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에 들어앉은 숲속의 작은 집. 창문을 활짝 열자 초록의 숲이 아이맥스 영화관 스크린처럼 펼쳐지고, 귀에 닿는 소리는 이름 모를 산새들의 맑은 노랫소리뿐. 도심의 불빛과 소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 온전한 평온만 가슴 깊이 내려앉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려도 즐거우니 이게 진정한 힐링인가 보다. 경북 성주 가야산 자락 가야산생태탐방원 숲 속을 천천히 걷자 고요한 가을의 낭만도 한 겹씩 깊어간다.
◆첩첩산중에서 즐기는 진정한 휴식
산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한참 올라가자 국립공원공단 가야산생태탐방원이 등장한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보이는 것은 겹겹이 쌓인 푸른 산뿐. 첩첩산중이란 표현이 저절로 입 밖으로 나온다.
탐방원 입구로 들어서자 푸른 개울이 흐르는 만수골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게 방문객을 맞는다. 골짜기를 따라 교육관과 생활관이 차례로 들어섰고 그 위쪽으로 자연의집 하늘채와 바람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붕을 ‘A자’ 모양으로 가파르게 세운 디자인 덕분에 북유럽의 어느 산장으로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서둘러 짐을 풀고 창가에 서자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온 바람이 계곡물 소리를 실어 나른다. 도심의 소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니 시간마저 아주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경북 성주군 수륜면 해발 약 500m 산자락에 자리한 탐방원은 원래 목장이던 부지를 활용해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며 조성해 2018년 문을 열었다. 보통 국립공원공단 생태탐방원은 숙박비가 아주 착해 예약 사이트가 오픈하는 날이면 치열한 클릭 전쟁이 벌어지지만 이곳은 예외다. 대중교통이 아예 닿지 않고 민가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로 아주 깊은 산 속에 파묻혀 있어서다. 하지만 이런 환경이 조용한 휴식처를 찾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이다.
교육관에 들어서니 탐방원 직원이 ‘가야산 혼문을 찾아서! 숲소리 데몬 헌터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인기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국립공원 생태체험에 유쾌하게 접목한 프로그램이다. 노래의 힘으로 혼문을 지켜 악령을 막아내는 애니메이션 속 헌터들처럼 참가자들은 숲의 소리를 찾아 가야산의 혼문을 지키는 헌터가 된다.
프로그램은 생태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탐방원 곳곳에 사는 새와 동물의 다양한 소리를 들려준다. 숲의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그 소리의 주인이 살 곳을 잃는다는 뜻.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숲을 지키는 첫걸음인 셈이다. 생태 교육용 교구인 사운드박스의 단추를 누르면 노랑턱멧새, 동고비, 딱새, 박새, 검은등뻐꾸기, 휘파람새, 꾀꼬리, 뻐꾸기, 흰배지빠귀, 종다리, 팔색조, 호반새 등의 생생한 실제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청개구리, 참매미, 귀뚜라미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동안 숲에서 무심코 듣던 새소리의 주인공을 하나둘 알게 되자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교육이 끝나면 교육관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요가 매트 위에서 명상을 한다. 처음에는 앉아서, 이어 누운 채로 창밖에서 들려오는 숲의 소리와 신선한 공기를 온몸으로 호흡한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 이따금 끼어드는 산새의 지저귐이 한데 어우러지니 자연과 하나가 되면서 몸과 마음이 한결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피톤치드로 샤워해 볼까
명상을 마치면 밖으로 나가 ‘숲소리 데몬 헌터스’로 변신할 차례. 탐방원 야외무대에 숨겨둔 소리 4개를 찾아 나서는 미션 트립이다. 조별로 소리가 숨겨진 곳을 알려주는 지도를 들고 각 지점을 찾아가 소리 교구재를 눌러본 뒤 미션에 나온 소리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찾아오면 된다.
미션이 끝나면 탐방원을 품은 만수골 자연관찰로 산책에 나설 시간이다. 약 800m 길이의 탐방로는 30분 안팎이면 넉넉하게 돌아볼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하늘전망대가 나오고 유아놀이터를 지나면 숲속놀이터가 기다린다.
이곳의 인기 스타는 그물놀이터. 팽팽하게 엮은 그물 위에서 몸을 통통 튕기다 보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금세 동심으로 돌아간다. 숲길에는 취나물, 나비나물, 은방울꽃, 노간주나무 등 다양한 식물이 여행자를 반긴다. 이끼 낀 바위와 울창한 산림 사이를 거닐다 보니 온몸이 피톤치드로 샤워를 하는 듯하다. 눈을 감고 폐 속 깊숙이 가을 공기를 들이마시자 도시에서 쌓인 일상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날아간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는 상쾌함을 더하고, 곳곳에서 반짝이며 피어나기 시작한 억새는 가을 낭만을 한층 깊게 물들이니 멀지만 이곳에 오길 잘했다.
