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영화 창작자… 어떤 가능성을 열어갈 것인가

부산국제영화제서 머리 모은 감독들

지아장커 감독 포럼서 기조발제
“상상력 표현하도록 도구 활용
인간 고유성 담는 건 고민해야”

100% AI 애니 만든 민규동 감독
“개별적인 장면 만드는 건 훌륭
순서와 빈틈 채워가는 건 감독”

지아장커(자장커·56) 감독의 영화 ‘스틸 라이프’(2006)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 ‘플랫폼’(2000)의 유명한 자전거 장면이 인공지능(AI)으로 되살아났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AI로 생성한 지아장커 자신이다. AI가 생성한 두 명의 지아장커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올해 초 지아장커가 공개한 5분31초 분량의 AI 단편 ‘지아장커의 댄스’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도시화와 자본주의화의 물결 속에서 밀려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관조한 초기작들로 칸·베네치아에서 수상한 중국의 거장이 AI라는 새 도구로 새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지아장커는 10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BIFF) 포럼 비프 세션 ‘AI 영화의 미래: AI와 예술가는 공존할 수 있는가’에서 화상으로 기조 발제에 나섰다. 그는 “지난 2년간 AI 단편 세 편을 만들었다”며 “이 기술이 영화에 무엇을 가져올지 이해하고 싶었다”고 했다.

AI 단편 ‘지아장커의 댄스’ 속 장면

그는 “130년 전에도 물리학과 광학, 화학이 발전하며 영화라는 예술이 탄생했다”며 “AI의 도래를 막을 수는 없고, 과도하게 논쟁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한두 편이라도 직접 만들어보며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아장커가 주목하는 것은 AI가 인간의 영화를 얼마나 그럴듯하게 흉내 내느냐가 아니다. 인간이 카메라로 포착하거나 상상으로 형상화하기 어려웠던 세계를 만들어낼 가능성이다. 그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AI가 고유한 미학을 형성할 수 있다”며 전기(電氣)를 예로 들었다. 그는 “전기가 어떤 형상인지 인간은 모르지만, AI는 전기를 등장인물 삼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들이 AI를 통해 형상화되고 실사 촬영으로 담을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면 인간의 상상력을 넓힐 수 있다”고 내다봤다.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며 인간의 창의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또 다른 과제다. 지아장커는 “AI를 활용한 창작 전반에 인간의 감정과 의식이 스며들어야 한다”며 “인간이 어떤 위치에서 AI와 함께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10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포럼 ‘AI 영화의 미래: AI와 예술가는 공존할 수 있는가’ 세션에서 중국의 거장 영화감독 지아장커가 화상 기조 발제를 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AI를 창작 도구로 활용해온 다른 감독들도 경험을 나눴다. 디즈니 등에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중국 감독 리웨이는 “AI를 활용할 때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구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AI가 원래 구상했던 콘티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기도 하더라”라고 돌아봤다.

영화 ‘파과’(2025)의 민규동 감독은 지난해 두 달 남짓한 기간에 100% AI 애니메이션 ‘작은 날개’를 만들었다. 그는 생성형 AI를 둘러싼 논쟁을 새로운 현상으로 보지 않았다. 회화와 사진, 영화의 역사를 되짚으며 “이미지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돼 온 200년짜리 익숙한 논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진의 발명으로 회화가 죽지 않았고, 도구는 앞으로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민 감독은 AI가 개별 장면을 만드는 능력과 영화를 연출하는 능력은 다르다고 봤다. “AI가 조각(컷)을 잘 만들 수 있지만, 조각들의 순서와 빈틈을 채워나가는 것이 사실 ‘연출’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는 “무엇을, 왜 만들고 싶은가 하는 질문은 AI가 던져주지 못한다”며 “감독이라는 자리는 결국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