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력 늘어도 기업은 ‘숙련자’ 찾는다… 흔들리는 경력 사다리 [이귀전의 왜-인재전쟁 ⑪]

AI 채용 늘지만 신입도 ‘실무 경험’ 우선… ‘경력 무관’ 공고 30.6%→8.8%
청년 첫 일자리·재직 통한 숙련경로 약화… 기업이 원하는 ‘해본 사람’ 줄어

인공지능(AI) 경쟁의 무게중심이 기술에서 사람으로 옮겨가고 있다. 최첨단 모델을 직접 만들어 본 연구자는 극소수이고, 이를 확보하기 위해 빅테크 최고경영자가 직접 영입전에 뛰어들고 수천억원대 보상과 대규모 투자를 내건다. 인재 확보는 개인 채용을 넘어 핵심팀과 기술을 함께 가져오는 거래, 국가의 직접 스카우트, GPU·데이터·연구조직까지 묶은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인재전쟁’ 시리즈는 메타·구글·오픈AI·애플의 인재 쟁탈전에서 출발해 중국의 인재 귀환과 유출 방어, 유럽의 두뇌 순환, 각국 정부의 영입전과 공공 연산자원 경쟁을 따라간다. 또 대학과 기업을 잇는 인재 공급망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인재 유출과 숙련인력 부족의 현실, 해외 인재 유치와 연구환경 개선을 위한 대응을 짚으며 한국이 세계 인재전쟁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 살펴본다.

국내 인공지능(AI) 인력이 늘고 기업의 채용 수요도 커지고 있지만 기업이 원하는 사람과 노동시장에 나오는 인력 사이의 간극은 오히려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AI 전공자 숫자보다 실제 데이터를 만지고 이를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해 본 사람을 찾는다. 신입에게조차 실무 프로젝트 경험을 요구하는 반면 청년이 첫 직장에서 그 경험을 쌓고 숙련자로 성장할 경로는 약해지고 있다. 인재가 부족한 문제에 앞서 ‘경험 있는 인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경력 무관’ 30.6%→8.8%… 신입 채용 문턱 높아져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에 따르면 국내 AI 인력은 2010년부터 2024년까지 105.7% 증가했다. 연평균 5.3%씩 늘어난 셈이다. 채용 수요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잡코리아 집계에서 올해 1분기 ‘AI’ 키워드가 포함된 채용공고는 5년 전 같은 분기보다 112% 늘었다. 올해 1∼5월에는 약 1만50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증가했다.

 

하지만 기업이 찾는 사람은 단순히 AI를 전공했거나 관련 학위를 가진 인력이 아니었다. 한국표준협회가 지난 3월 국내 기업 재직자 487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4.4%가 AI 인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한 직무로는 데이터 분석가가 58.9%로 가장 많았고 AI 모델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자(35.9%), AI 모델 개발자(34.7%)가 뒤를 이었다.

 

신입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역량도 ‘실무 프로젝트·현장 적용 경험’이 32.9%로 가장 높았다. 커뮤니케이션·협업 능력은 28.0%, AI 모델·딥러닝 기술은 19.9%였다. 전공을 따지지 않는다는 응답도 38.6%였다. 문동민 한국표준협회장은 “기업이 원하는 AI 인재는 현장에서 데이터를 읽고 조직과 함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실무형 인재”라고 말했다.

 

채용공고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났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2020년부터 2024년 8월까지 AI 관련 채용공고 7318건을 분석한 결과 ‘경력 무관’ 공고 비중은 30.6%에서 8.8%로 급감했다. 반면 중·고급 경력을 요구한 공고는 6.7%에서 16.7%로 2.5배 늘었다.

 

전공 무관 공고는 70%를 넘어섰고 공고 한 건에서 요구하는 기술 역량군도 평균 0.69개에서 1.15개로 늘었다. 기업이 학력이나 전공보다 실제 업무에서 쌓은 기술과 경험을 더 많이 따지는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다. KISTEP 연구진은 경력자 선호 강화가 신입 인력의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청년 일자리·재직 줄어… 실전경험 쌓을 통로 약화

 

숙련자는 처음부터 숙련자로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첫 직장에 들어가 업무를 배우고 프로젝트를 맡으며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쳐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기업이 경력자를 더 선호하는 동안 청년이 바로 그 경험을 얻을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민연금 가입자료와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 2022년 6월부터 지난 6월까지 15∼29세 청년 일자리는 28만5000개 감소했다. 이 가운데 26만8000개가 AI 기술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AI 고노출 업종’에서 줄었다.

 

정보서비스업의 청년 고용은 31.4%,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은 16.6% 감소했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3만개 증가했고 이 가운데 17만3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늘었다.

 

첫 직장에 들어가는 문만 좁아진 것도 아니다. 취업 이후 한 직장에서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도 약해지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을 제외하고 2016∼2019년과 2022년 7월∼2026년 6월을 비교하면 AI 고노출 업종에서 청년층의 월평균 고용 유출은 3700명에서 4900명으로 32% 증가했다. 반면 월평균 유입은 3만2600명에서 2만9100명으로 11% 줄었다.

 

한국은행은 청년들이 취업한 뒤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경험과 숙련을 축적하는 과정이 약화되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다만 청년 고용 감소를 AI의 영향만으로 단정하지는 않았다. 팬데믹 이후 과잉채용 조정과 경력직 중심 채용, 기업 내부교육 약화 등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대기업 27.4% “숙련인재 부족”… 외부 채용만으론 한계

 

이 구조가 계속되면 기업이 원하는 숙련인력의 공급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입이 첫 직장에서 실제 데이터를 다루고 제품 개발과 서비스 적용을 경험해야 몇 년 뒤 기업이 찾는 중·고급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AI 채용난에서도 이 문제가 드러난다. 한국은행이 2025년 10월 국내 기업 400곳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이 AI 인력을 채용하면서 가장 많이 겪은 어려움은 ‘숙련 인재 부족’으로 27.4%였다. 지원자가 기대하는 급여가 높다는 응답도 25.3%였다. AI 인력이 아예 없는 것뿐 아니라 기업이 바로 업무를 맡길 수 있는 수준의 경험자를 찾기 어렵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은 기존 초급 일자리를 그대로 보전하는 방식보다 청년이 AI를 활용하면서 경험과 숙련을 축적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기업의 훈련과 멘토링에 드는 비용을 지원하고 직업훈련 역시 AI가 실제 업무에 활용되는 방식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업들도 외부에서 완성된 경력자를 뽑는 데만 의존하지 않고 내부에서 경험을 만드는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LG가 지난 3월 문을 연 ‘LG AI대학원’도 그중 하나다. 전자·배터리·디스플레이·화학 분야에서 일해온 계열사 직원 17명을 첫 석·박사 과정에 선발해 산업 현장 경험에 AI 연구 역량을 더하는 방식이다.

 

신입이 경력을 만들 수 있는 입구가 좁아지는 가운데 기업이 원하는 숙련인력을 어디에서 계속 확보할 것인지가 국내 AI 인력 수급의 또 다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이슈를 한발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뉴스의 전면에 드러난 사건과 숫자뿐 아니라 그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과 이해관계, 변화의 맥락까지 함께 살핍니다. 정치·경제·사회 현안을 짚는 기획과 분석부터 여행지의 새로운 풍경, 일상 속 흥미로운 장면까지 폭넓게 담습니다. 무겁고 가벼운 세상의 여러 표정을 따라가며, 익숙한 뉴스 속에 숨은 ‘왜’를 찾아 독자에게 한 번 더 생각할 거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