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착은 유별나다. 2019년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머드 총리가 100번째 평화상을 받자 트럼프는 “내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상을 훔쳤다”고 대놓고 깎아내렸다. 당시 아비 총리는 앙숙이었던 에리트레아와 20년에 걸친 국경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협정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중재했고 트럼프의 역할은 보잘것없었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이처럼 트럼프는 해마다 평화상 수상이 불발하자 불만을 쏟아냈지만, 올해는 예사롭지 않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 출신이자 남아프리카의 인권운동가인 나비 필라이가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필라이는 ‘국제법의 수호자’, ‘법정의 만델라’라 불리며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집단 학살처벌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노벨상위원회도 “법치주의 없이 운영되는 세계는 불공정하고 비인간적”이라며 “평화에는 정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평소 ICC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국제법도 안중에 없는 트럼프가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트럼프는 필라이를 향해 “들어본 적도 없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노골적으로 증오하는 인물”이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8개의 전쟁을 끝낸 자신이 “전쟁 하나당 하나씩 8개를 받았어야 했다”고 강변했다. 이도 모자라 트럼프 행정부는 ICC를 산산조각내겠다며 미국 내 자산동결, 기업과 개인의 거래중단 등 고강도 제재를 단행하고 동맹국을 향해서도 제재참여를 종용했다. 1기 집권 시절에도 ICC가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내 전쟁범죄의혹을 조사하려 하자 트럼프는 ICC 검사와 판사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입국도 막았다.
이런 뒤끝 작렬은 왜 그가 평화상의 주인이 될 수 없는지 보여준다. 120여년 전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장에서 평화상 선정기준으로 국가 간 우애 증진과 군비감축, 평화촉진을 꼽았는데 누가 봐도 트럼프의 행보는 거리가 멀다. ICC와 유엔은 법치주의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라고 비판했고 우방국인 영국, 프랑스, 일본 등 6개국도 제재에 반대하는 공동성명까지 냈다. 국제질서를 망가뜨리는 트럼프의 폭주에 국제사회의 인내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