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 때까지… 배달앱 콜 잡듯 무대 찾아 오늘도 뛴다 [탐사기획-한국힙합 홍대에서 BTS까지]

<1회> 청년 래퍼들의 '삶'

5년차 청년래퍼 릴재우
게스트로 무대 올라 열창
배달 알바 전전하지만
음악 향한 꿈 놓지 않아

5년차 래퍼 ‘릴재우’
열 살에 ‘에픽하이’ 노래로 접한 힙합
유튜브 프로그램서 현역에 칭찬도
직업 삼았지만 무명에겐 긴 터널
밥벌이 어려워 ‘N잡’까지
커버곡으로 공연 제안 들어왔지만
느리더라도 내 얘기로 활동 꿈꿔
세계일보는 1993년 6월27일자 1면 칼럼 ‘설왕설래’에서 힙합을 ‘저질 외래풍조’라 했다. 레게 머리를 이유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방송 출연을 막은 KBS의 결정을 옹호했고, 흑인처럼 꼰 머리와 헐렁한 옷을 흉내 내지 말라고 썼다. 그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33년이 지난 지금 힙합은 한국에서 많은 청년이 자기 이름을 걸고 뛰어드는 음악이 됐고, 케이팝(K-POP)을 타고 세계로 나갔다. 그 청년들의 삶과 가사, 지역과 제도를 4회에 걸쳐 살핀다.〈편집자주〉

 

랩은 땅 밑에서 올라왔다. 비좁은 계단을 타고 새어 나온 뭉개진 소리였다. 문 없는 공연장 입구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갈 때마다 또렷해졌다. 마지막 계단에서는 발끝에 닿은 스피커의 묵직한 진동이 머리까지 올라왔다. 킥(큰북)과 스네어(작은북)가 심장박동처럼 ‘쿵쿵’ 고막을 때렸다. 관객들은 두 손을 머리 위로 흔들어도 서로 방해되지 않을 만큼 듬성듬성 서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미러볼이 붉은 조명을 흩뿌리는 스탠딩석 너머로 무대 위 래퍼 릴재우(본명 조재우)가 보였다.

 

왼손에는 마이크를, 오른손에는 흰 수건을 쥐고 랩을 뱉고 있었다. 복슬복슬하게 부풀린 아프로 파마머리에 불꽃 그림이 들어간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저는 지금 최고로 재밌어요. 다시 놀아볼까요?”라고 외쳤다. 스무 명 남짓한 관객이 무대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7월25일 오후 8시, 서울 신촌의 지하 공연장 허니클로버. 100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이곳에서 서울예대 힙합 동아리 웨이브가 마련한 공연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게스트로 무대에 오른 재우가 숨을 고르더니 입술에 힘을 주고 랩을 내뱉었다. 객석에서 함성이 터졌고, 사람들은 박자에 맞춰 뛰었다. 그가 손을 좌우로 흔들면 관객들도 물결처럼 출렁였다. 흰 수건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yo 나의 흰 수건 / 절대 안 던지는 이유 뭐냐고 / 물으신다면 나의 답변 / 난 절대 질 수 없어 / 항복하지 않아 난 행복 (릴재우 - 소년만화간지 중에서)’

래퍼 릴재우. 부천=최상수 기자

한 달여 뒤인 8월27일 낮 12시30분. 경기 부천 북부역사거리. 점심시간을 맞아 배달 오토바이들이 상가 골목을 빠르게 지나갔다. 재우는 그 사이를 묵묵히 걸었다. 왼손에 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콜(배달 주문)을 기다렸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켠 지 5분 만에 알림이 울렸다. 빙수 가게였다. 가게에 닿아 ‘매장 도착’ 버튼을 누르자 15분 안에 배달하라는 문구가 떴다. 직선거리 330m, 배달비 2600원.

