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을 차지한 신들… 탐욕의 청구서가 날아든다

국립오페라단 ‘라인의 황금’

웅장한 성을 지어 놓고 대금을 치를 생각이 없는 신들의 왕. 사랑을 포기한 대가로 절대 권력을 얻은 난쟁이. 황금을 차지하려다 형제마저 죽이는 거인. 신화 속 이야기지만 부동산과 계약을 둘러싼 갈등부터 노동 착취와 끝없는 소유욕까지 낯설지 않다. 바그너가 그린 신들의 세계를 통해 오늘날 인간 사회를 들여다보는 오페라 ‘라인의 황금’이 무대에 오른다.

 

국립오페라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인의 황금’을 선보인다. 바그너가 26년에 걸쳐 완성한 연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2029년까지 차례로 제작하는 장기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 올해는 4부작 전막 초연 150주년이기도 하다.

국립오페라단의 ‘라인의 황금’. 국립오페라단 제공

‘니벨룽의 반지’는 북유럽 신화와 게르만 서사시를 바탕으로 사랑과 권력, 탐욕과 파멸을 그린 대작이다. ‘라인의 황금’을 시작으로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어진다. 방대한 음악을 구현할 오케스트라와 바그너 전문 성악가뿐 아니라 신화 속 세계를 펼쳐낼 무대와 기술력까지 요구한다. 

 

서막에 해당하는 ‘라인의 황금’은 비극을 낳는 반지의 탄생을 다룬다. 라인강 처녀들에게 구애하다 조롱당한 난쟁이 알베리히는 사랑을 저주하고 황금을 훔쳐 절대 권력을 주는 반지를 만든다. 한편 신들의 왕 보탄은 거인 형제에게 발할라 성을 짓게 하면서 젊음의 여신 프라이아를 대가로 약속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던 그는 알베리히에게서 반지를 빼앗는다. 반지는 주인을 바꿔 가지만 그때마다 파멸을 부르는 저주도 함께 옮겨간다.

 

연출은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을 맡았던 로렌조 피오로니가 담당한다. 신화를 먼 과거가 아닌 우리 시대를 비추는 돋보기로 삼는다. 권력을 쥔 신들의 가문에는 가족 드라마를, 반지를 빼앗고 빼앗기는 인물들 사이에는 갱스터 드라마를 겹친다. 장중한 음악 속 유머와 블랙코미디를 끌어내 탐욕스러운 인물들을 풍자하겠다는 구상이다.

 

무대 역시 신화적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난쟁이들이 사는 니벨하임은 상자와 상품 포장재, 쓰레기가 거대한 도시처럼 증식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신들의 성 발할라는 우아한 목조 벽면과 샹들리에로 꾸미되 현금 뭉치가 사방으로 흩날리는 장소가 된다. 라이브 카메라는 인물들 표정과 몸짓을 확대해 스크린에 비춘다. 무대에서는 작고 초라한 인물이 화면에서는 거대한 존재로 보이는 식이다. 권력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관객에게 묻는다.

 

피오로니는 연출노트에서 보탄과 알베리히가 “둘 다 권력을 좇고, 둘 다 폭력에 의존하며, 둘 다 타인을 자신의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고 짚었다. 궁전에 사는 신과 밑바닥에서 올라서려는 난쟁이를 같은 욕망으로 연결한 것이다. “청구서는 나중에 날아옵니다. 그러나 청구서는, 반드시 날아옵니다”라는 말로 이번 연출을 압축했다.

 

음악은 2024년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를 이끌었던 로타 쾨닉스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바그너 음악 특유의 인물이나 사물, 관념과 연결된 짧은 음악적 동기인 ‘라이트모티프’가 반복·변형되며 대사 너머 심리와 사건을 암시하는 방식도 감상 포인트다.

 

유럽 무대에서 바그너 작품을 다뤄온 성악가들이 주요 배역에 나선다. 보탄은 올렉산드르 푸슈냐크와 이상민이, 알베리히는 사무엘 윤과 양준모가 번갈아 맡는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브륀힐데를 노래한 다니엘라 쾰러와 소프라노 임세경은 프라이아로 출연한다. 프리카 역에는 김선정·양송미가, 로게 역에는 조너선 스토턴·김요한이 캐스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