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미군 기지도 침수 위기… 전선 바꾸는 기후변화 [S스토리-흔들리는 세계 안보지도]

집중호우·태풍에 흔들리는 요새들
노퍽기지 1세기 만에 해수면 46㎝↑
마셜제도 레이더섬 잠겨 복구 어려움
괌 공군기지 태풍 피해 12조원 전망

기후 적응 역량이 곧 안보 경쟁력
해빙 녹으며 바닷길 열린 북극해
그린란드 등 美, 전략적 가치 ‘눈독’
안보전략에 기후변화 반영 잰걸음

지난 3월31일 미국 동부 해안에서 미 해군 니미츠급 항공모함인 조지 H W 부시 항공모함이 이란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중동으로 떠났다. 항모가 출항한 곳은 버지니아주의 노퍽해군기지. 여의도 면적의 9배에 달하는 26㎢의 광활한 부지에 13개의 부두와 500여개의 지원시설을 갖춘 세계 최대 해군기지로 1917년 설립돼 100년 이상 미 대서양함대의 모항이자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 전력인 항모들의 ‘집’ 역할을 해왔다.

거대한 항모와 군함이 장기 정박하다 대서양으로 곧장 나갈 수 있는 깊은 수심을 가졌으면서도, 체서피크만 안쪽에 위치해 자연 방어가 유리한 천혜의 요충지를 유지하기 위해 미 정부는 매년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노퍽해군기지가 수십 년 뒤에도 항모들의 ‘집’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1세기 들어 극심해지는 기후위기의 영향권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기지가 위치한 체서피크만 일대는 미 동부 연안에서 기후위기 영향을 가장 심각하게 맞고 있는 ‘기후변화의 최전선’으로 꼽힌다.

이 지역 조위관측소에서 측정한 해수면은 지난 100년 동안 무려 약 46㎝나 상승했다. 만조 때 주변 도로가 침수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기지의 해안 방어시설과 배수 시스템에 가해지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 기후위기가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군사시설의 수명을 갉아먹고, 결국 기능까지 약화시키고 있다.

◆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 처한 군사기지

일반적으로 핵심 군사자산은 군사적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입지와 환경을 세심하게 고려해 건설된다. 해군기지는 깊은 수심과 해상 접근성을 갖춘 해안에, 공군기지는 주요 작전 지역에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곤 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입지 조건이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해안은 해수면 상승과 침수에, 섬 지역은 점점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태풍에, 극지방은 영구동토층 해빙과 지형 변화에 노출돼 있다.

위기의 군사기지는 노퍽해군기지만이 아니다. 미 의회는 이미 2019년 기후위기에 직면한 군사자산에 대한 청문회를 진행했었는데 노퍽해군기지 외에도 미 전역과 태평양 등에 산재한 여러 군사자산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중 ‘로널드 레이건 탄도미사일방어 시험장(RTS)’ 등 미군의 초정밀 전략·자산들이 밀집해 있는 남태평양 중부 마셜제도 콰절레인 환초는 2026년 시점에 기후위기 영향으로 우려를 사고 있는 대표적인 군사자산으로 꼽힌다.

마셜제도는 태평양 중부에 있는 섬나라로 국토 대부분이 산호초로 이루어진 저지대 지역이어서 이미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 상당수가 침수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는 콰절레인 환초 지역도 마찬가지다. 2024년 초 실제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높아진 해수면 수위가 거센 파도와 겹치며 미군 정밀레이더기지가 위치한 로이나무르섬을 덮쳐 섬의 중앙부까지 광범위하게 침수됐고, 기지도 큰 피해를 보며 복구에만 수개월이 소요됐다.

이대로 해수면 상승이 지속할 경우 향후 기지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설사 기지가 바닷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이미 기반시설 유지에 대한 압박이 현실화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기지가 가진 전략적 효용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역시 태평양에 위치한 괌 해군기지와 앤더슨 공군기지는 강력한 태풍의 피해 위협에 노출돼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이 지역을 강타하는 태풍의 위력이 지속적으로 커진 영향이다. 괌의 경우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태풍 등 열대성 저기압의 발생과 통과 횟수는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폭풍의 최대 강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예측됐다.

