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법질서 수호에 앞장”… 트럼프 ‘힘의 정치’에 일갈

노벨평화상에 나비 필라이

유엔 인권대표·ICC재판관 지내
北·팔레스타인 인권 문제 제기
노벨위 “법치주의가 평화 보장”
트럼프 “난 8개 전쟁 끝내” 비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나비 필라이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와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을 지낸 법률가다. 노벨위원회가 국제법 전문가에게 상을 안기면서 법치주의를 통한 평화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메시지를 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전쟁 등을 수행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회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노벨평화상 욕심을 숨기지 않던 트럼프 대통령이 수상자 발표 직후 ICC 제재 등 ‘몽니’를 부리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벨위원회는 지난 9일(현지시간) 필라이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탁월한 용기와 청렴함으로 보다 포괄적인 국제 법질서를 향해 앞장서 온 인물”이라며 “개인과 국가가 법치주의를 준수해야 할 책임을 강조했다”고 평가했다.

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나비 필라이 국제사법재판소(ICJ) 임시 재판관이 9일(현지시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회의 참석 중 수상 소식을 접하고 참석자들의 환호에 웃고 있다. 뉘른베리크=AFP연합뉴스

필라이는 2008∼2014년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지냈다. 이 기간 세계 각국 인권 상황을 감시하는 본연의 임무를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유엔 차원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공식 제기해 북한 인권조사위원회를 설치 가동했다. 2021∼2025년에는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독립국제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고 규정했다. 현재는 미얀마가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된 ICJ 사건에서 재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벨위원회가 필라이에 수상을 안기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벨위원회는 평화상 발표 성명에서 “국제법 체계는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으며, 힘의 정치가 우선시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법치주의가 평화를 보장하고 비폭력으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근간임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필라이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며 국제법이 위협받고 있는 이 시점에 그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며 “국제법 체제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암묵적 비판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상이 ‘불발’된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주 유세에서 “노벨평화상이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아무도 모르는 미스터리한 사람에게 돌아갔다”면서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자신이 남·북한 전쟁을 포함해 8개의 전쟁을 끝냈다며 “우리는 각각의 전쟁에 대해 (하나씩) 노벨상을 8개 받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같은 날 미 행정부는 ICC 제재를 발표했다.

AP통신은 노벨평화상 발표 훨씬 이전부터 미 행정부가 ICC 제재 조치를 마련해 왔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기 출범 직후부터 ICC가 미국의 주권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해체를 주장해 왔다. 특히 ICC가 2024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관련 제재를 강화해 왔다.

그러나 발표 시점을 두고 필라이의 수상 사실이 고려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하콘 예를뢰브 오슬로평화연구소(PRIO) 소장 대행은 워싱턴포스트(WP)에 미 행정부의 ICC 제재에 대해 “이 상(노벨평화상)이 왜 중요한지를 정확히 보여준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