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공지능(AI) 인재정책이 비자를 내주고 인력 숫자를 늘리는 단계에서 정착과 연구비, 연구팀, 그래픽처리장치(GPU)까지 지원하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다. 해외 인재가 가족과 함께 국내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국내외 연구자에게는 연구과제와 함께 일할 팀을 연결하는 사업도 시작됐다. AI 연구의 핵심 기반인 GPU도 대규모 확충에 들어갔다. 문제는 이들 지원이 아직 여러 부처와 사업으로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한 명의 인재를 데려와 한국에서 연구하고 성장시킨 뒤 장기간 머물게 하는 하나의 경로로 얼마나 연결할 수 있느냐가 과제로 남아 있다.
◆톱티어 비자 확대… 가족 정착까지 지원
해외 인재 유치에서 먼저 달라진 것은 입국뿐 아니라 정착 조건까지 정책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첨단산업 기업의 최고급 해외 인력을 대상으로 도입한 ‘톱티어 비자’를 올해 6월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기업연구소 등의 과학기술 분야 교수·연구인력으로 확대했다. 기존에는 AI·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등 첨단산업 기업에 고용된 인력이 중심이었다.
과학기술 분야 톱티어 인재와 가족에게는 국내 취업과 정주가 가능한 체류자격을 주고 3년 뒤 영주자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입국 절차뿐 아니라 주거와 자녀 교육 등 국내 생활 정착을 돕는 지원도 연계한다.
첨단산업 기업에 들어오는 해외 인재에게는 산업통상부의 ‘K-Tech Pass’가 별도로 운영된다. 근로소득세 감면과 자녀의 외국인학교 입학, 전세보증상품, 금융·통신 등 생활 지원을 묶은 제도다. 사람을 데려오는 데서 끝내지 않고 가족이 함께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는 조건까지 유치정책의 범위에 넣은 것이다.
다만 지원제도 확대가 곧바로 최상위 인재 유치 성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가 지난 6월 공개한 톱티어 비자 국내 체류자는 24명이다. 정부가 2030년까지 유치하겠다고 밝힌 350명은 첨단산업 인재 250명과 과학기술 인재 100명을 합친 규모다. 현재 24명 역시 AI 연구자만이 아니라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등 대상 분야 전체 인재를 포함한다.
◆이노코어·BP+로 연구팀·연구비까지 연계
한국에 들어온 인재가 장기간 머물려면 비자와 생활여건뿐 아니라 어떤 연구를 하고 누구와 함께 일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정부 사업도 연구자 한 명에게 지원금을 주는 방식에서 연구과제와 팀, 이후 경력까지 연결하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4개 과학기술원이 운영하는 ‘이노코어(InnoCORE)’는 AI 융합 분야 8개 연구단에서 박사후연구원 400명을 임용했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연구경력을 이어가는 인력이 116명이고, 해외 대학·연구기관 등에서 활동하다 국내로 돌아온 한국인 연구자가 56명이다. 외국 국적 연구자도 103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 연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임용과 기업 파견, 산학 공동연구, 창업, 독립연구 등의 경로로 이동할 수 있다. 박사후연구원 임용을 한시적 연구과제로 끝내지 않고 이후 대학과 기업, 창업 등으로 연구경력을 이어갈 통로를 사업 안에 둔 것이다.
올해 신설된 ‘브레인풀 플러스(BP+) 기관유치형’은 국내 대학과 연구기관이 필요한 해외 인재나 연구팀을 직접 찾아 데려오는 방식이다. 기존 브레인풀이 국내 연구책임자가 필요한 해외 연구자를 개인 단위로 초빙했다면 기관유치형은 기관이 자체 연구전략에 따라 해외 우수 연구팀과 최우수 인재를 유치한다.
선정 기관에는 연간 약 30억원의 묶음예산을 최대 5년간 지원한다. 인건비뿐 아니라 인재 발굴과 연구활동 등에 필요한 비용을 기관이 자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정해진 과제에 연구자 한 명을 끼워 맞추는 대신 사람과 팀, 연구과제를 함께 구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올해 선정된 5개 기관은 지난 8월 기준 실제 해외 연구자 유치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GPU 3만7000장 확보… 지원체계는 부처별 분산
인재에게 연구비와 팀을 제공해도 대규모 AI 모델을 실제로 개발할 연산자원이 없으면 최첨단 연구를 이어가기 어렵다. 정부가 첨단 GPU 확보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2025년 추가경정예산으로 추진한 1만3000장과 올해 추가 구매하는 1만5000장, 국가 슈퍼컴퓨터 6호기에 투입할 약 9000장을 합쳐 2026년까지 첨단 GPU를 누적 3만7000장 규모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각각의 조달·구축 일정이 달라 연구자가 현재 3만7000장을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확보된 GPU 역시 국가 AI 프로젝트와 산업계·학계·연구계 등에 별도의 절차를 거쳐 배분된다.
비자와 가족 정착, 연구비와 연구팀, GPU까지 필요한 지원수단은 하나씩 갖춰지고 있지만 이를 인재 한 명을 중심으로 묶는 구조는 아직 약하다. 해외 인재의 비자와 체류는 법무부, 첨단산업 인재의 정착 지원은 산업통상부, 과학기술 인재와 연구비 지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각각 맡고 있다. GPU 역시 별도의 연산자원 배분체계를 거친다.
해외 연구자를 영입할 때 어느 기관에서 어떤 연구를 맡고, 누구와 팀을 꾸리며, 어느 정도의 연구비와 GPU를 이용할 수 있고 가족은 어떻게 정착할 수 있는지를 하나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구조와는 아직 거리가 있는 셈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AI 인재정책을 분석하면서 2019년 국가 AI 전략 이후 관련 사업이 계속 확대됐지만 인재 부족과 해외 유출이 반복되는 배경으로 부처 간 총괄조정 부족과 인재 양성·정착 지원의 분리, 단기 재정사업 중심의 정책 설계를 지적했다.
김기식 국회미래연구원장은 지난 4월22일 국회에서 열린 AI 인재 양성 정책토론회에서 “우리나라는 인재 부족과 해외 유출, 교육·연구·산업 간 연계 미흡 등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며 “인재의 육성·성장·정착을 아우르는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