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라면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입맛이 달라지고 있다. 강한 매운맛을 앞세운 제품뿐 아니라 닭육수와 칼국수 등 한국의 로컬 음식을 라면으로 구현한 제품이 주요 관광 상권에서 판매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오뚜기가 지난 7월 출시한 동대문식 닭한마리 칼국수가 외국인 관광객과 국내 소비자 사이에서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 제품의 8월 매출은 전월보다 40% 늘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에서는 8월 봉지라면 전체 매출 1위에 올랐다. 매운 붉은 국물 제품이 강세인 국내 라면 시장에서 흰 국물 제품이 관광 상권 판매 1위를 차지한 셈이다.
동대문식 닭한마리 칼국수는 서울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봉지라면으로 옮긴 제품이다. 닭육수를 기본으로 칼칼한 맛을 더하고 칼국수 형태의 면을 적용했다.
출시 초기 판매 속도도 빨랐다. 오뚜기에 따르면 이 제품은 지난 7월13일 출시된 뒤 18일 만에 누적 판매량 50만개를 넘어섰다. 오뚜기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전국 닭한마리 전문점을 찾아 육수와 면의 조합을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닭육수 계열 라면을 찾는 모습은 다른 업체 판매 데이터에서도 나타난다.
농심이 올해 상반기 서울 25개 자치구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자사 라면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명동과 동대문·서울역 등이 포함된 중구에서는 신라면 골드와 신라면 툼바가 각각 판매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서울 전체 대형마트에서는 신라면과 짜파게티, 얼큰한 너구리가 판매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중구에서는 순위가 달라졌다.
신라면 골드는 닭육수를 기반으로 매운맛을 더한 제품이다. 올해 1월 출시된 뒤 한 달 만에 1000만봉 판매를 돌파했고, 상반기 서울 대형마트 농심 라면 판매 순위에서도 전체 4위에 올랐다. 농심은 외국인에게 익숙한 닭고기 육수와 한국식 매운맛의 조합이 관광객 수요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한국 음식의 구체적인 맛과 메뉴 자체가 상품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CJ제일제당도 비비고를 통해 김치와 고추장, 김밥 등 한국 음식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비비고 김밥은 올해 들어 판매망을 확대하면서 매출이 59% 증가했다. CJ제일제당은 현지 마케팅에서도 김밥을 ‘오리지널 한국 김밥’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KCON LA 2026에서는 김치와 고추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맛을 체험하는 비비고 부스를 운영했다. 현장에서 준비한 미니완톤과 스파이시 김치라면, K소스 시식 제품이 빠르게 소진됐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K푸드 수출도 증가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농식품 수출액은 53억819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늘었다. 중동은 25.2%, 중남미는 19.5%, 유럽은 17.9%, 북미는 11.0% 증가했다.
과거 K라면의 해외 흥행이 ‘매운맛’이라는 강한 특징을 중심으로 확산됐다면 최근에는 선택지가 넓어지는 모습이다. 서울 관광 상권에서는 닭육수를 앞세운 신제품이 판매 상위권에 오르고 해외 시장에서는 김치와 고추장, 김밥 등 한국 음식 자체가 제품의 이름과 맛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식품업계도 익숙한 라면 맛을 조금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음식과 한국 식문화를 제품으로 옮기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동대문 닭한마리까지 라면으로 등장한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