2023년 5월 발생한 슈퍼태풍 마와르는 우려가 현실화한 사례다. 마와르는 괌을 거쳐 간 수십 년 만에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미 해군과 공군기지가 강풍과 침수 등으로 큰 피해를 당했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에 따르면 태풍 마와르 이후 괌 해군기지의 복구 비용은 약 28억달러(약 3조7383억원)로 추산됐다.

앤더슨 공군기지는 복구 작업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종 복구 비용이 90억달러(약 12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온다. 문제는 마와르와 같은 태풍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로 태평양 핵심 길목에 있는 미군기지가 미군의 우려 사항이 된 셈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군사자산 유지의 어려움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이 전 세계 요충지 곳곳에 군사자산을 유지하는 만큼 가장 큰 영향권에 있지만, 유럽 등 지역에서도 기후변화 탓에 위기에 처한 군사자산이 산재해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시고넬라 해군항공기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 증가로 안보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대표적 지역이다. 2023년 여름에는 시칠리아를 덮친 사상 최악의 폭염과 산불로 기지 안팎의 전력망과 용수 공급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중동 지역 작전을 지원하는 영국 공군의 핵심 전진기지인 키프로스의 RAF 아크로티리 역시 위기의 군사시설이다.

영국 국방과학기술연구소는 2024년 이 기지를 해안 침식 위험이 큰 곳으로 지목했다. 지중해의 경우 영국과 이탈리아 외에도 유럽 국가들의 군사자산이 산재해 있지만 온대폭풍과 집중호우, 해안 침식 등 기후 요인으로 유지가 점점 더 힘겨워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바뀐 지정학적 의미로 변화하는 안보지도

기후위기는 군사자산의 유지를 힘들게 하는 요소만이 아니다. 가끔은 아예 군사자산의 지정학적 의미를 비틀어 놓기도 한다. 북극은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역이다. 냉전기부터 미국과 러시아의 잠수함 활동과 미사일 조기경보 등에서 중요한 군사적 공간이었던 이곳이 기후변화로 바닷길이 열리며 전략적 가치가 훨씬 더 커졌기 때문이다. 북극해를 뒤덮어 선박의 항행을 어렵게 하던 해빙의 감소가 조건을 바꾸고 있다. 미국 국립설빙데이터센터(NSIDC)에 따르면 1979년 위성 관측이 시작된 이후 북극 해빙은 10년마다 약 12%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해빙 감소가 연중 안정적인 항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군 전력의 항로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개선된 것만으로 북극의 군사적 운용 환경과 국가 간 전략적 계산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의 섬 그린란드를 탐내며 한때 미국과의 합병 의지까지 내비친 것도 이런 일환이다. 그린란드는 다이아몬드, 리튬, 구리 등 수많은 천연자원이 미개발 상태로 남아있는 곳일 뿐 아니라 북극과 북대서양이 만나는 핵심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에너지 안보 전문가인 조지프 마즈컷은 “최소한 계절적으로나마 북극에서 해빙이 없어지면 경제 및 안보 경쟁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전구가 조성되는 것”이라면서 현재 북극의 지정학적 변화가 ‘변곡점’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운하의 경우 기후위기로 인해 전략적 가치를 안정적으로 발휘하기 어렵게 됐다. 파나마운하는 해수면보다 높은 지역을 지나는 탓에 개폐식 갑문에 담수를 채워 수위를 맞춘 후 선박을 통과시키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중남미 지역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뭄으로 인해 최근 통행 가능 선박 수가 들쑥날쑥하여 안정적 운용이 되고 있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큰 두 개의 대양을 빠르게 연결한다는 전략적 가치는 여전하지만, 필요할 때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든 만큼 안보 측면에서는 지정학적 가치가 일부 훼손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역량이 향후 각국의 안보 전략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경우 2008년 이미 기후변화를 국방계획에 반영하도록 법제화했고, 2021년 기후 적응을 국방부 전반의 계획에 통합시켰다. 기후위기에 부정적인 트럼프 행정부 들어 대응이 주춤하고 있긴 하지만, 이미 큰 틀의 안보 전략에 기후대응전략이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기후위기가 매년 심화하는 만큼 적응을 위한 각국의 노력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역량이 환경정책을 넘어 국가의 군사적 준비태세와 전략적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 네덜란드군 총사령관 출신의 톰 미덴도르프 국제군사기후안보협의회(IMCCS) 의장은 “안보 없이 적응은 없고, 적응 없이 안보도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