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이야기다.
2016년 5월 2일 밤, 영국 레스터 근처의 작은 도시. 한 가정집 거실에 레스터시티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TV만 바라봤다. 첼시와 토트넘의 경기였다.
조건은 하나였다. 토트넘이 이기지 못하면 레스터가 우승한다.
전반까지만 해도 경기는 토트넘의 것이었다. 해리 케인과 손흥민이 연달아 골망을 흔들었다. 후반 들어 흐름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첼시가 1골을 만회하더니 후반 38분, 동점골이 터졌다. 종료 휘슬이 울렸다.
2대 2.
거실은 비명으로 뒤덮였다.
시즌 개막 전 베팅업체들이 매긴 레스터의 우승 배당률은 5000분의 1이었다. 그랬던 팀이 132년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잉글랜드 1부리그 정상에 올랐다.
거실을 내준 집주인은 팀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공격수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공장에서 뜨거운 오븐 앞을 지켰다. 제이미 바디다.
키가 작아 방출된 소년
2003년 어느 날, 16세 소년 바디가 유스팀에서 방출됐다. 키가 너무 작다는 이유였다. 셰필드 웬즈데이. 그가 어릴 때부터 응원해 온 동네 구단이었다.
바디는 8부리그 팀에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주급은 30파운드(약 5만원)였다. 그 돈으로는 먹고살 수 없어 셰필드 외곽의 의료기기 공장에 들어갔다. 장애인용 탄소섬유 보조기를 만드는 곳이었다. 12시간씩 교대로 일했다. 그 시절을 바디는 이렇게 돌아봤다.
“뜨거운 오븐에 물건을 넣고 빼는 일을 하루에도 수백 번 했어요. 허리가 망가지고 있었죠.”
20세 무렵에는 법정에도 섰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보청기를 낀 친구가 놀림을 당하자 바디가 끼어들었고 싸움이 났다. 그는 폭행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발목에 전자발찌를 찼다. 매일 저녁 6시까지 집에 들어가야 했다.
통금 때문에 원정을 가는 날에는 경기를 끝까지 뛰지 못하고 경기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당시 감독은 그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난간을 넘어 부모님 차에 올라탔다고 기억했다.
공장 떠난 청년의 몸값은 18억
공장을 그만둔 건 24세 때였다.
바디는 하부리그부터 한 계단씩 올라갔다. 5부리그에서는 한 시즌에 31골을 넣으며 팀을 구단 사상 첫 프로리그로 올려놨다.
2012년 5월, 레스터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2부리그였던 레스터가 그에게 베팅한 금액은 100만 파운드(약 18억원). 프로리그 밖 선수에게 매겨진 역대 최고 이적료였다.
2년 뒤 바디는 레스터를 1부리그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5000분의 1은 현실이 됐다.
우승과 함께 그는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에 올랐다. 공장을 그만둔 지 5년 만이었다.
이후 동료들은 하나둘 빅클럽으로 떠났다. 바디에게도 아스널이 2000만 파운드(약 340억원)를 내밀었다. 그는 레스터에 남았다.
거실의 불이 꺼진 뒤
2025년 레스터가 2부리그로 떨어졌다. 바디는 떠나기로 했다.
레스터 입단 13년이 되는 날, 바디는 마지막 경기에 나섰다. 그의 500번째 출전이었다. 그날도 그는 골을 터뜨렸다. 200번째 골이었다. 경기장을 떠나는 그에게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38세의 바디는 이탈리아 1부리그로 건너갔다. 7골을 넣었지만 팀은 한 시즌 만에 강등됐다.
마흔을 앞둔 공격수에게 여러 구단이 손을 내밀었다. 그중에는 셰필드 웬즈데이도 있었다. 20여 년 전 키가 작다고 그를 내보낸 팀이었다. 그 팀이 이제 바디를 원했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데려올 수 없었다. 웬즈데이는 재정난으로 선수 영입이 묶여 있었다.
바디는 결국 번리 유니폼을 입었다. 번리는 당시 2부리그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계약은 이번 시즌까지다.
그는 아직 그라운드를 떠날 생각이 없다.
“다리가 ‘이제 끝’이라고 말할 때까지 뛸 겁니다.”
셰필드의 공장에서 오븐 문을 여닫던 청년의 다리는 아직 ‘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