 

재우는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른다. 평소엔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데 이날은 자전거도 없었다. 빙수를 받아 들고 지도 앱을 켰다. 예상 소요 시간 8분. 배달할 때 뛰지 않는다. 안전 때문에 스스로 정한 규칙이다. 걸어서 늦은 적은 없었다. 제 속도면 충분했다.

 

재우는 5년 차 래퍼다. 열 살에 들은 그룹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가 그를 힙합의 세계로 이끌었고, 동국대에 진학해 가입한 힙합 동아리 에이잭스에서 랩의 재미를 알았다. 입 밖에 내기 어렵던 말이 랩으로는 술술 쏟아져 나왔다. 5년 전 첫 곡을 내고 무대에 서기 시작했지만 그때만 해도 랩을 취미라고 여겼다.

 

마음이 흔들린 건 3년 전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면서부터다. 현역 래퍼들이 신인에게 조언해 주는 그 프로그램에서 쿤디판다, 디젤 같은 래퍼들에게 “잘하고 있다”라는 격려를 들었다. 재우는 “취미로만 하겠다고 스스로 씌워둔 가면이 벗겨진 것 같았다”라고 했다. 그는 음악을 업으로 삼기로 했다.

 

무명 래퍼에게 무대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공연장은 있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래퍼 대다수가 몰린 수도권에서 재우는 숱한 이름들 사이에 묻힌 이름일 뿐이었다. 어렵게 잡은 공연이 “힙합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주최 측 말 한마디에 갑자기 취소되기도 했다.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 세상에는 기회가 넘쳐 보였다. ‘힙합과 음악에 관심 있는 2008∼2016년생 남자 누구나.’ 한 대형 기획사의 힙합 교육 프로그램 광고가 올해도 쉴 새 없이 떴다. ‘누구나’는 10대까지였다. 스물여덟 재우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8월16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성암아트홀. 그 프로그램의 파이널쇼가 열렸다. 방탄소년단(BTS)을 키워낸 기획사가 10대 남학생에게 무료로 랩을 가르치는 ‘빅히트 뮤직 히트 잇 베이스’다. 사회를 맡은 댄서 아이키가 “대한민국 힙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는 시간”이라며 박수를 청했다. 객석을 채운 관객은 300여명. 10대 팬들은 무대 앞 펜스에 다닥다닥 붙어 손에 쥔 응원봉을 흔들었다. 수많은 지원자 가운데 5주간의 교육 기회를 거머쥔 이는 단 스무 명. 마지막 순서인 ‘갤럭시’ 팀이 호명되자 무대 위로 파란 조명이 내리꽂혔다. 빨간 옷을 맞춰 입은 10대 남학생 다섯 명이 중앙으로 모여들어 둥글게 마주 섰다.

 

‘서로 다른 길에서 / 여기 같이 모여서 / 랩을 뱉고 꿈을 꿔’

 

노래가 끝나자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동시에 뒤로 넘어지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팀은 관객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 우승했다. 소감을 묻자 ‘갤럭시’의 막내 신시온(15)은 “부모님 제가 지금까지 속 썩였지만 앞으로 계속 증명할게요”라고 외쳤다. 증명은 힙합에서 실력으로 자신을 입증해 보인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

 

재우 역시 랩을 시작한 순간부터 증명이라는 숙제를 안고 살았다. 이름을 알려 관객 수를 늘려야 했고, 자신을 믿어준 부모님에게 큰 무대에 선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한 번에 해결할 지름길은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였다. 카메라에 한 번 잡히는 것만으로도 이름이 알려지고 노래가 널리 퍼져나가는, 무명 래퍼에겐 로또 같은 기회다.