탐방원은 단체 연수가 가능한 교육 시설과 독립형 숙박 시설을 고루 갖췄다. 교육관에는 60석 규모 강당과 40석 규모 강의실이 있고 식당, 야외공연장, 전망대, 자연관찰로 등이 들어서 있다. 탐방원 안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가족 여행객은 물론 기업이나 학교 단위 연수 장소로도 각광받는다. 생활관 숙소는 모두 34개로 3인실 17개, 4인실 12개, 6인실 3개, 8인실 2개로 구성됐다. 독립형 캐빈인 자연의집(3인실)은 17개다. 자연의집 바람채와 하늘채는 A자 모양의 다락 복층 구조로 감성적인 분위기 덕분에 인기가 높다. 하늘채 일부는 전국 국립공원공단 생태탐방원 가운데 가야산에서 처음 시범 운영을 시작한 반려견 동반 객실이다.
◆맑은 물소리 따라 소리길 걸어볼까
가야산 여행에서 팔만대장경으로 유명한 합천 해인사를 빼놓을 수 없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대장경테마파크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팔만대장경 간행 1000년을 기념해 2011년 문을 연 테마파크 메인 전시관인 대장경천년관에서는 대장경의 제작 과정과 반영구 재질로 새긴 동판대장경을 만날 수 있다. 360도 돔 영상관 빛소리관에서는 대장경의 탄생과 수호 과정이 입체 영상으로 펼쳐진다. 대장경판을 직접 찍어보는 인경 체험도 아이들에게 인기다.
테마파크 주차장에서 길을 건너면 가야산 소리길이 시작된다. 해인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약 7.3㎞ 길로 완만한 데크길이 많아 누구나 걷기 좋다. ‘소리(蘇利)’는 이로움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물소리, 새소리와 함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소리길은 가을 단풍이 계곡물마저 붉게 물들인다는 홍류동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다. 신라 말기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이 세상 시비를 듣지 않으려 물소리에 귀를 씻었다는 전설처럼, 바위를 휘감아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마음의 작은 티끌까지 씻는 듯하다. 최치원이 머물렀다는 농산정을 지나면 노송 사이로 계곡이 점점 깊어진다. 백미는 길상암을 지나 만나는 낙화담. 우뚝 솟은 기암괴석 사이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짙푸른 소를 이룬다. 떨어진 꽃잎이 물 위를 맴도는 모습이 아름다워 붙은 이름처럼,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다.
해인사 일주문을 지나 안마당에 들어서자 은빛 머리 외국인들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마당 바닥에 그려진 길, ‘해인도(海印圖)’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해인도는 신라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 시절 화엄사상을 7자씩 30줄, 210자의 시로 요약해 ‘卍’자를 발전시킨 도안에 새겨 넣은 그림이다. 해인도 중심에서 걷기 시작해 미로를 54번 꺾어 돌며 시 구절을 마음에 새기면 깨달음에 이르는데, 그곳이 바로 처음 출발한 자리다. 지금 발 딛고 선 이 세상이 곧 부처의 세계라는 뜻이다. 합장하고 한마음으로 한 바퀴, 세 바퀴, 다섯 바퀴 등 홀수로 돌면 지혜와 복덕을 얻는다고 전해진다.
해인사는 외국인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로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팔만대장경 모조 경판에 먹을 발라 한지에 찍어내는 인경 체험과 스님과의 차담, 새벽 예불은 특히 외국인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인기 프로그램들이다.
걷고 비운 몸을 채워줄 맛집은 탐방원이 있는 가야산 성주 쪽 자락에 있다. 농가맛집 밀의 연잎밥 정식은 연잎에 싸서 쪄낸 찰밥을 펼치는 순간 은은한 연잎 향이 코끝을 감싼다. 맥적구이, 생선구이, 꼬시래기 숙회무침, 잡채, 된장찌개가 곁들여지고 성주 참외로 담근 장아찌가 입맛을 돋운다. 생수장가든의 장뇌삼 닭백숙은 노나무 우린 육수에 꾸지뽕나무, 엄나무, 천궁, 황기, 칡을 넣고 푹 고아 국물이 깊고 진하다. 특히 장뇌삼까지 더해지니 가을 보양식으로 제격이다. 조리에 1시간가량 걸려 예약은 필수다. 12가지 반찬이 차려지는 시래기밥상도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