일하다.
시카고 주민들 사이에서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디트카는 1992년까지 총 11시즌 동안 베어스 지휘봉을 잡았다. 1988년 ‘풋볼 영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선수 시절 그의 등번호인 ‘89’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청년 오바마는 1985년 이렇다 할 연고가 없는 시카고에서 사회 운동가로서 삶을 시작했다. 베어스가 정규 시즌 1위에 오른 바로 그 해였다. 오바마는 이날 SNS 글에서 “1985년 여름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마이크 디트카와 시카고 베어스가 도시의 왕(king)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특히 디트카 감독은 엄격하면서도 압도적이고 재미난 팀의 분위기를 만들었다”며 “그 덕분에 시카고 시민들을 그를 무척 사랑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매년 슈퍼볼 우승팀 구단주와 감독, 선수들은 백악관을 방문해 현직 대통령의 축하를 받는다. 그런데 1986년 베어스는 이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그해 초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 공중 폭발로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을 애도하는 분위기 속에 백악관 격려 행사도 취소된 탓이다.
25년이 흐른 2011년 10월 대통령 오바마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를 대표하는 구단 베어스의 1985∼1986 시즌 우승 멤버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뒤늦게 잔치를 베풀었다. 디트카가 등에 ‘오바마 85’라고 적힌 시카고 베어스 유니폼을 오바마에세 선물했다.
그렇다고 오바마와 디트카가 좋은 인연인 것만은 아니다. 2004년 ‘정치 신인’ 오바마가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도전하자 공화당은 일리노이 주민들 사이에 인기가 아주 높은 디트카의 출마를 권유했다. 당시 디트카는 “난 정치에 소질이 없다”며 고사했다.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인 디트카는 훗날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뒤 “2004년 오바마와의 대결을 포기한 것을 후회한다”며 “내가 선거에 이겼더라면 오바마가 백악관까지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오바마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고인이 된 디트카를 향해 오바마는 “레전드가 세상을 떠난 것을 기리며 고인의 가족 그리고 전 세계의 베어스 팬들과 함께한다”고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