 

지난해 11월2일 오전 4시. 인천 남동구 남동체육관 앞, 재우는 추위에 발을 구르며 “무조건 된다”라고 나직이 되뇌었다. 세 시간을 기다려 받아 든 쇼미더머니 시즌 12 예선 번호표는 2만 번대. 번호표를 단 이들이 유선 이어폰을 한쪽 귀에만 꽂고 허공에 대고 랩을 뱉고 또 뱉었다. 그 틈에서 재우는 목을 아끼며 입을 다물었다. 마침내 1층 대강당에서 심사 위원 크러쉬를 마주한 재우는 자작곡 ‘남자는 돈가스 여자는 떡볶이’를 시작했다.

 

‘난 돈가스만 먹는 남자지 삼시 세끼 / 경양식이든 일본식이든 맛집 항시대기 / 제육 아님 국밥도 가끔 땡길 땐 / 탕후루보단 제로탄산이 맞아 내 입엔’

 

시작은 좋았다. 두세 마디에 끊기는 지원자가 태반인데 열다섯 마디를 넘겼다. 하지만 열여섯 마디째, 무표정하던 크러쉬의 목소리가 랩을 비집고 들어왔다. “수고하셨습니다.” 크러쉬의 손에 들린 ‘합격 목걸이’가 멀어졌다. 시즌 11에 이어 두 번째 탈락이었다. ‘와, 나 이번에 진짜 잘했는데… 내년에 또 해보지 뭐.’ 재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심사장을 나오니 해가 중천이었다.

 

빙수를 건네고 돌아설 때도 해가 높았다. 자리를 옮겨 북부역사거리 인근 원룸이 빼곡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20분이 지나서야 햄버거 배달이 떴다. 콜 수락 30초 만에 왕만두, 3분 뒤 연어까지. 세 가게에서 음식을 받은 후부터 40분 안에 차례로 배달하라고 앱이 재촉했다.

 

배달 콜을 잡듯 재우는 공연을 찾아다녔다. 그의 노트북에는 ‘공연 리스트.hwp’라는 파일이 있다. 전국의 축제를 뒤져 공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마다 포트폴리오를 밀어 넣었고, 공고가 없는 곳엔 직접 주최 측에 “공연자가 필요하다면 연락을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참가비를 내고 서는 ‘오픈 마이크 무대’(누구나 오를 수 있는 무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돈까지 내며 텅 빈 객석 앞에 서는 게 창피하다”라고 투덜댔지만, 재우는 달랐다. 이름을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다면 어떤 무대든 상관없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현장에서만 볼 수 있다는 뜻의 공연 ‘오프라인 온리’를 2년 전부터 직접 기획해 44차례나 열었다.

 

차츰 재우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포트폴리오를 돌렸던 문화재단과 청소년센터 등에서 “공연에 참여해 달라”라며 먼저 연락이 왔다. 7월 신촌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주최 측은 재우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고 했다. 증명의 압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5년 동안 릴재우라는 이름으로 240번의 무대에 섰다.

 

음악만으로 밥벌이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출연료는 0원에서 100만원까지 제각각이다. 음원 정산금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곡이 화제가 돼야 월 8만∼9만원 정도다. 반면 녹음 장비와 무대 의상, 뮤직비디오 촬영·편집까지 하고 싶은 일을 이어가는 데는 계속 더 큰 돈이 든다. 주 3일 샐러드 가게 야간 아르바이트, 간간이 나가는 직업 체험 강사, 시간이 빌 때마다 배달. 본업을 지키며 돈을 버는 방법은 쪼개서 일하는 것뿐이다. 배달지와 배달지 사이 평균 15분. 재우는 걸음을 옮기며 무대에서 관객에게 건넬 멘트를 고르고, 가사를 떠올리며 곡의 콘셉트를 궁리한다.

 

최근엔 한 중소 기획사에서 계약 제안도 들어왔다. 이 기획사 관계자는 재우의 자작곡 대신 가수 싸이나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처럼 누구나 아는 히트곡을 다시 부르는 커버 무대를 늘리자고 했다. 당장의 수입과 인지도를 위해 타협해야 할까. 취업과 결혼 압박이 거세지는 30대가 다가올수록 철없이 꿈만 좇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도 고개를 들었다. 재우는 끝내 제안을 거절했다. 직접 쓴 가사와 곡으로 무대를 채우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만큼은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기획사를 나서는 길, 그는 자신의 노래 ‘할 거면 제대로’가 떠올랐다고 했다.

 

‘할 거면 제대로 해 / 아니면 get away(떠나다) / 울 엄마가 말했어 / 죽도 밥도 안 되면 / 누룽지라도 돼’

 

수화기 너머 재우의 어머니(55)는 “누룽지 그거 제가 말한 거거든요”라며 웃었다. 아들이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여느 부모처럼 걱정부터 앞섰다. 그래도 반대하지 않은 건 아들의 뚝심 때문이었다. 아들이 왜 무대를 놓지 못하는지 온전히 이해한 건, 2024년 10월 동두천의 한 지역 축제에서였다. 무대에 오른 재우의 에너지에 관객이 호응하고, 재우가 다시 무대를 휘어잡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저런 맛에 계속 노래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했다. 한 번에 확 뜨는 것보다, 조금씩 단단하게 나아지는 아들에게서 더 큰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재우가 바라는 성공은 거창하지 않다. 음악으로 번 돈으로 가족과 친구에게 밥 한 끼 사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아르바이트 없이 음악만으로 먹고사는 것. 하고 싶을 때까지 음악을 하는 것. 그거면 된다고 했다.

 

다시 부천. 햄버거와 왕만두, 연어를 차례로 받아 든 재우는 5분을 걸어 원룸 골목 첫 집에 햄버거부터 건넸다. 8분을 걸어 두 번째 배달지 전화국사거리에 닿았다. 경인선 철길 위로 놓인 심곡고가교를 건너 다세대주택이 늘어선 남쪽 오르막을 25분 더 올라야 마지막 집이 나왔다. 연어를 건넸을 때 앱의 제한 시간은 2분이 남아 있었다. 뛰지 않았는데도 온몸이 젖어 있었다. 1시간 반 동안 번 돈은 9600원. 재우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꾹꾹 눌러 땀을 훔치고는 곧장 작업실로 향했다.

 

재우가 지난달 낸 신곡 ‘오렌지 하늘’은 배달을 하다 올려다본 하늘에서 나왔다. 랩을 그만둔 동아리 친구에게 보내는 노래다. 노을이 진 뒤 새로운 하늘이 열리듯, 누군가의 꿈이 저문 자리에서 또 다른 꿈이 시작될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재우는 설명했다. 함께 랩을 하던 친구들은 어느새 직장인이 됐다. 그중 한 친구는 랩을 그만두며 재우에게 스피커와 마이크, 헤드폰을 줬다. 합치면 150만원은 족히 나가보였다. 돈은 받지 않았다. 대신 “꼭 음악으로 번 돈으로 갚으라”고 했다. 재우는 아직 그 빚을 갚지 못했다.

 

‘구둣발 퇴근길 사이 / 주홍 빛깔의 노을이 지면 / 이 노랠 불러줄래 / 거기에 난 남아있을 테니까’

 

2017년 가을, 동국대 축제. 야외무대에서 재우와 동아리 친구 두 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가장 친한 셋이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섰다. 함께 만든 곡 ‘블레싱(Blessing·축복)’을 불렀다. “나는 나 너는 너 우리만의 색을 색칠”이라는 가사가 유난히 입에 착 붙었다. 비트 위에서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셋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그건 축복이었다. 그로부터 9년. 재우는 아직 무대에 남아 있다. 홀로, 지지 않은 채로.

 

취재=조병욱·배주현·정세진 기자,

사진=최상수 기자, 편집=이대용 기자,

미술=권기현 기자

 

이 시리즈의 전 회차는 세계일보 인터랙티브 기사(www.segye.com/investigative/k-hiphop)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